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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⑪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와 여성이 쥔 칼

목이 아직 완전히 잘리지 않은 남자가 침대 위에서 몸부림칩니다. 두 여성이 그 몸을 짓누릅니다. 한 사람은 칼을 쥔 손에 온 체중을 싣고, 다른 한 사람은 남자의 팔을 붙들어 저항을 막습니다. 피가 튀어 흰 침대보를 적십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수많은 화가가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이 장면을 그렸지만, 이토록 힘겹고 육체적인 노동으로—우아한 몸짓의 처형이 아니라 두 사람이 온 힘을 다해 해내야 하는 일로—그린 화가는 드뭅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이탈리아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로 넘어갑니다.

젠틸레스키는 누구인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56년경)는 로마에서 카라바조풍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1611년, 아버지가 원근법 지도를 맡긴 동료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가 그를 강간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듬해 로마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젠틸레스키는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끈으로 조이는 고문(시빌레)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타시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형은 사실상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재판 직후 젠틸레스키는 피렌체로 이주해 화가로 활동을 이어갔고, 1616년에는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Accademia delle Arti del Disegno)에 여성 최초로 정식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런던을 오가며 당대 유럽 최고 수준의 후원자들—메디치 가문, 찰스 1세 등—을 위해 작업했습니다.

본문 — 유디트서 13장

유디트서는 개신교 정경에는 들지 않지만 가톨릭·정교회 전통에서는 정경으로, 개신교 전통에서도 외경으로 널리 읽혀 온 본문입니다.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 성읍 베툴리아를 포위하자, 과부 유디트는 몸소 적진에 들어가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술에 취해 잠든 그를 살해합니다.

“유디트는 침상 기둥으로 다가가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채를 잡고 ‘이스라엘의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소서’ 하고 말한 다음, 있는 힘을 다하여 그의 목을 두 번 내리쳐 머리를 잘라 냈다.” (유디트서 13:6-8, 공동번역 축약)

본문은 유디트의 행위를 하느님께 힘을 구하는 기도로 감싸면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라는 표현으로 이것이 결코 손쉬운 일격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림 분석 — 우아한 처형이 아니라 힘겨운 노동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611-12년경, 카포디몬테 미술관 소장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611-12년경, 캔버스에 유채, 158.8×125.5cm — 카포디몬테 미술관(나폴리).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auto-expired, 저자 1652/56년경 사망).

젠틸레스키는 같은 시기 아버지 오라치오나 선배 카라바조가 그린 유디트—홀로페르네스와 거리를 둔 채 다소 정적으로 칼을 휘두르는—와 확연히 다른 구도를 택합니다. 유디트와 하녀 아브라는 화면 상단에서 홀로페르네스의 몸을 짓누르듯 붙들고, 팔을 걷어붙인 유디트의 두 손은 칼자루를 꽉 움켜쥔 채 온몸의 무게를 싣습니다. 하녀는 방관자가 아니라 홀로페르네스의 저항하는 팔을 붙드는 적극적인 협력자로 그려집니다. 강렬한 명암 대비—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을 물려받은 어두운 배경과 침대보·팔뚝에 떨어지는 강한 빛—는 이 장면에서 그 어떤 우아함도 걷어내고, 두 여성이 함께 해내야 하는 육체적 노동 그 자체에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젠틸레스키는 같은 주제를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그렸는데(우피치 미술관 소장 1614-20년경 버전 등), 이 나폴리 소장본은 그중에서도 재판 직후에 그려진 가장 초기작으로 꼽힙니다.

신학적 해석 — 자전적 독법과 그 너머

미술사가 메리 개러드는 1989년 저서에서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연작을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에서 여성 영웅의 이미지”라는 틀로 읽어내며, 신화·성서 속 강인한 여성 인물을 향한 그의 반복적 천착이 당대 남성 화가들의 관습적 재현을 정면으로 벗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저작 이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를 1611-12년 재판이라는 개인사의 직접적 반영—가해자 얼굴에 홀로페르네스를 겹쳐 놓은 복수의 초상—으로 읽는 해석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R. 워드 비셀은 1999년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에서 이런 단선적 자전적 독법에 신중할 것을 촉구합니다. 젠틸레스키가 활동한 시기와 지역에서 유디트는 이미 피렌체·로마 후원자들 사이에 인기 있던 회화 주제였고, 여성 영웅의 힘과 결단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화풍 자체는 그의 개인적 경험 이전에 카라바지스티(카라바조 추종 화가군)의 폭넓은 시각적 관습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두 해석 사이에서 이 그림이 여전히 묻는 것은 이것입니다—본문이 유디트에게 부여한 “있는 힘을 다하여”라는 행위를, 화가는 왜 굳이 이토록 힘겹고 협력적인 육체노동으로 그려야 했는가. 그 답이 화가 개인의 상처에 있든, 아니면 여성 화가가 여성 영웅을 그릴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시선의 차이에 있든,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성서(와 외경) 속 여성의 결단을 우아한 알레고리가 아니라 실제로 힘이 드는 사건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다음 편 예고

이로써 바로크 화가 5인을 다룬 2단계 연재가 마무리됩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르네상스·매너리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수태고지를 그린 도미니크회 수사 화가 프라 안젤리코를 다룹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국내

  • 신영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상 연구」, 『유럽문화예술학논집』 8권 2호(통권 16호, 2017), 77-93쪽

영미권

  • Mary D. Garrard, Artemisia Gentileschi: The Image of the Female Hero in Italian Baroque Art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9) — 젠틸레스키를 여성 영웅 도상의 틀로 읽어낸 기초 연구서
  • R. Ward Bissell, Artemisia Gentileschi and the Authority of Art: Critical Reading and Catalogue Raisonné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9) — 자전적 독법에 신중을 기하며 전작을 정리한 카탈로그 레조네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학술지 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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