고린도전서 5장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5장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고린도전서 5장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고린도의 역사와 사회 구조
고린도(Κόρινθος, 코린토스)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地峽) 위에 자리한 도시입니다. 지리적으로 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위치 덕분에 오래전부터 동서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기원전 146년 로마 장군 루키우스 뭄미우스(Lucius Mummius)가 고린도를 철저히 파괴했다가,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재건해 아카이아 속주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재건된 고린도는 로마 식민지(Colonia Laus Julia Corinthiensis)로서 라틴어를 공용어로 쓰는 새로운 도시가 되었으며, 해방 노예와 퇴역 군인, 상인들이 대거 이주해 급성장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한 시기(기원후 50년경, 사도행전 18장)에 고린도는 약 1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그리스 세계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도시에는 이시스(Isis) 숭배, 아프로디테(Aphrodite) 신전, 아폴론 신전 등 다양한 종교 시설이 공존했고, 상업 활동과 함께 도덕적 혼란도 공존했습니다. 고린도의 방탕함은 고대 작가들에게도 알려져, '고린도인처럼 살다'(κορινθιάζεσθαι, 코린티아제스타이)라는 표현이 방종한 생활을 가리키는 속어로 쓰였다는 고대 기록이 있습니다.
근친 금지 규범 — 그레코로만 세계와 유대 전통
고린도전서 5장이 다루는 계모와의 성관계는 그레코로만 세계에서도 심각한 위반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로마법과 그리스 관습 모두 계모와의 혼인이나 성관계를 금지했으며, 이는 가정(οἶκος, 오이코스)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로 여겼습니다. 바울이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없는" 일이라고 말할 때(1절), 이것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 로마 사회 기준으로도 비정상적 행위였음을 가리킵니다. 로마 법학 문헌은 계모와의 혼인을 금지했고,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법적 제재가 뒤따랐습니다. 고전 문헌들은 이 규범이 로마 세계 전반에 걸쳐 공유되었음을 보여 주며, 세부 비교는 §7 고대 문헌·자료 심화에서 더 깊이 다룹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음행(히브리어로 זְנוּת, 제누트, 또는 עֶרְוָה, 에르바)에 대한 금지가 레위기와 신명기 전반에 걸쳐 강하게 기술됩니다. 특히 레위기 18:8은 "아버지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고 명시하며, 신명기 23:1은 아버지의 아내와 관계하는 것을 가장 엄중한 금지 가운데 하나로 다룹니다. 바울론 시대의 유대교 랍비 전통도 이를 매우 심각한 위반으로 보았으며, 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Sanhedrin)편은 노아 자손에게 주어진 일곱 가지 계명(노아힘 계명) 가운데 음행 금지를 포함시켜 이방인에게도 구속력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랍비 전통의 세부 비교는 §7 고대 문헌·자료 심화에서 다룹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종교 배경
고린도전서 5:6-8에서 바울이 '누룩'과 '유월절 어린양'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유대교 유월절(פֶּסַח, 페사흐) 전통을 배경으로 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출애굽기 12-13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 준비의 핵심은 집 안의 누룩을 철저히 제거하는 것(출 12:15, 19)과, 누룩 없는 빵(무교병, מַצּוֹת, 마촛)을 7일간 먹는 무교절(חַג הַמַּצּוֹת, 하그 하마촛)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가정은 유월절 전날 저녁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 누룩(חָמֵץ, 하메츠)을 제거했는데, 이것은 단순한 음식 관습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의식적 정결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울은 이 유월절 이미지를 교회 공동체에 적용하면서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이미 희생되셨다"(τὸ πάσχα ἡμῶν ἐτύθη Χριστός)고 선언합니다(7절).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한 유월절 어린양이 희생된 사건과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 구속 사실은 교회가 도덕적 정결을 실천해야 하는 근거가 됩니다 — 이미 구원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구원에 걸맞게 삽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회 구성과 도덕적 맥락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사회 계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로버트슨(Archibald Robertson)과 플러머(Alfred Plummer)의 ICC 주석은 고린도 서신이 상업 도시의 특성인 재산 분쟁, 과시적 지식 자랑, 계층 갈등을 배경으로 씌어졌음을 지적합니다.[bg_icc1] 5장의 음행 사건에서 당사자가 교회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교회가 오히려 "교만하게 부풀어 있다"(πεφυσιωμένοι)는 사실은, 그 사람이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어 교회가 징계를 주저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성적 죄가 아니라 가정(οἶκος) 내부의 간통에 해당하며, 아버지 생존 중에 혹은 아버지 사망·이혼 후 계모를 취한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어느 경우든 이것은 가정 질서와 공동체 도덕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 Archibald Robertson & Alfred Plumm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of St. Paul to the Corinthians* (ICC; Edinburgh: T&T Clark, 1914), 21.
