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㉑ 엘 그레코 — 「다섯째 봉인의 개봉」과 뒤틀린 몸의 신비주의
화면을 가득 채운 벌거벗은 몸들이 뒤틀리고 늘어난 채 하늘을 향해 팔을 뻗습니다. 인체의 정상적인 비례는 이미 무너져 있고, 색채는 초록빛과 잿빛이 뒤섞여 폭풍 전야 같은 긴장을 뿜어냅니다. 이것은 고전적인 조화가 아니라, 세상의 끝에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입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톨레도에서 활동한 화가 엘 그레코로 넘어갑니다.
엘 그레코는 누구인가
엘 그레코(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1541-1614)는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비잔틴 성화 전통 속에서 훈련받은 뒤,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쳐 1577년경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했습니다. 티치아노의 색채와 틴토레토·미켈란젤로의 격렬한 인체 표현을 흡수한 그는, 톨레도에 뿌리내린 이후 점점 더 인체 비례를 늘이고 형태를 왜곡하는 독자적인 후기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다섯째 봉인의 개봉」(「성 요한의 환상」으로도 불림)은 1608년, 톨레도 외곽에 있던 성 요한 바우티스타 병원(오늘날의 타베라 병원) 성당의 제단화 연작 가운데 하나로 위탁되었으며, 세례 요한의 세례, 수태고지와 함께 병원 성당의 세 제단을 장식할 예정이었습니다. 엘 그레코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1614년 세상을 떠났고, 그림은 훗날 원래 크기의 절반 가까이 잘려 나간 상태로 전해집니다.
본문 — 요한계시록 6장 9~11절
「다섯째 봉인의 개봉」이 그리는 본문은 계시록의 순교자 환상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6:9-11)
그림 분석 — 흰 옷을 받는 뒤틀린 몸들
엘 그레코, 「다섯째 봉인의 개봉(성 요한의 환상)」, 1608-14년경, 캔버스에 유채, 224.8×199.4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old-100-expired, 저자 1614년 사망).
화면 왼쪽 전경에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 거대한 인물—사도 요한으로 짐작됨—이 초록빛 옷을 두른 채 서 있고, 그 뒤로 벌거벗은 몸들이 무리 지어 솟아오르며 저마다 다른 각도로 팔을 뻗어 흰 옷감을 받습니다. 이 몸들은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늘어나 있고, 근육과 살은 형태보다는 감정의 파동을 전달하는 붓질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배경의 하늘은 짙은 잿빛과 노란빛이 뒤섞여 격동하며, 인물들 사이의 공간 관계는 의도적으로 모호합니다. 이것은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본문이 묘사하는 부르짖음과 기다림의 격렬한 감정을 시각적 왜곡 자체로 번역해낸 그림입니다.
신학적 해석 — 병원 성당과 순교자의 흰 옷
미술사가 월터 리트케는 201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작품이 걸릴 예정이었던 산 후안 바우티스타 병원의 구체적인 사역과 이 그림의 도상을 직접 연결합니다. 리트케에 따르면 이 병원은 환자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육체의 치료 못지않게 중시했으며, 환자들은 의사를 만나기 전에 고해성사를 하고 매주 최소 한 번 성찬에 참여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순교자들이 대주재에게 부르짖고 흰 두루마기를 받는 계시록의 장면은,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이 매일 마주하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신학적으로 비춰 주는 거울로 기능했다는 것이 리트케의 해석입니다—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짖는 순교자들의 모습은 병상에 누운 환자들 자신의 부르짖음과 겹쳐지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흰 옷은 병원이 약속하는 궁극적 구원의 표지가 됩니다. 엘 그레코가 인체를 이토록 격렬하게 왜곡한 것은 단순한 양식적 실험이 아니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부르짖음이 결코 차분하고 조화로운 형태로는 담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고 리트케는 읽습니다.
다음 편 예고
화가들의 성서해석 3부(르네상스·매너리즘)는 이번 회차로 마무리됩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로코코·낭만주의·사실주의·인상주의 시대로 넘어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로코코 종교화를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Walter Liedtke, “Three Paintings by El Greco,” Metropolitan Museum Journal 50 (2015): 12-41, DOI: 10.1086/685671 — 「다섯째 봉인의 개봉」이 톨레도 병원 성당을 위해 위탁된 구체적 배경과 병원의 구원 사역을 도상학적으로 연결한 논문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old-100-expired)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실재하는 학술 자료입니다. 이 회차를 구체적으로 다룬 국내 학술 논문은 신뢰성 있게 확인되지 않아 국내 문헌 항목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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