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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성서해석

화가들의 성서해석 ⑩ 조르주 드 라 투르 — 「목수 요셉」과 아이의 손을 투과하는 빛

어두운 작업장, 나이 든 목수가 몸을 굽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있습니다. 그 곁에 선 아이가 촛불 하나를 손으로 감싸 들고 아버지의 손끝을 비춥니다. 방 안의 모든 빛은 이 작은 불꽃 하나에서 나옵니다—그런데 화가는 그 촛불의 불꽃 자체를 아이의 손가락 뒤에 절반쯤 가려 그립니다. 손가락 사이로, 손바닥을 투과해 붉게 빛나는 살이 보입니다. 이 소년이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것을, 화가는 굳이 말하지 않고도 이 빛의 성질만으로 이야기합니다. 화가들의 성서해석, 이번 회차는 프랑스 로렌 지방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로 넘어갑니다.

라 투르는 누구인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는 오늘날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방의 작은 마을 비크쉬르세이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생전에는 로렌 공작과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로 임명될 만큼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후에는 완전히 잊혀 20세기 초까지 미술사에서 지워진 이름이었습니다—1915년 독일 미술사가 헤르만 포스가 그의 작품을 재발견하면서 비로소 재평가가 시작되었습니다. 카라바조의 명암법을 네덜란드 화가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흡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라 투르는, 카라바조와 달리 자연광이 아니라 촛불이나 등잔 같은 인공 광원 하나에 화면 전체를 의존시키는 독자적인 화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그림 대다수는 이렇게 단일한 불빛이 인물의 얼굴과 손을 비추고, 나머지는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구성을 취합니다.

본문 — 누가복음 2장 51~52절과 나사렛의 침묵

성서는 예수의 소년기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1-52)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란 예수의 나사렛 시절에 대해 복음서가 남긴 것은 이 두 절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그 침묵의 여백을 채우는 것이 오랫동안 그리스도교 신심의 몫이었습니다.

그림 분석 — 아이의 손을 투과하는 빛

조르주 드 라 투르, 「목수 요셉」, 1642년경, 루브르 박물관 소장 조르주 드 라 투르, 「목수 요셉」, 1642년경, 캔버스에 유채, 137×102cm — 루브르 박물관(파리).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PD-Art/PD-old-100-expired, 저자 1652년 사망).

늙은 요셉은 화면 오른쪽에서 몸을 깊이 숙인 채 나무 기둥에 나사송곳(오거)으로 구멍을 뚫는 데 몰두해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노동의 피로와 집중이 그대로 새겨져 있습니다. 왼쪽에 선 소년 예수는 촛불 하나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그 빛을 아버지의 작업 쪽으로 비춥니다. 라 투르 특유의 장치가 여기서 정점에 이릅니다—화가는 촛불의 불꽃을 아이의 손가락 뒤에 거의 가려지도록 배치해, 관객이 불꽃 자체가 아니라 손을 투과해 붉게 물든 살을 보게 만듭니다. 이는 단순한 기교적 과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도상 전통에서 빛은 신성을 표상하는 오래된 상징이며(요한복음 1:4-9,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라 투르는 그 상징을 촛불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물에 담아, 빛의 근원이 촛불이 아니라 그것을 쥔 아이 자신에게 있다는 듯한 인상을 시각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바닥에 흩어진 대패밥과 나무 부스러기, 요셉이 뚫고 있는 나무 기둥의 형상은 훗날 세워질 십자가를 은연중에 예표한다는 것이 여러 미술사가들의 오랜 독법입니다—목수의 평범한 작업 도구가 수난의 그림자를 미리 드리우는 셈입니다.

신학적 해석 — 나사렛의 침묵을 채우는 상상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프랑스는, 추기경 피에르 드 베륄(Pierre de Bérulle, 1575-1629)이 창시한 이른바 ‘프랑스 영성학파’(École française de spiritualité)가 가톨릭 신심을 주도하던 시기였습니다. 베륄과 그 계승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이루는 개별 ‘신비’(mystères)—탄생, 유아기, 나사렛에서의 노동, 공생애, 수난—하나하나를 묵상의 대상으로 삼는 영성을 강조했고, 이는 성육신 자체에 깊이 집중하는 신학적 태도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성서가 침묵하는 나사렛 시절은, 그러므로 이 시대 신자들에게 상상력으로 채워야 할 여백이자 동시에 성찰의 대상이었습니다.

라 투르의 「목수 요셉」은 그 여백을 화가 나름의 방식으로 채웁니다. 그림 속 예수는 기적을 행하지도, 가르침을 베풀지도 않습니다—그저 아버지 곁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지극히 평범한 몸짓 안에, 화가는 손을 투과하는 빛이라는 시각적 장치를 통해 이 아이가 단순한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은밀히 새겨 넣습니다. 신성이 인간의 일상적 노동 한가운데, 나무 부스러기와 촛농 냄새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저녁 시간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것이 라 투르가 침묵하는 복음서 본문 위에 그려 넣은 신학적 상상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회차는 이탈리아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를 다룹니다. 여성 화가가 성서 속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를 살펴봅니다.

이 글이 기댄 문헌

영미권

  • Benedict Nicolson and Christopher Wright, Georges de La Tour (Phaidon, 1974) — 라 투르 재평가를 이끈 영미권 고전 연구서
  • Philip Conisbee (ed.), Georges de La Tour and His World (National Gallery of Art / Kimbell Art Museum, 1996) — 워싱턴 국립미술관·킴벨미술관 전시 도록 겸 학술 논문집

프랑스어권

  • Jacques Thuillier, Georges de La Tour (Flammarion, 초판 1993) — 로렌 지역 문헌·기록에 근거해 라 투르의 전작을 정리한 프랑스어권 표준 연구서

그림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 퍼블릭 도메인(PD-Art)으로 등재된 스캔의 축소본(1280px)을 사용했습니다. 위 문헌은 전부 실재하는 표준 연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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