고린도전서 5장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5:1 — 이방인도 없는 음행
본문: Ὅλως ἀκούεται ἐν ὑμῖν πορνεία … ἥτις οὐδὲ ἐν τοῖς ἔθνεσιν 직역: 도무지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고 들리는데, 그것도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없는 그런 음행이다.
원어·문법 핵심: - πορνεία(포르네이아): '음행' — 혼외 모든 성적 관계를 포괄하는 용어. 여기서는 "부친의 아내"(γυναῖκά τινα τοῦ πατρός)와의 관계를 가리키며, 레위기 18:8이 금지한 행위입니다. - Ὅλως(홀로스): '도무지, 심지어' — 사태의 충격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부사.
주석적 논의: 바울은 죄의 심각성을 이중으로 강조합니다.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고, 그것이 로마 관습법 기준으로도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이 두 번째 충격입니다. 로버트슨과 플러머는 고린도가 지적 자부심과 도덕적 해이가 공존하는 상업 도시였음을 지적합니다(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ICC, 1911, p.21). 나살라(Laura Salah Nasrallah)는 고린도 출토 저주 서판(defixiones)을 분석하면서, 바울의 판결 언어가 고린도의 제의적 판결 관행과 공명함을 보여줍니다.[s4_1a]
설교적 함의: 교회 안에 감춰진 죄는 공동체 전체를 물들입니다. 새벽 제단 앞 성도들에게 이 절은 "도무지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공동체의 순결을 다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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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 슬퍼하지 않는 교회
본문: καὶ ὑμεῖς πεφυσιωμένοι ἐστέ, καὶ οὐχὶ μᾶλλον ἐπενθήσατε 직역: 그런데도 너희는 부풀어 있다! 오히려 애통하지 않았느냐?
원어·문법 핵심: - πεφυσιωμένοι(페피시오메노이): '부풀어 있는' — φυσιόω의 완료 수동 분사. 1고린도서에서 4:6·18·19, 5:2, 8:1, 13:4에 집중 등장하는 이 서신 전체의 핵심 비판어입니다. 완료형은 교만 상태가 고착·지속됨을 나타냅니다. - ἐπενθήσατε(에페니사테): '애통하였더라면' — 공적 애도·집단 슬픔의 동사. 공동체의 회개 행위가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주석적 논의: 로스너(Brian Rosner)는 2절의 수사적 물음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에 집단 책임을 묻는 것임을 논증합니다.[s4_2a] "부풀어 있다"는 현재 상태와 "애통했어야 했다"는 과거 의무 사이의 대비는 교회의 심각한 자기 인식 부재를 드러냅니다. ICC는 고린도의 "지적 우월감"(self-satisfaction as to intellectual superiority)이 5장의 방관과 직결됨을 시사합니다(ICC, 1911, p.21).
설교적 함의: 공동체 안의 죄를 "저 사람 개인 일"로 방관하는 것이 이미 교만입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책임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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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 — 멀리서 내리는 사도의 판결
본문: ἐγὼ μὲν γάρ, ἀπὼν τῷ σώματι παρὼν δὲ τῷ πνεύματι … ἐν τῷ ὀνόματι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직역: 나는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하면서 …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미 판결했다.
원어·문법 핵심: - κέκρικα(케크리카): '판결했다' — 완료형으로 이미 확정된 판결. 결과가 현재까지 지속됩니다. - ἐν τῷ ὀνόματι(엔 토 오노마티): '이름 안에서' — 이 판결이 바울 개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내려진 것임을 명시합니다.
주석적 논의: "나의 영도 함께"(4절) 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은, 편지가 낭독되는 예배 모임에 바울의 사도적 현존이 대리적으로 함께한다는 신학적 주장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은 공동체 집회의 그리스도론적 근거로, 이 이름 아래 내려진 판결은 교회적 권위를 가집니다.
설교적 함의: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의 결정은 단순한 인간 합의가 아닙니다. 이 절은 강해설교의 오늘 적용—"우리 공동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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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사탄에게 내어 주라
본문: παραδοῦναι τὸν τοιοῦτον τῷ Σατανᾷ εἰς ὄλεθρον τῆς σαρκός, ἵνα τὸ πνεῦμα σωθῇ 직역: 이런 자를 육신의 멸망을 위해 사탄에게 내어주라, 영이 주의 날에 구원받도록.
