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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아바'는 아기말 '아빠'가 아니다

설교에서 “아바 아버지여”(막 14:36)를 다룰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설명이 있다. “아바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가 아니라 아람어인데, 이것은 유대인 가정에서 아기가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말, 오늘날로 치면 ’아빠’에 해당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이렇게 부르신 것은 전례 없는 파격적 친밀함이다.”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 설명은 20세기 신약학계의 거장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로부터 나왔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이후 학계에서 조목조목 반박됐다.

예레미아스의 주장

예레미아스는 『예수의 기도』(The Prayers of Jesus, SCM Press, 1967)의 “아바” 논문과 『신약신학』(New Testament Theology, SCM Press, 1971)에서, 아바가 “일상 대화에서 쓰이는 아이들의 말”(“a children’s word used in everyday talk”)이라고 주장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듯” 확신과 신뢰, 동시에 경외와 순종으로 불렀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이 해석은 설교와 대중 신앙 서적을 통해 널리 퍼졌고, 지금도 “아바=아빠”라는 등식은 많은 설교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제임스 바의 정정 — “아바는 아기말이 아니다”

옥스퍼드의 셈어학자 제임스 바(James Barr)는 1988년 “Abba Isn’t ‘Daddy’“라는 논문을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39권 1호(28-47쪽)에 발표하며 이 등식을 무너뜨렸다. 바의 핵심 논점은 이렇다. 아람어 “아바”는 격식을 갖춘 언어(formal register)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친밀한 언어(colloquial register)에 속한 호칭이지만, 그렇다고 아기의 옹알이에 해당하는 유아어는 아니었다. 실제로 고대 아람어·랍비 문헌에서는 다 자란 성인 — 심지어 나이 든 랍비들 — 도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일상적으로 “아바”를 썼다. 바는 이렇게 정리한다. “신약 저자들이 ’아빠(Daddy)’라는 뉘앙스를 의식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그 뉘앙스가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예레미아스 본인도 비판을 접한 뒤 초기 주장에서 점차 물러섰다. 그가 원래 강하게 내세웠던 “아기의 말”이라는 표현은 이후 저작에서 누그러졌다. 오늘날 학계의 정리는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ser) 등이 요약하듯, “아바”는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인 담화에서도 널리 쓰인 호칭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친밀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의 논문을 “아바에는 친밀함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과잉 해석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바 자신도 아바가 격식체가 아닌 일상어 등록(register)에 속한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 다만 그것이 “아빠” 같은 유아어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아바”는 근엄하고 사무적인 존칭이 아니라, 신뢰와 가까움을 담은 성인의 호칭 “아버지”에 더 가깝다. 격식과 거리를 벗어난 부름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친밀하지만, 그 친밀함이 유아적 응석의 언어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균형은 바울 서신에서도 확인된다. 로마서 8장 15절과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어로 편지를 쓰면서도 아람어 “아바”를 그대로 남기고 그리스어 “호 파테르”(ὁ πατήρ, 아버지)를 나란히 덧붙인다. “아바, 아버지”라는 이중 표기다. 굳이 번역하지 않고 아람어 원음을 남겨둔 것은, 초대교회 예배에서 이 말이 예수님의 기도 언어를 직접 상속한 표현으로 특별히 소중히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정리

“아바 = 아기말 아빠”라는 설명은 설교에서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언어학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아바는 성인도 쓰는 일상어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신 것이 가까움과 신뢰를 담은 파격적인 표현이라는 점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파격은 “아기가 아빠를 부르는 응석”이 아니라, “다 자란 아들이 신뢰와 존경을 담아 아버지를 부르는 친밀함”에서 나온다.

참고 자료

  • James Barr, “Abba Isn’t ‘Daddy’,”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39.1 (1988): 28–47
  • Joachim Jeremias, The Prayers of Jesus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SCM Press, 1967), “Abba” 논문
  • Joachim Jeremias, New Testament Theology, vol. 1 (SCM Press, 1971)
  • 로마서 8:15, 갈라디아서 4:6 (바울이 아람어 “아바”와 그리스어 “호 파테르”를 병기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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