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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알고 보니

선악과가 사과라는 근거, 성경 본문에도 어원에도 없습니다

사과는 어디서 왔을까. 에덴동산 그림 속의 사과, 영어 표현 “Adam’s apple”(목젖), 유럽 동화 속 독이 든 사과, 뉴튼의 만유인력 사과까지 — 서구 문화에서 에덴의 열매는 너무도 당연하게 빨간 사과다. 그런데 창세기 3장 히브리어 원문을 열어보면 사과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Lucas Cranach the Elder, Adam and Eve, c. 1526 루카스 크라나흐 아버지(Lucas Cranach the Elder) · 아담과 이브(Adam and Eve), 16세기 · 공개 도메인(PD). 서유럽 르네상스 미술에서 에덴의 열매를 사과로 묘사한 전통이 반복되었지만, 이는 화가들의 도상 관습이지 성경 원문의 기술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본문이 말하는 것: 그냥 “열매”

창세기 3:6의 히브리어 원문은 이렇게 쓰인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여기서 “열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פְּרִי (페리)**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특정 수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열매” 혹은 “과실” 전반을 가리키는 포괄적 단어다.

창세기 1:11에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의 열매도 페리, 창세기 1:29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된 모든 나무의 열매도 페리다. 성경 어디에도 이 나무가 사과나무라거나, 이 열매가 사과라는 진술은 없다.

본문의 초점은 열매 종류에 있지 않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עֵץ הַדַּעַת טוֹב וָרָע, 에츠 하-다아트 토브 바-라)라는 이름이 이미 신학적 핵심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가 물어보는 것은 “어떤 과일이었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설정하신 경계를 인간이 어떻게 넘어섰는가”이다. 빅터 해밀턴(Victor P. Hamilton)이 NICOT 창세기 주석에서 지적하듯, 창세기 저자는 열매의 식물학적 정체에 전혀 관심이 없다.

랍비 문헌이 말하는 것: “사과가 아닐 수 있다”

선악과의 수종에 관한 전통적 논의는 랍비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랍비들의 답은 사과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세기 미드라쉬인 《창세기 라바》(Bereshit Rabbah)는 이 열매에 대해 여러 견해를 전한다. 랍비 예후다는 밀(חיטה, 히타), 랍비 느헤미야는 무화과(תאנה, 테에나)를 들고, 일부는 포도(ענב, 아나브)나 에트로그(시트론)를 제안한다. 사과를 언급하는 랍비 전통도 있지만, 그것이 단일한 합의된 전통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고대 유대 전통 안에서도 이 열매는 이미 불확실했다.

영어권에서는 달콤하고 둥글고 붉은 사과가 에덴 열매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전통이 특히 강하게 굳어진 것은 중세 후기 서유럽 기독교 미술에서, 사과가 아담과 하와를 그린 성화(聖畵)의 단골 소품이 되면서부터다.

히에로니무스 말장난 설: 사실인가?

사과 전통의 기원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4세기 성경 번역가 히에로니무스(Jerome)가 라틴어 불가타(Vulgate)를 번역할 때, 라틴어에서 “사과”와 “악”이 모두 malum이라는 같은 단어를 쓴다는 사실에서 말장난을 했고, 그 결과 “악의 열매”가 “사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불가타 본문을 직접 확인하면 사실이 아니다. 창세기 3장 불가타 본문은 히에로니무스가 그 자리에 malum이 아니라 **fructus(열매)**를 사용했다. 라틴어 전치 번역본인 베투스 라티나(Vetus Latina) 역시 fructus다. 히에로니무스는 창세기 3장에서 말장난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히에로니무스의 언어유희 때문에 사과가 됐다”는 이야기 자체가 나중에 덧붙여진 속설이다.

사과 전통의 실제 기원은 복잡하고 단선적이지 않다. 중세 라틴어권 예술가들이 에덴을 그릴 때 친숙한 과일을 선택했고, 사과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관습이 되었다. 한번 굳어진 도상 전통은 글보다 강하다.

본문의 관심사

James Tissot, Adam and Eve Driven from Paradise, c. 1896–1902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 c. 1896–1902 · 공개 도메인(PD). 화가의 상상에 의한 역사적 장면 재현이며 당대의 기록 자료가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이 실제로 물어보는 질문은 “어떤 종류의 과일이었는가”가 아니다. 성경 신학자 존 월튼(John H. Walton)이 《NIV 적용 주석》(NIV Application Commentary on Genesis)에서 강조하듯, 창세기 저자의 관심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이름에 있다. 이 나무는 특정 식물학적 수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갖고 계신 선악 판단의 영역에 인간이 불법으로 침입하는 사건을 상징한다.

K.A. 매튜스(K.A. Mathews)도 NAC 창세기 주석에서 이 점을 확인한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열매의 종류가 아니라 그 열매가 달린 나무의 신학적 의미, 그리고 그 경계를 넘은 인간의 선택이다. 사과냐 무화과냐 포도냐 하는 질문은 창세기 저자에게는 아예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이다.

참고 자료

  •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17 (NICOT; Eerdmans, 1990)
  • K.A. Mathews, Genesis 1-11:26 (New American Commentary; Broadman & Holman, 1996)
  • John H. Walton, Genesis (NIV Application Commentary; Zondervan, 2001)
  • 창세기 라바(Bereshit Rabbah), 15장 — 선악과 수종에 대한 랍비 논의
  • 히에로니무스, Biblia Sacra Vulgata, 창세기 3장 — fructus 사용 확인 (불가타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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