원어·문법 핵심: - παραδοῦναι(파라두나이): '내어 주다' — 딤전 1:20에도 "사탄에게 내어 준"(παρέδωκα τῷ Σατανᾷ) 표현이 등장해, 초기 교회의 확립된 징계 방식이었음을 보여줍니다. - ἵνα(히나) 목적절: '~하도록' — 가혹해 보이는 처벌의 목적을 "영의 구원"으로 규정하며, 이 목적절이 전체 명령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주석적 논의: 핵심 쟁점: "육신의 멸망"(ὄλεθρος τῆς σαρκός)이 육체적 죽음인가, 육신적 욕망의 소멸인가. 메식(Clair Mesick)은 제2성전기 유대교의 속죄론 전통을 들어 죽음과 고백의 결합이 죄를 속한다는 랍비 전통과 바울의 논리가 연속선 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s4_5a] 반면 사우스(James South)는 이것을 죽음을 초래하는 저주 의식으로 해석하는 노선이 본문의 신학적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s4_5b] ἵνα 목적절—영의 구원—이 전체를 규정하기에, 이 행위의 본질은 징벌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설교적 함의: 교회의 징계는 파멸이 목표가 아닙니다. 가장 어렵고도 가장 목양적인 행위가 무엇인지를 새벽 기도 자리에서 성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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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본문: μικρὰ ζύμη ὅλον τὸ φύραμα ζυμοῖ 직역: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합니다.
원어·문법 핵심: - ζύμη(제귀메): '누룩' — 유월절 정결의 반대 이미지. 갈 5:9에도 동일 표현("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한다")으로 나쁜 영향의 확산을 경고합니다.
주석적 논의: 6절의 첫 문장 "자랑이 좋지 않다"(Οὐ καλὸν τὸ καύχημα)는 2절의 "부풀어 있다"와 직접 연결됩니다. 소량의 누룩이 반죽 전체를 발효시키듯, 공동체 안에 용인된 죄는 전체의 윤리적 문화를 서서히 바꿉니다. 이 비유는 감각적·일상적 이미지로 죄 방치의 위험을 전달하는 수사적 탁월함을 보여줍니다.
설교적 함의: "우리 교회는 괜찮다"는 안주가 가장 위험한 누룩입니다. 신앙의 긴장을 놓지 말라는 경각심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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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
본문: καὶ γὰρ τὸ πάσχα ἡμῶν ἐτύθη Χριστός 직역: 왜냐하면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이미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ἐτύθη(에튀테): '희생되셨다' — 단순과거 수동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단회적으로 완성된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 τὸ πάσχα(토 파스카): '유월절' — LXX에서 הַפֶּסַח(하-페사흐)의 번역으로, 이스라엘 구원 사건 전체를 환기합니다.
주석적 논의: 출 12:15의 유월절 누룩 제거 명령(구약 원문맥)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의식적 정결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이 유월절 어린양의 성취로 제시하며, "이미 희생되셨다"(ἐτύθη 과거형)는 선언 위에 "너희는 묵은 누룩을 없애라"(ἐκκαθάρατε)는 명령을 세웁니다. 구속이 먼저이고 윤리는 그 구속의 응답입니다.
설교적 함의: 거룩함은 구원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응답입니다. 새벽 제단 앞에서 "어린양이 이미 희생되셨다"는 선포가 오늘 삶을 정결히 할 깊은 동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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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 새 반죽으로 절기를 지키자
본문: ἑορτάζωμεν … ἐν ἀζύμοις εἰλικρινείας καὶ ἀληθείας 직역: 절기를 지키자 … 순결함과 진실의 무교병으로.
참고 자료
- Laura Salah Nasrallah, "Judgment, Justice, and Destruction: Defixiones and 1 Corinthian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40 (2021): 137–162. DOI: 10.1353/jbl.2021.0017.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Brian S. Rosner, "'Oyxi Mallon Epenthasate' Corporate Responsibility in 1 Corinthians 5," *New Testament Studies* 38 (1992): 470–473. DOI: 10.1017/s002868850002186x.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Clair Mesick, "Death and Salvation in Paul and Ancient Judaism (1 Corinthians 5:5),"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43 (2024). DOI: 10.15699/jbl.1433.2024.8.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James T. South, "A Critique of the 'Curse/Death' Interpretation of 1 Corinthians 5.1–8," *New Testament Studies* 39 (1993): 539–561. DOI: 10.1017/s0028688500011954.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Peter Zaas, "'Cast out the Evil Man from Your Midst' (1 Cor 5:13b),"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03 (1984): 259–261. DOI: 10.2307/3260275.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고린도전서 5장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4세기 (교부 시대)
크리소스톰은 고린도전서 5장 강해(Homily XV)에서 바울의 수사 전략 핵심을 짚어냅니다. 바울이 "누가 음행을 범했느냐"가 아니라 "너희 중에 음행이 있다"고 표현한 것은 수치와 책임을 공동체 전체로 확산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어느 개인이 음행을 범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인들의 교회에서 그 죄가 행해졌다'고 말할 것이다." — "no one will state it thus, 'such an one hath committed fornication,' but, 'in the Church of Corinthians that sin hath been committed.'"[rh1] 크리소스톰에게 교회 징계는 개인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가 세상 앞에 복음 증거자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공동체적 행위였습니다.
