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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㉖ 외젠 들라크루아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과 낭만주의가 그린 마지막 투쟁

숲 한가운데, 두 몸이 서로를 붙든 채 뒤엉켜 있습니다. 한쪽은 인간의 육체, 다른 한쪽은 날개 달린 존재—누가 이기고 있는지조차 한눈에 가늠되지 않는 팽팽한 힘의 대결입니다. 승리도 패배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이 순간, 화가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대작을 이 씨름 장면에 걸었습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정점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다룹니다.

들라크루아는 누구인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격정적인 붓질과 강렬한 색채 대비, 극적인 신체 동작으로 문학·역사·종교의 장면들을 그려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은 그의 말년 대작으로, 파리 생 쉴피스 성당의 성천사 예배당(Chapelle des Saints-Anges) 벽화 연작 가운데 한 점입니다. 그는 1849년 위촉을 받은 뒤 구상과 다른 공공 작업으로 지연을 겪었고, 1854년 이후 제작을 본격화해 1861년 예배당의 천장화(대천사 미카엘이 악마를 물리치는 장면)와 양쪽 벽화(「성전에서 쫓겨나는 헬리오도로스」와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를 공개했습니다. 전체 사업은 12년에 걸쳤고 집중 제작 기간은 약 7년이었습니다. 이 연작은 후대에 그의 화업을 마감하는 ’영적 유언’처럼 읽혀 왔지만, 들라크루아 자신이 그렇게 명명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는 완성 2년 뒤인 186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문 — 창세기 32장 24-30절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은 야곱이 얍복 강을 건너기 전 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 밤새 씨름한 사건을 그립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24, 27-28)

그림 분석 — 숲 속의 격투, 승패가 갈리지 않은 순간

외젠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54-61년, 생 쉴피스 성당, 파리 외젠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54-61년, 회벽에 유채·왁스, 751×485cm — 생 쉴피스 성당, 파리.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Mark 1.0, 저자 1863년 사망).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화면 중앙에서 야곱과 천사가 서로의 몸을 힘껏 붙든 채 뒤엉켜 있습니다. 야곱은 맨몸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천사는 날개를 활짝 편 채 균형을 잡으며 맞섭니다—어느 쪽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힘이 팽팽히 맞서는 순간이 포착되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구석에는 야곱의 무리와 가축 떼가 작게 물러나 있어, 이 밤의 씨름이 얍복 강 건너 낯선 땅으로 향하는 여정의 갈림길에서 벌어진 사건임을 암시합니다. 전통적인 종교화가 흔히 택하던 인물의 정면성이나 정적인 구도 대신, 들라크루아는 두 신체의 근육과 자세, 뒤엉킨 사지의 대각선 구도로 화면 전체에 격렬한 운동감을 채워 넣었습니다.

신학적 해석 — 낭만주의가 발견한 씨름의 도상

미술사가 이브 클리먼은 1983년 『RACAR: 캐나다 미술 리뷰』에 발표한 논문 「들라크루아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의 도상적 원천」에서, 이 벽화가 회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유부터 짚습니다—야곱과 천사의 씨름은 창세기의 극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를 비롯한 소수의 예외를 빼면 대형 종교화의 주제로 좀처럼 선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클리먼은 들라크루아가 이 낯선 주제를 그리며 참고했을 법한 판화·조각·이전 회화의 도상적 계보를 추적하는 한편, 그가 이 전통을 단순히 답습하지 않고 두 신체의 근력 대결 자체를 화면의 중심 사건으로 재구성했다고 읽습니다. 성서 본문에서 이 씨름은 승부가 나지 않은 채 동틀 무렵까지 이어지며, 결국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씨름을 그치게 하고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줍니다—신적 존재와 겨루고도 살아남았다는 축복이자 상흔입니다. 들라크루아의 벽화는 바로 이 미결정의 순간, 인간이 신적인 것과 몸으로 부딪히면서도 아직 축복도 상흔도 받지 않은 그 팽팽한 찰나를 화면에 못박아 놓은 것이며, 이 그림이 이후 귀스타브 모로·폴 고갱·오딜롱 르동 등 상징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남긴 것도 바로 이 미결정성—승리와 패배, 축복과 상처가 아직 갈리지 않은 순간에 대한 매혹—때문이라는 것이 클리먼의 해석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회차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과 세속화된 경건을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Eve Kliman, “The Figural Sources of Delacroix’s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RACAR: revue d’art canadienne / Canadian Art Review 10, no. 2 (1983): 157-162 — 이 벽화가 참고한 도상적 원천 계보를 추적하고, 회화사에서 이 주제가 드물게 다뤄진 이유를 규명한 연구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Mark 1.0)으로 등재된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실재하는 학술 자료입니다. 이 회차를 구체적으로 다룬 국내 학술 논문은 신뢰성 있게 확인되지 않아 국내 문헌 항목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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