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⑳ 대(大) 피터르 브뤼헐 — 「바벨탑」과 플랑드르 노동자들의 얼굴
거대한 탑이 구름 위까지 솟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신화적 거인이나 초월적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도르래를 돌리는 인부, 돌을 짊어진 짐꾼, 나무 비계를 오르내리는 목수들, 16세기 플랑드르 옷차림을 한 평범한 노동자 수백 명이 이 거대한 사업을 떠받치고 있을 뿐입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농민의 브뤼헐’이라 불린 대(大) 피터르 브뤼헐로 넘어갑니다.
브뤼헐은 누구인가
대(大) 피터르 브뤼헐(1525년경-1569)은 플랑드르(현재의 벨기에)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로, 생애 대부분을 안트베르펜과 브뤼셀에서 보냈습니다. 1552년 무렵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로마의 콜로세움을 비롯한 고대 유적을 직접 보았고, 이 경험은 후일 「바벨탑」의 원형적 구조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브뤼헐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이런 고전적 소양이 아니라, 성서와 신화의 거대한 사건들을 항상 당대 플랑드르 농민과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일상 속에 파묻어 그려낸 시선이었습니다—「이카루스의 추락」에서 신화적 비극이 밭 가는 농부의 무심한 뒷모습 옆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벌어지듯, 「바벨탑」에서도 성서의 사건은 초월적 드라마가 아니라 눈앞의 노동 현장으로 나타납니다. 이 작품은 안트베르펜의 부유한 상인이자 미술품 후원자 니클라스 요혼헬링크의 별장을 위해 1563년경 제작되었습니다.
본문 — 창세기 11장 4~7절
「바벨탑」이 그리는 본문은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4, 6-7)
그림 분석 — 콜로세움을 닮은 탑, 노동자들의 얼굴
대(大) 피터르 브뤼헐, 「바벨탑」, 1563년경, 패널에 유채, 114×155cm — 빈 미술사박물관(쿤스트히스토리쉐스 무제움) 소장. CC BY 4.0(Wikimedia Commons, 사진: Dguendel).
브뤼헐은 바벨탑을 로마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층층 구조로 그리되, 탑의 아래층은 이미 고전적 아치가 완성된 반면 위층으로 갈수록 공사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어, 탑 전체가 안정되지 못하고 살짝 기울어진 듯한 인상을 줍니다. 화면 왼쪽 하단에는 니므롯 왕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석공들의 인사를 받으며 등장하지만, 그림의 실제 주인공은 그가 아니라 화면 곳곳에 흩어진 수백 명의 이름 없는 일꾼들입니다—기중기를 돌리는 사람, 돌덩이를 지고 나르는 사람, 비계 사이를 오가는 목수들. 이들은 신화 속 거인이 아니라 브뤼헐이 안트베르펜 거리에서 매일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16세기 플랑드르 노동자의 옷차림과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까지 닿으려는 인간의 거대한 야심이, 실은 이런 구체적이고 지친 노동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브뤼헐은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신학적 해석 — 만찬 대화를 위한 공동 프로젝트
미술사가 바르바라 카민스카는 2014년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그림이 후원자 니클라스 요혼헬링크의 안트베르펜 근교 별장에서 열린 학식 있는 만찬 자리의 대화 소재로 기능했다고 주장합니다. 카민스카에 따르면 「바벨탑」은 붕괴가 예정된 사건을 진행 중인 사업으로 그려내는 역설적인 서사를 통해, 언어의 통일에서 분열로 이어지는 성서의 이야기 구조를 당대 안트베르펜의 상황에 직접 겹쳐 놓습니다—16세기 안트베르펜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과 이주 노동자들로 극도로 다양한 언어와 배경이 뒤섞인 국제 무역 도시였고, 그림 속 노동자들의 무리는 바로 이 도시의 인구를 반영합니다. 카민스카는 이 그림이 신의 심판을 일방적으로 경고하는 그림이 아니라, 공동체가 책임감을 잃지 않는 한 이 ’공동의 사업’이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건부의 희망 또한 담고 있다고 읽습니다—탑을 짓는 자들의 손과 얼굴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그려낸 브뤼헐의 시선 자체가, 거대한 신화적 심판의 이야기를 이름 없는 개별 노동자들의 몫으로 되돌려 놓는 신학적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회차는 엘 그레코로 넘어가, 신비주의적 왜곡을 통해 재해석된 톨레도의 성서 해석을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Barbara A. Kaminska, “‘Come, let us make a city and a tower’: Pieter Bruegel the Elder’s Tower of Babel and the Creation of a Harmonious Community in Antwerp,” Journal of Historians of Netherlandish Art 6, no. 2 (2014), DOI: 10.5092/jhna.2014.6.2.3 — 그림을 후원자의 만찬 대화 소재이자 안트베르펜 공동체에 대한 성찰로 읽어낸 핵심 논문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CC BY 4.0으로 등재된 사진(촬영: Dguendel)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실재하는 학술 자료입니다. 이 회차를 구체적으로 다룬 국내 학술 논문은 신뢰성 있게 확인되지 않아 국내 문헌 항목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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