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⑱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최후의 심판과 벗겨진 살가죽 속 자화상
그리스도 바로 아래, 순교자 바르톨로메오가 오른손에는 자신을 산 채로 벗긴 칼을, 왼손에는 축 늘어진 사람 살가죽 한 장을 들고 있습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 살가죽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그것은 성인의 얼굴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얼굴입니다. 「아담의 창조」에서 하나님과 손가락을 마주 뻗던 그 화가가, 25년 뒤 같은 예배당 제단 벽에서는 벗겨진 껍데기가 되어 심판대 아래 매달려 있습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같은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2부, 「최후의 심판」을 다룹니다.
25년의 간극 — 확신에서 불안으로
지난 편에서 살펴본 시스티나 천장화가 완성된 것은 1512년이었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1533년 말 미켈란젤로에게 제단 벽의 「최후의 심판」을 처음 의뢰했고, 이듬해 클레멘스가 세상을 떠난 뒤 교황 바오로 3세가 사업을 확인하고 이어 갔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536년부터 본격적으로 벽화를 그려 1541년에 완성했습니다. 그 사이 세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1527년 신성로마제국 군대의 로마 약탈, 루터의 종교개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촉발된 가톨릭 교회의 위기, 그리고 미켈란젤로 개인적으로는 시인이자 개혁 성향의 귀족 비토리아 콜론나와의 교우를 통해 은총과 구원에 대한 훨씬 더 절박한 신앙적 물음에 깊이 빠져든 시기였습니다. 젊은 시절 조각가로서 이상화된 육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신적 질서를 확신했던 미켈란젤로는, 이제 400명에 가까운 벌거벗은 인물들이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오르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심판의 장면을 그리는 노년의 화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 요한계시록 20장 12~13절
「최후의 심판」이 그리는 본문은 계시록의 마지막 심판 장면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 20:12-13)
그림 분석 — 벗겨진 살가죽 속 자화상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예배당 제단 벽, 1536-41년, 프레스코, 13.7×12.0m — 바티칸 박물관(바티칸 시국) 소장.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100-expired, 저자 1564년 사망).
전통적인 최후의 심판 도상이 흔히 건축적 틀 안에 인물을 층층이 배열했던 것과 달리, 미켈란젤로는 어떤 명확한 구조적 틀도 없이 벌거벗은 몸들을 하나의 거대한 원운동 속에 몰아넣습니다. 화면 중앙 상단, 수염 없는 젊은 모습으로 그려진 그리스도가 오른팔을 들어 저주의 심판을 내리는 순간, 왼쪽 아래에서는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하늘로 끌어올려지고 오른쪽 아래에서는 저주받은 자들이 지옥의 뱃사공 카론에게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리스도 바로 아래에는 순교자 바르톨로메오가 자신이 순교할 때 사용된 칼과, 산 채로 벗겨진 자신의 살가죽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 뒤틀리고 축 늘어진 살가죽—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으면서도 생명이 빠져나간 빈 껍데기—의 얼굴을 미켈란젤로는 자기 자신의 얼굴로 그렸습니다.
신학적 해석 — 자비로운 이단, 그리고 반종교개혁의 공포
미술사가 리오 스타인버그는 1975년 발표한 논문에서 「최후의 심판」 전체를 ’자비로운 이단’이라는 도발적인 틀로 읽어냅니다. 스타인버그에 따르면 이 그림은 통념과 달리 죄인에 대한 영원한 응보를 강조하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 곳곳에 흩어진 열다섯 가지 시각적 단서—구원과 저주 사이를 오가는 인물들의 모호한 움직임, 지옥행이 확정되지 않은 듯한 여러 인물의 자세—를 통해 은총의 자비가 정죄의 엄격함을 능가한다는, 당시로서는 이단에 가까운 낙관을 담고 있습니다. 이 독법 안에서 바르톨로메오의 살가죽에 그려진 자화상은 특히 의미심장합니다—미켈란젤로는 심판대 앞에서 자신을 이미 구원받은 성인의 무리에도, 완전히 저주받은 무리에도 넣지 않고, 그 사이 허공에 매달린 빈 껍데기로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이 육신의 죄를 벗어 버리고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자비에 매달려 있는 존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국내 학자 고종희는 1996년 논문에서 이 작품을 로마 약탈과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가 처한 위기라는 구체적인 반종교개혁의 시대적 맥락 안에 위치시킵니다. 고종희에 따르면 트리엔트 공의회를 앞둔 시기의 로마 교회는 심판의 공포를 통해 신앙의 기강을 다시 세우려는 압박 속에 있었고, 미켈란젤로의 격렬하고 소용돌이치는 구성은 이 위기감을 시각적으로 흡수한 결과입니다—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벗겨진 살가죽에 새겨 넣은 개인적 고백은, 교회 전체의 공적 공포와 화가 한 개인의 사적 죄의식이 이 한 장의 그림 안에서 겹쳐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회차는 라파엘로 산치오로 넘어가, 성모자 도상과 고전적 조화를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Leo Steinberg, “Michelangelo’s Last Judgment as Merciful Heresy,” Art in America 63 (1975): 49-63 — 「최후의 심판」을 응보가 아닌 자비의 신학으로 읽어낸 고전적 논문
국내
- 고종희,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반종교개혁」, 『미술사논단』 제3호 (한국미술연구소, 1996), 135-170쪽 — 로마 약탈 이후 반종교개혁의 시대적 맥락 안에서 이 작품을 분석한 국내 논문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학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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