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알고 보니
아기 이름이 '서둘러 약탈하라'였다 — 이사야의 아들 마헬 살랄 하스 바스
성경에서 가장 긴 이름을 꼽는다면 이사야 8:1에 등장하는 이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מַהֵר שָׁלָל חָשׁ בַּז — 로마자로 옮기면 mahēr šālāl ḥāš baz, 한글 음역으로는 마헬 살랄 하스 바스. 그런데 이것은 이름인 동시에 메시지입니다. 네 단어 안에 하나의 선포가 들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 이름을 어린 아들에게 붙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 이름을 큰 두루마리에 써서 증인 두 명 앞에 기록하라고 명하셨습니다(8:1-2). 이름이 먼저 공개 문서로 기록되고, 그 다음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예언의 각인이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 궁전 부조(세부), 앗수르 · Public Domain.
네 단어의 뜻
히브리어를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 מַהֵר (mahēr) — “서둘러라, 급히” (동사 מהר의 칼 부정사, 부사적 기능)
- שָׁלָל (šālāl) — “전리품, 노략물” (명사; 전쟁에서 빼앗은 재물)
- חָשׁ (ḥāš) — “서두르다, 급히” (또 다른 서두름의 표현; 동사 חוש에서)
- בַּז (baz) — “약탈물, 먹잇감” (명사; 포로나 재물)
두 가지 서두름의 표현(mahēr, ḥāš)과 두 가지 약탈의 표현(šālāl, baz)이 쌍을 이룹니다. “서둘러 노략하라, 빠르게 탈취하라” — 이름 자체가 긴박한 리듬입니다. J. J. M. 로버츠는 헤르메네이아 주석 시리즈의 이사야 주석(Fortress Press, 2015)에서 이 이름을 일종의 전쟁 함성(war cry)으로 기술합니다. 아이가 “아빠, 엄마”라고 말하기도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게 본문의 예언입니다(8:4).
역사가 이름을 확인한 방식
이 예언의 지시 대상은 구체적입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시리아)이 남유다를 위협하던 시대(기원전 730년대)를 배경으로, 이사야는 그 두 나라의 운명을 한 아기의 이름 속에 압축했습니다. 하야임 타드모르가 편집한 『디글랏빌레셀 3세의 비문들』(이스라엘 과학인문학원, 1994)에 따르면,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는 기원전 732년 다메섹을 함락하고 아람 왕 르신을 처형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역시 이 시기 대대적인 앗수르의 압박을 받아 영토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아이가 아직 말을 못 하는 사이에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알프레드 C. 웨더스톤 · 디글랏빌레셀 3세의 다메섹 점령 · Public Domain.
이사야 가족의 이름이 함께 만드는 메시지
이사야 7-8장을 읽다 보면 세 이름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 이사야(יְשַׁעְיָהוּ, Yeshayahu) —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 스알 야숩(שְׁאָר יָשׁוּב, Shear-jashub) —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7:3에서 이사야와 함께 등장하는 첫째 아들)
- 마헬 살랄 하스 바스 — “서둘러 노략하라, 빠르게 탈취하라”
이사야는 이 가족을 가리켜 “이사야와 그의 자녀들은 이스라엘에게 표징과 징조가 되었다”고 직접 말합니다(8:18). 가족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심판과 소망과 구원이 함께 울립니다. 마헬 살랄 하스 바스는 압도적인 앗수르의 침략을 예고하는 이름이지만, 스알 야숩(“남은 자가 돌아오리라”)과 이사야(“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이름들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로버츠는 이사야의 세 이름 모두 8:18의 “표징과 징조”라는 언명 아래 하나의 신학적 선언을 이루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심판이 오지만 남은 자가 있을 것이고, 그 전 과정에서 여호와는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증인 앞에 기록된 이름
아이의 출생 이전에 이름을 두루마리에 적어 두었다는 세부 사항(8:1-2)이 중요합니다. 제사장 우리야와 예베렉야의 아들 스가랴라는 두 신뢰할 만한 증인이 그 기록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작명 의례가 아닙니다. 공증된 예언적 문서처럼 기능합니다. 이름이 적힌 시점과 그 내용이 역사에서 성취된 시점 사이의 간격이 공개적으로 검증 가능했습니다.
이사야 7-8장을 세 이름과 함께 읽는 방법
이사야 7-8장을 다시 읽을 때, 세 이름이 등장하는 곳에 표시해 두십시오. 7:3에서 스알 야숩, 7:14에서 임마누엘(이사야의 아들은 아니지만 같은 이름-표징 군집의 일부), 8:1-4에서 마헬 살랄 하스 바스 — 이 이름들이 서로 어떤 배열을 이루는지 보십시오.
아기의 이름이 정치적 예언이고, 그 예언이 실제 역사에서 성취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사야가 왜 이 이름들을 “이스라엘에게 표징과 징조”라고 불렀는지가 조금씩 명확해집니다. 이사야의 집에서는 가족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심판과 남은 자와 구원이 함께 울렸습니다.
참고 자료
-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이사야 7:3; 8:1–4, 18 (히브리어 본문).
- J. J. M. Roberts, First Isaiah: A Commentary, Hermeneia (Fortress Press, 2015).
- Hayim Tadmor, The Inscriptions of Tiglath-pileser III, King of Assyria (Israel Academy of Sciences and Humanities,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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