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준비
교회력을 따라 설교하기: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1년으로 살다
매주 주일 아침, 설교자 앞에는 하나의 질문이 기다린다. “이번 주엔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설교자가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다. 시의성 있는 주제를 택하거나, 회중의 필요를 보고 본문을 정하거나, 관심 있는 책을 강해해 나간다. 유연하고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교회력(교회력, Liturgical Year)**을 따르는 방식이다. 1,500년이 넘는 기독교 전통이 미리 정해둔 성경 본문과 절기의 흐름을 따라, 매 주일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순환하며 선포한다.
두 번째 방식은 한국교회에서 낯설다. 그러나 세계 교회의 상당수는 이 방식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예배를 드린다. 무엇이 다른가?
교회력이란 무엇인가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원 역사를 1년 단위로 반복하는 신학적 시간 체계다. 대림절에서 시작해—아직 오지 않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성탄,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연중시기를 거쳐 다시 대림절로 돌아온다. 그리스도의 탄생, 사역, 수난, 부활, 승천, 성령 강림이 매해 반복된다.
이 구조는 초대교회에서 유기적으로 형성되었다. 4세기경 부활절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이후 성탄, 대림절, 사순절 등이 순차적으로 정착했다.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교회력은 단순한 달력이 아니라 “복음 전체를 시간 속에 새겨 넣은 구조”다.
교회력의 절기 구조
| 절기 | 시기 | 전례 색 | 핵심 주제 |
|---|---|---|---|
| 대림절(Advent) | 성탄 4주 전 | 보라 | 오실 메시아를 기다림 |
| 성탄절(Christmas) | 12/25–1/6 | 흰색·금색 | 성육신의 기쁨 |
| 주현절(Epiphany) | 1/6 이후 | 초록·흰색 | 열방에 드러난 그리스도 |
| 재의 수요일 | 사순절 시작 | 보라 | 회개, 죽음을 기억함 |
| 사순절(Lent) | 부활절 40일 전 | 보라 | 그리스도의 고난 동참 |
| 부활절(Easter) | 봄 첫 보름달 다음 주일 | 흰색 | 부활·승리 |
| 성령강림절(Pentecost) | 부활 50일 후 | 빨강 | 성령 강림, 교회 탄생 |
| 연중시기(Ordinary Time) | 나머지 기간 | 초록 | 제자도, 성장 |
성서정과란 무엇인가
교회력과 함께 사용되는 도구가 **성서정과(聖書正課, Lectionary)**다. 교회력의 각 주일에 읽을 성경 본문을 미리 배정한 목록이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개정 공동 성서일과(Revised Common Lectionary, RCL)**로, 성공회·루터교·감리교·일부 장로교 교단이 공통으로 사용한다.
RCL은 3년 순환 방식이다.
- 가해(Year A): 마태복음 중심
- 나해(Year B): 마가복음 중심
- 다해(Year C): 누가복음 중심
요한복음은 세 해에 걸쳐 절기별로 분산된다. 매 주일마다 네 본문이 지정된다: 구약 본문, 시편, 서신서, 복음서. 설교자는 네 본문 중 하나를 중심으로 설교하되, 나머지 본문들이 그 본문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이 체계의 특별한 점은 세계성이다. 최주훈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 있는 중앙루터교회와 뉴욕의 감리교회, 런던의 한 성공회 성당이 같은 주일에 같은 성경 본문을 읽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어 성서일과를 제공하고 있다.
왜 한국교회는 교회력을 잘 모르는가
한국 개신교 신자에게 교회력은 낯설거나 “가톨릭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 쉽다. 이유는 역사에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에 온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당시 미국 교회 내에서도 교회력 인식이 본격화되기 전의 흐름을 가져왔다. 한국교회는 이 신학적 유산을 처음부터 받지 못한 채 출발한 것이다. 최주훈 목사의 진단처럼, 교회력은 한국교회에서 “거부된” 것이 아니라 “전해지지 않은” 것에 가깝다.
