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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㉛ 빈센트 반 고흐 — 들라크루아를 옮겨 그린 「선한 사마리아인」

병상에서 막 일어난 화가가 붓을 든 채, 다른 화가가 40년 전 그린 그림의 흑백 판화 한 장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그는 그 판화를 그대로 베끼는 대신, 기억 속에 남은 색채로 전혀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연재 26편에서 다룬 외젠 들라크루아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그린 작품을 다룹니다.

반 고흐는 누구인가

1889년 겨울, 반 고흐는 두 차례의 심각한 정신적 발작을 겪은 뒤 생레미드프로방스의 요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물감과 실물 모델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밀레·렘브란트·들라크루아 같은 이전 거장들의 작품을 흑백 판화나 복제화로 구해 자신만의 색채로 다시 그리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이를 두고 스스로 “번역”이라 불렀으며, 마치 음악가가 다른 작곡가의 주제를 자기 방식으로 편곡하듯 원작의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색채만은 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채웠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1890년 5월 초, 요양원을 떠나기 직전 완성한 이 연작 중 한 점입니다.

본문 — 누가복음 10:33-34

반 고흐가 옮겨 그린 장면은 예수님이 이웃 사랑을 설명하시며 드신 비유의 절정,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는 순간입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누가복음 10:33-34)

그림 분석 — 흑백 판화에서 색채의 번역으로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들라크루아를 따라), 1890년, 크뢸러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들라크루아를 따라), 1890년, 캔버스에 유채, 73×60cm — 크뢸러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Mark 1.0, 저자 1890년 사망).

화면 중앙에서 사마리아인이 온 힘을 다해 부상당한 남자를 말 위로 들어 올리는 순간이 대각선 구도로 포착되어 있습니다. 반 고흐가 참조한 것은 들라크루아 원작의 컬러가 아니라 그것을 찍어낸 흑백 판화 한 장이었기 때문에, 좌우가 뒤집힌 구도를 그대로 옮기면서도 색채만큼은 전적으로 자신의 팔레트에서 새로 지어냈습니다—사마리아인의 파란빛과 보랏빛 옷은 상처 입은 남자의 노란 살빛과 강렬하게 대비되고, 배경의 붉은빛과 초록빛이 서로를 밀어내듯 진동합니다. 화면 왼쪽 멀리, 앞서 이 사람을 보고도 지나쳐 간 제사장과 레위인의 형상이 작게 그려져 있어, 비유 속 대조가 구도 안에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신학적 해석 — 색으로 옮겨 쓴 헌사

미술사가 캐슬린 파워스 에릭슨은 앞선 29편에서 인용한 저서 『영원의 문 앞에서』에서, 반 고흐가 「선한 사마리아인」을 포함해 「나사로의 부활」·「피에타」 같은 명백히 종교적인 주제를 반복해 다시 그린 것이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그에게 남긴 고통받는 종의 그리스도상, 곧 자기를 비워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삶에 대한 지속적 응답이었다고 읽습니다. 실제로 반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린 시점은 정신적 위기를 두 차례 겪고 극도로 취약해진 요양원 생활 중이었으며, 이 시기 그를 재정적·정서적으로 한결같이 지탱해 준 사람은 동생 테오였습니다. 이 전기적 배경은 사마리아인의 돌봄을 테오의 돌봄과 나란히 읽게 하지만, 사마리아인의 얼굴이 테오를 모델로 했다거나 그림이 의도적인 헌사였다고 확인해 주는 편지는 없습니다. 따라서 작품을 자신이 받은 자비에 대한 응답으로 보는 것은 가능한 전기적·신학적 독법이지, 화가가 남긴 명시적 설명은 아닙니다.

다음 편 예고

이 연재의 마지막 회차는 폴 고갱이 브르타뉴의 민속신앙과 겹쳐 그린 「황색 그리스도」를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Kathleen Powers Erickson, At Eternity’s Gate: The Spiritual Vision of Vincent van Gogh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98) — 반 고흐가 반복해 그린 종교적 주제와 사도적 삶의 전통을 다룬 표준 연구서(이 연재 29편에서도 인용)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Mark 1.0)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실재하는 학술 자료입니다. 이 회차를 구체적으로 다룬, 엄밀한 학술 심사를 거친 국내 논문은 확인되지 않아 국내 문헌 항목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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