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하나님의 형상(첼렘 엘로힘)이란 무엇인가 — 고대 근동 왕권 언어로 읽는 창세기 1:26-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 1:27). 이 구절에서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답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성·자유의지·도덕성 같은 인간의 속성에서 하나님과의 닮음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존재”라는 신학적 서술이다. 두 답변 모두 신학 전통 안에 오래된 뿌리를 가진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구약학과 고대 근동학의 연구는 이 단어의 원래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상당히 다른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Mbzt · 함무라비 법전 석비 상단, 약 기원전 1754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 · CC BY 3.0. 태양신 샤마쉬(왼쪽) 앞에 왕이 경배하는 장면 — 왕이 신의 대리자로서 법을 위임받는 고대 근동 왕권 이데올로기의 전형적 도상이다.
첼렘(צֶלֶם)이 고대 근동에서 의미한 것
히브리어 첼렘(צֶלֶם)의 아카드어 동족어(cognate)는 살무(salmu)로, “상(像), 조각상”을 뜻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왕은 신의 “첼렘”으로 불렸다. 이 칭호는 단지 외모상의 닮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왕은 신을 대신해 그의 통치 영역을 다스리는 대리자(representative), 곧 “신의 통치를 지상에 실현하는 존재”였다. 이 사상은 왕권 비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고대 근동 왕들은 이 이념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했다. 왕은 정복한 땅과 멀리 떨어진 속국 곳곳에 자신의 조각상(tselem/salmu)을 세워 그것이 자신의 통치를 대리하게 했다. 왕의 조각상이 세워진 곳은 왕의 권위가 미치는 곳이었다. 이 관행은 고대 근동 전역에서 확인된다.
J. 리처드 미들턴(J. Richard Middleton)은 2005년 저서 『해방하는 형상』(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에서 이 배경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미들턴은 첼렘 엘로힘(하나님의 형상) 개념이 고대 근동 왕권 이데올로기에서 직접 끌어온 언어이며, 창세기 저자가 이 언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이 해석은 오늘날 창세기 연구의 주류를 형성하는 “기능적 대리자” 해석의 핵심이다.
창세기의 파격적 선언
바로 여기서 창세기의 파격이 드러난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 “신의 형상”은 왕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칭호였다. 창세기 1:26-27은 이 언어를 모든 인간에게 확장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창 1:26-27, 개역개정).
“왕”이 아니라 “사람”(아담, אָדָם — 복수형, 인류 전체)이 하나님의 첼렘이다. 왕 한 사람이 신의 대리자로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하는 체계에서, 흙으로 빚어진 모든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존재라는 선언이 나온 것이다. 미들턴은 이것을 “왕권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royal ideology)라 부른다.
이 선언이 당시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는 그 사회 맥락을 고려할 때 분명해진다. 고대 근동 사회는 극도로 계층화되어 있었다.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신성한 권위를 부여받았고, 나머지 백성은 그 아래에 있었다. 창세기는 그 계층 구조를 한 선언으로 뒤집는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담지자라면, 어떤 인간도 단순히 다른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인간 존엄성의 가장 오래된 신학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세 가지 해석 흐름과 그 관계
첼렘 엘로힘의 의미를 둘러싼 신학적 해석은 크게 세 흐름으로 나뉜다. (1) 실체적 닮음: 이성·자유의지·도덕 판단 능력처럼 인간이 하나님과 공유하는 속성에서 유사성을 찾는 해석(어거스틴, 칼빈 등의 전통). (2) 기능적 대리자: 고대 근동 왕권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사명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 학계의 주류. (3) 관계적 존재: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는 실존적 강조(칼 바르트 등).
중요한 것은 이 세 흐름이 반드시 서로를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능적 대리자 해석이 현대 구약학에서 가장 강조되지만, 그것이 인간의 특별한 속성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 1:26-27의 “형상”이 고대 왕권 언어에서 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 언어가 신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더 넓은 토론의 출발점이 된다.
참고 자료
- J. Richard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 (Brazos Press, 2005)
- Claus Westermann, Genesis 1–11: A Commentary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4), pp. 147–158
- John H. Walton, The Lost World of Genesis One: Ancient Cosmology and the Origins Debate (IVP Academic, 2009)
- 창세기 1:26–27, 마소라 본문; 히브리어 צֶלֶם(첼렘) 및 아카드어 salmu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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