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㉜ 폴 고갱 — 브르타뉴의 밭이 된 골고다, 「황색 그리스도」
가을걷이가 끝난 브르타뉴의 황토빛 들판 한가운데,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서 있습니다. 그 발치에는 전통 머리쓰개를 쓴 농촌 여인 셋이 무릎을 꿇고 있고, 배경에는 밭 울타리를 무심히 넘어가는 남자 하나가 작게 보입니다. 이 그리스도는 골고다가 아니라, 화가가 실제로 걸어 다녔던 브르타뉴의 밭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 연재의 마지막 회차는 폴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를 다룹니다.
고갱은 누구인가
폴 고갱(1848-1903)은 원래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다가 1880년대 초 화가로 전업한 인물입니다. 1886년 처음 브르타뉴의 작은 마을 퐁타방을 찾은 그는, 여전히 전통 복식과 가톨릭 신앙 관습이 강하게 남아 있던 이 지역 농민들의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1888년 가을에는 아를에서 반 고흐와 몇 주간 함께 지내며 작업했으나, 이 동거는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해하는 사건으로 파국을 맞았고, 고갱은 다시 퐁타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에밀 베르나르 등과 함께 굵은 검은 윤곽선으로 색면을 구획하는 클루아조니즘, 그리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화가의 내적 인상과 관념을 색채·형태로 종합해 내는 종합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황색 그리스도」는 이 양식이 정점에 이른 1889년 가을, 퐁타방 인근에서 그려졌습니다.
함께 읽을 성구 — 갈라디아서 3:1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미 그들의 눈앞에 생생히 제시되었다고 말합니다. 고갱이 이 절을 작품의 출발 본문으로 삼았다는 증거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황색 그리스도」의 시각적 현존을 생각하게 하는 수용사적 병치로 함께 읽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 3:1)
그림 분석 — 예배당 밖으로 걸어 나온 십자가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 1889년, 캔버스에 유채, 92.1×73cm — 버펄로 AKG 미술관(옛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뉴욕주 버펄로.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100-expired, 저자 1903년 사망).
그림 속 그리스도상은 고갱이 실제로 본 사물, 곧 퐁타방 근교 트레말로 예배당에 걸린 17세기 채색 목조 십자고상을 거의 그대로 옮긴 형상입니다. 다만 그는 이 조각을 예배당 안이 아니라, 추수가 끝난 브르타뉴의 실제 들판 한가운데 세워 놓았습니다. 굵은 검은 윤곽선이 그리스도의 몸과 배경의 나무·언덕을 뚜렷한 색면으로 나누고, 십자가 아래에는 전통 브르타뉴 머리쓰개(코아프)를 쓴 여인 셋이 조용히 기도하듯 앉아 있습니다. 화면 왼쪽 뒤편으로는 밭 울타리를 넘어가는 남자의 작은 형상이 보이는데, 십자가 아래 기도하는 여인들과 무심히 지나가는 이 인물 사이의 대비가 화면 전체에 은근한 긴장을 남깁니다. 그리스도의 살갗과 들판의 황토빛을 같은 노란 계열로 통일한 색채 처리는, 이 그리스도가 풍경과 이질적인 침입자가 아니라 그 땅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신학적 해석 — 소박한 신앙을 색채로 번역하다
미술사가 카트린 퓌제는 2000년 퐁타방 미술관에서 열린 특별전 도록 『고갱과 황색 그리스도』에서, 이 그림의 출발점이 트레말로 예배당의 실제 십자고상이었음을 상세히 추적합니다. 퓌제에 따르면 고갱은 이 소박한 민간 신앙의 산물인 목조 조각을, 그것이 놓여 있던 어둑한 예배당 밖으로 끌어내어 브르타뉴 농민들의 일상적 노동의 무대인 들판 한복판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신앙과 일상 사이에 벽을 두지 않았던 이 지역 민간 신심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번역해 냈습니다. 예배당 안에 갇혀 있던 그리스도를 밭으로 데리고 나온 이 그림은, 그러므로 단순히 종교적 소재를 다룬 그림이라기보다 신앙이 일상의 노동·풍경과 분리되지 않았던 한 공동체의 신심 자체를 화폭에 옮긴 시도에 가깝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가 갈라디아 교인들의 눈앞에 “밝히 그려졌다”는 바울의 언어처럼, 고갱의 그리스도 역시 저 먼 역사 속 사건이 아니라 브르타뉴 농민들의 눈앞, 그들이 매일 걷는 밭 한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화가들의 성서해석」은 이 회차로 카라바조에서 시작해 렘브란트·루벤스·벨라스케스를 거쳐 반 고흐와 고갱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에서 후기인상주의까지 22명의 화가가 성서 본문을 어떻게 읽고 캔버스에 옮겼는지를 32편에 걸쳐 살펴본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회차들은 시리즈 페이지에서 화가별로 다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프랑스어권
- Catherine Puget, Gauguin et le Christ jaune (Pont-Aven: Musée de Pont-Aven, 2000), ISBN 2-910128-21-0 — 이 그림이 트레말로 예배당의 목조 십자고상에서 출발한 경위를 전문적으로 추적한 2000년 퐁타방 미술관 특별전 도록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실재하는 학술 자료입니다. 이 회차를 구체적으로 다룬, 엄밀한 학술 심사를 거친 국내 논문은 확인되지 않아 국내 문헌 항목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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