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칼빈은 고린도 교회의 뿌리 문제를 '자기 허물에서 즐거움을 찾는 교만'으로 진단합니다. "그는 그들의 자랑을, 단순히 지나친 자고함 때문이 아니라, 자기 허물에서 기쁨을 찾기 때문에 책망한다." — "he condemns their glorying, not simply because they extolled themselves beyond what is lawful for man, but because they delighted themselves in their faults."[rh2] 칼빈은 죄인의 행위 형태(탕녀로 유혹했는지, 혼인으로 취했는지)보다 교회가 이를 방치한 사실이 더 심각하다고 강조합니다. 개혁주의 교회 권징 신학은 이 주석에서 핵심 성경적 근거를 찾아왔습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세기 말–18세기 초 (청교도)
헨리는 5장 개관에서 "영적 교만과 거짓 교리가 이러한 추문을 불러들이고 퍼뜨리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합니다.[rh3] 그는 "신앙 고백자들의 흉악한 죄는 빠르게 세상에 알려진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행해야 하니, 많은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많은 입이 우리를 향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하며 교회 순결의 증거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헨리는 5:7-8의 유월절 비유를 근거로, 그리스도의 희생이 거룩한 삶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고 해석합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감리교 운동)
웨슬리는 간결한 주해에서 5절의 "사탄에게 내어 줌"을 "교회사상 최고 수준의 징계"라 규정하며, "이 판결을 내린 것은 사도이지 고린도 교인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 "we may observe, the passing this sentence was the act of the apostle, not of the Corinthians."[rh4] 또한 2절의 πενθεῖν(펜테인, '애통')을 개인 감정이 아닌 회중이 모여 공동으로 엄숙하게 죄인을 교제에서 내어 보내는 행위로 해석합니다. 감리교 속회의 권징 전통은 이 본문 이해 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복음주의 설교)
스펄전은 1870년 12월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설교 "묵은 누룩을 내보내라"(No. 965)에서 5:6-8을 강해하며, 은혜의 교리와 거룩의 계명이 절대 분리될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성경에서 은혜의 교리와 거룩의 계명은 언제나 결합되어 있다. 신앙이 앞서는 곳에서 덕목들은 아름다운 행렬로 뒤따른다." — "Evermore in Scripture the Doctrines of Grace are married to the precepts of holiness. Where faith leads the way, the virtues follow in a goodly train."[rh5] 스펄전에게 5:7의 유월절 선언은 구원받은 교회가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복음적 명령이었습니다.
수용사 흐름
교회사를 가로지르는 이 본문의 수용 궤적에는 세 가지 일관된 관심축이 교차합니다. 첫째, 공동체 책임의 신학입니다. 크리소스톰부터 헨리까지, 징계는 개인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목양적 의무로 읽혔습니다. 이방인들도 하지 않는 죄를 방치한 교회는 자신의 복음 증거자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둘째, 은혜와 거룩의 통합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감리교·복음주의 전통 모두 5:7-8의 유월절 이미지를 은혜에서 흘러나오는 거룩의 동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철저한 거룩을 요청합니다. 셋째, 징계의 회복적 목적입니다. 5절의 "영은 구원받으리라"는 목적절은 모든 시대 해석자들이 동의한 핵심이었습니다. 추방은 파괴가 아니라 치유를 향한 극약 처방입니다. 새벽 예배에서 이 본문을 강해하는 목회자는 이 3중 수용 궤적을 통해, 고린도전서 5장이 단죄의 말씀이 아니라 공동체가 복음으로 복음답게 살도록 촉구하는 목양적 선언임을 회중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Epistles to the Corinthians*, Homily XV (NPNF¹ vol. 12), on 1 Cor 5:1–2.
- John Calvin, *Commentary on Corinthians* (Vol. 1), on 1 Cor 5:6.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Concise), on 1 Cor 5:1–8.
-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on 1 Cor 5:5.
- Charles Spurgeon, *Spurgeon's Sermons* (Vol. 16, 1870), Sermon No. 965, on 1 Cor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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