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㉔ 윌리엄 블레이크 — 「태고적부터 계신 이」와 예언서적 신화가 다시 쓴 창조
컴컴한 구름 사이로 몸을 웅크린 노인이 손을 뻗어 거대한 컴퍼스를 짚습니다. 그의 자세는 창조주의 위엄이라기보다 좁은 원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몸짓처럼 보입니다. 잠언의 한 구절에서 시작된 이 이미지는, 그러나 블레이크 자신의 손을 거치며 전혀 다른 존재—그가 평생에 걸쳐 지어낸 신화 속 인물 유리젠—로 바뀌어 있습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블레이크 2부는 그가 성서를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의 예언서적 신화로 다시 쓴 방식을 다룹니다.
블레이크는 누구인가 — 예언서의 시기
앞선 회차에서 다룬 욥기 판화가 블레이크 말년의 작업이라면, 「태고적부터 계신 이」는 그보다 훨씬 이른 1794년, 그가 이른바 ‘예언서’(Prophetic Books)라 불리는 독자적인 신화 연작을 한창 써 내려가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블레이크는 『유리젠의 서』·『유럽, 예언서』·『아메리카, 예언서』 등 일련의 채색 판화집을 직접 판각·인쇄·채색하며, 성서의 인물과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유리젠(이성과 율법을 상징)·오르크(혁명적 에너지를 상징) 같은 자신만의 신화적 존재들을 창조해 성서의 서사를 다시 썼습니다. 「태고적부터 계신 이」는 이 가운데 『유럽, 예언서』의 권두화로, 이후 별도의 채색 판화로도 여러 점 제작되어 블레이크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이미지 중 하나로 꼽힙니다.
본문 — 잠언 8장 27절
「태고적부터 계신 이」는 지혜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창조에 참여했다고 말하는 잠언의 한 구절을 표면적인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잠언 8:27-28)
그림 분석 — 컴퍼스를 든 창조주, 혹은 스스로를 가두는 존재
윌리엄 블레이크, 「태고적부터 계신 이」, 1794년, 판화에 수채 채색.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Mark 1.0, 저자 1827년 사망).
이글거리는 태양 원반을 배경으로, 근육질의 노인이 어두운 구름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아래를 향해 거대한 컴퍼스를 내리짚고 있습니다. 그의 왼손은 컴퍼스를, 오른손은 화면 밖 허공을 가리키며, 몸 전체는 원 안에 갇힌 듯 극도로 압축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는 창세기적 창조주가 세상의 경계를 재는 전통적 도상—잠언 8장이 말하는 지혜의 동반자 하나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블레이크가 이 인물에게 붙인 이름은 성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니엘서의 표현(“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을 빌려 온 자신의 신화적 인물 유리젠입니다. 컴퍼스로 원을 긋는 몸짓은 곧 한계와 경계를 설정하는 행위이며, 웅크린 자세는 창조의 위엄이 아니라 스스로 그은 경계 안에 갇히는 존재의 모습을 암시합니다.
신학적 해석 — 창조가 곧 억압이 되는 신화
문학연구자 고준석은 2023년 『한국 예이츠 저널』에 발표한 논문 「블레이크의 『유리젠의 서』에서 신화적 상상력과 창조」에서, 유리젠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블레이크의 창조 신화 전체를 분석합니다. 고준석에 따르면 블레이크는 『유리젠의 서』에서 전통적인 창세기나 그리스 신화의 창조 서사와 달리, 유리젠이 이성과 율법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다른 신적 존재들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분리 자체가 지옥과 같은 폭력적인 우주—돌·쇠사슬·경계로 가득한 억압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린다고 밝힙니다. 이 틀에서 보면 「태고적부터 계신 이」의 컴퍼스는 잠언이 찬양하는, 만물에 질서와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지혜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자유를 가두는 이성적 율법의 도구로 뒤집혀 읽힙니다. 블레이크는 성서의 이미지를 빌려 오면서도 그 안에 담긴 창조의 의미를 정면으로 되묻는 것입니다—참된 창조는 경계를 긋는 이성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에서 온다는 것이 블레이크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이라고 고준석은 읽습니다. 문학연구자 레슬리 태넌바움은 1982년 저서 『블레이크 초기 예언서의 성서 전통』에서 이와 비슷한 결론을, 『유럽, 예언서』 전체가 창세기·요한계시록의 언어와 구조를 의도적으로 뒤집어 사용한다는 관점에서 뒷받침합니다—블레이크는 성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자체가 억압으로 오독되어 온 방식을 성서의 언어로 폭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회차는 낭만주의 풍경화로 넘어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산속의 십자가」를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Leslie Tannenbaum, Biblical Tradition in Blake’s Early Prophecies: The Great Code of Ar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2) — 『유럽, 예언서』와 『유리젠의 서』를 포함해 블레이크 초기 예언서 전체가 성서 전통을 어떻게 다시 쓰는지 규명한 대표 연구서
국내
- 고준석, 「블레이크의 『유리젠의 서』에서 신화적 상상력과 창조」, 『한국 예이츠 저널』 72호 (2023): 139-155 — 유리젠의 창조 신화를 성서·그리스 신화의 창조 서사와 비교해 그 폭력성과 억압성을 분석한 논문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Mark 1.0)으로 등재된 채색 판화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모두 실재하는 학술 자료입니다.
댓글
댓글 남기기
작성한 댓글은 검토 후 공개됩니다. 이름과 댓글 내용만 저장되며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이런 글도 있어요
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㉓ 윌리엄 블레이크 — 「아침 별들이 함께 노래할 때」와 욥기 삽화 연작
블레이크가 1825년경 완성한 욥기 판화 연작 중 「아침 별들이 함께 노래할 때」는 욥 38장의 창조 찬가를 인간과 천사가 하나 되어 부르는 우주적 합창으로 그려냅니다. 크리스토퍼 로울런드는 이를 블레이크 특유의 '문자 대 영' 성서 해석학의 정점으로 읽습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㉖ 외젠 들라크루아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과 낭만주의가 그린 마지막 투쟁
들라크루아가 1849년 위촉받아 1854년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한 생 쉴피스 성당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은 창세기 32장의 드문 씨름 장면을 낭만주의의 격정으로 옮긴 말년 대작입니다. 이브 클리먼은 이 벽화가 빌려온 도상적 원천들을 추적합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㉕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 「산속의 십자가」와 풍경이 된 제단화
프리드리히가 1808년경 그린 「산속의 십자가」(테첸 제단화)는 인물도 성서 장면도 없이, 안개 낀 산봉우리에 홀로 선 십자가만으로 신앙을 그려냅니다. 조지프 레오 쾨르너는 이 그림이 촉발한 람도어 논쟁을 통해 풍경화 자체가 어떻게 신학적 발언이 되었는지를 추적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