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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⑥ 렘브란트 — 자화상, 십자가를 세우는 자에서 사도 바울로

1633년, 서른을 앞둔 렘브란트는 「십자가를 세움」에서 처형자들 무리 한가운데 파란 베레모를 쓴 인물을 그렸습니다. 이 인물은 렘브란트 자신의 이목구비와 닮아 자화상으로 흔히 식별되지만, 서명된 자화상처럼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8년이 지난 1661년, 죽기 8년 전의 렘브란트는 전혀 다른 얼굴로 자신을 그립니다 — 이번에는 사도 바울의 모습입니다. 렘브란트 3부작의 마지막 회차는 이 두 이미지 사이의 거리, 곧 그리스도를 못 박는 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옮겨간 한 화가의 평생에 걸친 자기이해를 읽습니다.

성서적 배경

렘브란트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처형 장면에 그려 넣은 것은 그가 발명한 도상이 아닙니다. 종교개혁기 경건 문헌과 수난 찬송에는 “내가, 바로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자기 고발의 전통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죽음을 2천 년 전의 남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죄가 저지른 일로 마주하게 하는 묵상 방식입니다. 반면 후기의 사도 바울 자화상은 전혀 다른 성서 본문을 배경으로 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15)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바뀐 인물이자,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 부르면서도 동시에 은총을 입어 사도의 소명을 받은 자로 자신을 이해했습니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자신을 겹쳐 놓기로 택한 인물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울이라는 사실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닙니다.

그림 분석 — 처형자의 얼굴에서 사도의 얼굴로

렘브란트 판레인, 「십자가를 세움」, c. 1633년, 알테 피나코테크(뮌헨) 소장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레인, 「십자가를 세움」, c. 1633년, 캔버스에 유채, 95.7×72.2cm — 알테 피나코테크(뮌헨).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old-100).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오라녜 공 프레데릭 헨드릭의 주문으로 그린 수난 연작 중 한 점입니다. 화면 중앙, 십자가를 밀어 올리는 인물 중 하나가 파란 베레모와 렘브란트 특유의 이목구비를 하고 있습니다 — 그는 방관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못 박는 일에 직접 손을 대는 자로 자신을 그려 넣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경건주의적 전통, 곧 “내 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고백을 화가가 자기 몸으로 실연한 것으로 읽힙니다.

렘브란트 판레인,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자화상」, 1661년, 레이크스 미술관(암스테르담) 소장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레인,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자화상」, 1661년, 캔버스에 유채, 93.2×79.1cm — 레이크스 미술관(암스테르담).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Mark 1.0).

28년 뒤, 55세의 렘브란트는 자신을 사도 바울의 전통적 도상—품 안에 감춘 칼(순교의 상징)과 손에 쥔 두루마리(서신)—을 갖춘 인물로 그립니다. 얼굴에는 젊은 날의 자화상에서 볼 수 없던 깊은 주름과 지친 눈빛이 있고, 화면 전체를 감싸는 렘브란트 특유의 짙고 따뜻한 어둠 속에서 얼굴과 두루마리만이 은은한 빛을 받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역사적 인물의 옷을 입고 자신을 그리는 ‘역사화적 자화상’(self-portrait historié)은 1660년대 네덜란드 화단에서 유행하던 관습이었지만, 렘브란트가 하필 바울을 택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회화·판화·소묘를 합쳐 약 80점에 이르는 자화상 연작의 정점에 놓인 그림 중 하나라는 점이 이 선택에 특별한 무게를 더합니다.

신학적 해석 — 죄인이자 사도인 한 사람

이 두 자화상을 나란히 놓고 보면, 렘브란트가 자기 얼굴을 화폭에 반복해 그린 습관이 단순한 자기과시나 시장에 내놓을 상품(자화상은 실제로 잘 팔리는 장르이기도 했습니다)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서른이 되기 전,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의 얼굴로 그려 넣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그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이면서 동시에 그 죄인에게 사도의 소명을 맡기신 은총의 증인, 곧 바울의 얼굴로 그립니다.

바울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미 이 두 자화상 사이의 거리를 한 사람 안에 담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자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다른 두 사람이 아니라 같은 한 사람이었듯이, 렘브란트도 처형자의 얼굴과 사도의 얼굴이 같은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습니다. 렘브란트 연구자 H. 페리 채프먼은 이 자화상 연작 전체를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새롭게 부상하던 근대적 자아 정체성 탐구의 산물로 읽지만, 이 마지막 자화상에 관한 한 그 탐구는 세속적 정체성을 넘어 신학적 정체성—죄와 은총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가—을 향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렘브란트 3부작은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바로크 시대의 다른 거장들로 넘어갑니다. 첫 회차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반종교개혁 시대 성서를 무대 위 드라마처럼 그린 화가의 「십자가에서 내림」을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국내

  • 김학철,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대한기독교서회, 2010)

영미권

  • H. Perry Chapman, Rembrandt’s Self-Portraits: A Study in Seventeenth-Century Ident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 Simon Schama, Rembrandt’s Eyes (Alfred A. Knopf, 1999)

네덜란드 렘브란트 연구

  • Ernst van de Wetering (ed.), A Corpus of Rembrandt Paintings IV: Self-Portraits (Springer, 2005) — 렘브란트 리서치 프로젝트가 자화상 전체를 다룬 권위 있는 카탈로그 연구

그림 이미지는 모두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으로 등재된 스캔의 축소본(1280px)을 사용했습니다. 「십자가를 세움」 속 파란 베레모 인물을 렘브란트 자신으로 보는 식별은 위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미술사적 해석입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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