그 결과 생기는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설교자가 모든 본문 선택권을 갖는다는 것은, 회중이 어떤 성경 본문을 듣고 어떤 본문을 평생 한 번도 못 듣는지가 설교자 한 사람의 취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교회력 설교의 유익
강단이 균형 잡힌다
설교자에게는 선호하는 본문이 있다. 잘 아는 책, 편한 주제, 준비가 수월한 본문들. 성서정과를 따르면 3년 안에 성경의 주요 본문이 고르게 선포된다.
최주훈 목사는 이 문제를 정확히 짚는다: “교인들이 성경의 어떤 부분을 듣고 어떤 부분을 듣지 못하는지가 복음의 전체 내러티브가 아니라 한 사람의 취향에 의해 결정되는 셈.”
설교자가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교회력 설교의 핵심은 설교자가 회중을 그리스도의 이야기 안으로 이끈다는 데 있다. 대림절에는 기다림을, 고난주간에는 수난을, 부활절에는 부활의 충격을.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력이라는 시간 구조 안에서 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해운대 감리교회 한석문 목사는 이 연결을 더 깊은 차원에서 바라본다. 그는 교회력·성서정과·성만찬이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예배 구조를 이룬다고 말한다.
“예배의 삼위일체적 요소는 성서일과와 교회력, 성만찬으로 구성된다. 교회력을 따라 공전하며 묵상하고 선포된 성서일과는 반드시 성찬을 통해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도달하게 한다.”
그는 나아가 한국교회가 성만찬을 멀리한 것과 설교의 방향 상실이 직결된다고 진단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동안 성찬을 버린 까닭에 말씀마저 버리고 말았다.”
설교 준비에 방향이 생긴다
매주 “무엇을 설교할까”를 새로 결정해야 하는 부담이 사라진다. 다음 달, 다음 절기, 내년 대림절의 본문이 이미 정해져 있다. 설교자는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에 집중할 수 있다.
교회가 세계 교회와 연결된다
같은 날 서울·뉴욕·런던·나이로비의 교인들이 같은 본문을 듣는다. 교회력 설교는 단순한 방법론을 넘어 에큐메니컬 고백이 된다.
실천: 교회력 설교를 어떻게 준비하는가
1단계: 성서일과를 미리 확인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공식 사이트(lectionary.kmc.or.kr)에서 한국어 성서일과를 제공한다.
2단계: 네 본문을 모두 읽는다. 구약·시편·서신서·복음서를 모두 읽으며 어떤 본문이 이번 주 절기의 핵심을 가장 잘 담는지 살핀다.
3단계: 중심 본문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배치한다. 하나의 본문을 설교 핵심으로 삼되, 다른 본문들을 도입부·예화·적용에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시편은 종종 ‘예배로의 부름’이나 ‘응답 시편’으로 활용하기 좋다.
4단계: 절기의 분위기를 설교에 입힌다. 대림절 설교는 기다림의 긴장감을, 사순절은 자기 점검의 엄숙함을, 부활절은 놀람과 기쁨을 전달해야 한다. 교회력은 설교 본문만이 아니라 설교의 정서적 색조도 안내한다.
5단계: 익숙하지 않은 본문일수록 깊이 판다. 정해진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에게 낯선 본문을 만난다. 이때 원어 분석, 배경 연구, 신학적 주석이 필수적이다. 낯선 본문이 종종 회중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 된다.
교회력은 강단을 설교자의 개인 취향에서 해방시킨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따라, 세계 교회와 함께, 성경 전체를 균형 있게 선포하는 구조다. 처음엔 낯설 수 있다. 그러나 교회력을 몇 해 경험한 설교자들은 공통된 증언을 한다—오히려 자유로워진다. 무엇을 설교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어떻게 선포할지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디모랩은 교회력 각 절기의 성서정과 본문에 대한 원어·역사·신학·배경 자료를 함께 제공하여, 설교자가 교회력의 흐름 안에서 말씀을 더 깊이 준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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