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신용카드만 한 파피루스 조각이 신약 연대 논쟁을 바꾼 이야기 — P52
가로세로 9cm, 6cm. 신용카드 한 장보다 조금 큰 파피루스 조각 앞뒤에 그리스어 글자 몇 줄이 남아 있다. 이것이 현존하는 신약성경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P52(라일랜즈 파피루스, Papyrus Rylands Greek 457)다. 그런데 이 손바닥만 한 조각을 둘러싸고 90년 가까이 이어진 연대 논쟁은, 정작 “얼마나 오래됐는가”보다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는가”를 더 정직하게 묻게 만든다.
이집트 시장에서 서재 서랍까지
P52는 1920년 이집트 고서 시장에서 파피루스학자 버나드 그렌펠(Bernard Grenfell)이 구입한 파피루스 무더기에 섞여 있었다. 정확한 출토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이 조각이 요한복음의 일부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1934년, 콜린 H. 로버츠(Colin H. Roberts)가 맨체스터 존 라일랜즈 도서관 소장 파피루스들을 정리하다 이 조각을 판독하면서였다. 앞면(recto)에는 요한복음 18장 31-33절, 뒷면(verso)에는 18장 37-38절에 해당하는 구절들이 남아 있었다 — 판독 가능한 그리스어 글자는 총 114자에 불과했다.
로버츠는 이 발견을 1935년 말 별쇄본으로 먼저 공개하고, 이듬해 정식으로 『Bulletin of the John Rylands Library』 20권 1호(1936년, 45-55쪽)에 발표했다. 그는 당대에 이미 연대가 확인된 다른 파피루스 문서들과 서체를 비교하는 고문서학(palaeography) 방법을 사용해, 이 조각을 AD 100~150년경으로 추정했다. 이후 이 추정은 흔히 “AD 125년경”이라는 중간값으로 압축되어 인용되곤 했다.
라일랜즈 파피루스 P52(앞면), 요한복음 18:31-33 그리스어 본문 · 존 라일랜즈 도서관(맨체스터) 소장 · Public Domain (PD-old/PD-scan). 버나드 그렌펠이 1920년 촬영·소장한 원본 조각의 사진입니다.
왜 이 작은 조각이 논쟁을 일으켰나
19-20세기 초 일부 신약학자들(대표적으로 튀빙겐 학파 계열)은 요한복음이 2세기 후반, 심지어 그보다 늦게 저작됐다고 주장했다. 요한복음의 높은 그리스도론이 초기 기독교의 소박한 신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만약 그 주장이 맞다면, 이집트 변방까지 필사본이 유통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때 P52 같은 사본이 2세기 초에 존재할 수 없어야 한다.
로버츠의 연대 추정이 학계에 준 충격은 여기서 나왔다. AD 125년경 이집트의 어느 마을에서 요한복음 사본이 이미 필사·유통되고 있었다면, 이는 요한복음이 그보다 상당히 이전, 대략 1세기 말에는 저작되어 있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P52는 20세기 신약 연대 논쟁에서 “가장 늦은 저작설”에 대한 강력한 반증 자료로 오랫동안 인용되어 왔다.
“AD 125년”을 너무 믿지 말 것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고문서학적 연대 추정은 필체 비교에 의존하는 만큼 본질적으로 근사치다. 필체는 연도가 적힌 달력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2005년 브렌트 농브리(Brent Nongbri)는 『Harvard Theological Review』 98호(23-48쪽)에 발표한 논문 “The Use and Abuse of P52: Papyrological Pitfalls in the Dating of the Fourth Gospel”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그는 로버츠가 비교 자료로 쓴 파피루스들 상당수가 그 자체로 정확한 연대가 확정되지 않은 문서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고문서학적 필체 비교만으로는 대개 7080년 이상의 폭을 두는 것이 온당하다고 주장했다. 농브리의 결론은 P52의 필체가 AD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까지의 범위와도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프란체스카 오르시니와 빌리 클라리스(Orsini and Clarysse, 2012)도 별도의 분석을 통해 AD 125175년경이라는, 로버츠보다 다소 늦춰진 범위를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고 P52가 갑자기 “늦은 사본”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농브리 역시 P52가 초기 사본이라는 점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AD 125년”이라는 단일 숫자를 마치 발굴 기록처럼 확정된 사실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직한 결론은 이렇다 — P52는 여전히 현존 신약 사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사본군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정확한 연도는 “AD 100~150년” 혹은 더 넓게 “2세기”라는 범위로 말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더 정직하다.
지금도 서랍 속에
P52는 지금도 맨체스터 존 라일랜즈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신용카드만 한 이 조각이 가르쳐주는 것은 단지 “얼마나 오래됐는가”가 아니라, 고대 문헌을 다루는 학문이 얼마나 신중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가이다.
참고 자료
- C. H. Roberts, “An Unpublished Fragment of the Fourth Gospel in the John Rylands Library,” Bulletin of the John Rylands Library 20.1 (1936): 45–55
- Brent Nongbri, “The Use and Abuse of P52: Papyrological Pitfalls in the Dating of the Fourth Gospel,” Harvard Theological Review 98.1 (2005): 23–48
- Pasquale Orsini and Willy Clarysse, “Early New Testament Manuscripts and Their Dates: A Critique of Theological Palaeography,” Ephemerides Theologicae Lovanienses 88.4 (2012): 443–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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