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 8-12절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창세기 49장 8-12절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창세기 49장 8-12절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임종 직전 열두 아들을 모아 선포하는 '가부장 유언 축복시'(Testamentary Blessing Poem)입니다. 이 형식은 이미 앞선 자료집들에서 고대 근동 임종 축복의 제도적 성격(사회적 구속력·상속 효력)과 야곱 일가의 이집트 체류 17년(창 47:28)이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이번 자료집은 그 공통 배경 위에서 49:8-12 유다 축복에만 특화된 네 가지 배경에 집중합니다.

유다 왕권의 역사적 부상과 가나안 지파 구도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유다는 장남도 아니었고, 세겜 사건 이전까지 두드러진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경솔함), 시므온과 레위(잔인한 폭력)의 도덕적 실패는 넷째 아들 유다에게 지도력의 공백을 열어주었습니다. 창세기 서사에서 유다는 요셉 이야기(창 37장)에서 팔기를 제안하고, 다말 사건(창 38장)에서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며, 요셉 앞에서 베냐민을 위한 중보(창 44:18-34)로 리더십을 증명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다 지파는 실제로 헤브론을 중심으로 남부 가나안 산지를 차지하였고, 다윗이 이 지파에서 나와 처음 헤브론에서 7년간 유다 왕으로 통치한 뒤(삼하 2:4,11)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삼하 5:3-5). 창세기 49:8-12는 이 구속사적 흐름의 태동점입니다.

고대 근동의 사자 왕권 도상(Lion Iconography)

고대 근동에서 사자는 왕권과 신적 권위의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영웅은 사자를 제압하는 존재로 묘사되며, 이집트 파라오들은 스핑크스(사자 몸 + 인간 머리)의 형상으로 왕권을 드러냈습니다. 가나안 도시국가들의 왕실 인장(seal)에도 사자가 빈번히 등장합니다. 창세기 49:9가 유다를 '사자 새끼'(גּוּר אַרְיֵה, gur arye, 구르 아르예)로 묘사하고, 이것이 성체 수사자(אַרְיֵה, arye, 아르예), 그리고 맹렬한 늙은 암사자(לָבִיא, labiy, 라비)로 성장하는 이미지는 왕권의 어린 시작에서 완성까지의 성장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이 사자를 일으키겠느냐(מִי יְקִימֶנּוּ, mi yiqimenu)는 수사적 질문은 유다의 왕적 무적성을 선언합니다. 에런 그리너(Aaron Greener)의 연구는 늦청동기시대 가나안 도시국가들의 신전 발굴을 통해 사자 도상이 가나안 제의에서 신과 왕권의 연결 고리로 기능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합니다.[bg1]

'실로' — 지명인가 메시아 칭호인가?

10절의 '실로'(שִׁילֹה, shiloh, 실로)가 가리키는 대상은 성경 해석사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 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실로는 에브라임 산지의 성소 도시(삿 18:31; 삼상 1:3)였으며, 언약궤가 장기 보관된 중요 거점이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10절을 "홀이 유다에서 떠나지 않다가 마침내 (그것을 보관하는) 실로 성소로 향할 것"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예고로 읽습니다. 그러나 칠십인역(LXX)은 "그에게 속한 것"(ᾧ ἀπόκειται)으로, 타르굼 옹켈로스는 "메시아가 오시기까지"로 번역하여 메시아적 성취로 이해했습니다. 이 두 전통의 차이는 히브리어 어원 분석과 결합하여 오늘날까지 학문적 논의를 이끌고 있으며, 개혁주의 언약신학 전통은 이를 일관되게 다윗 왕통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도래를 예고하는 예언으로 읽어왔습니다.

팔레스타인의 포도 문화와 왕의 풍요 이미지

11-12절의 포도나무·포도주·포도 즙 이미지는 가나안 고대 농업 경제의 핵심을 반영합니다.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포도원(שֹׂרֵק, shoreq, 쇼렉 — 고귀한 자색 포도 품종)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부와 번영의 상징이었습니다. "포도나무에 나귀를 맬 정도로 풍요롭다"는 11절의 이미지는 왕의 통치 아래 땅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과장법(hyperbole)으로 드러냅니다 — 나귀를 일반적인 식물(올리브나 무화과)이 아니라 귀한 포도나무에 매는 것은 넘치는 풍요를 표현합니다. 마찬가지로 "포도주로 옷을 빠는" 이미지는 포도주가 물처럼 풍부한 메시아 시대의 복락을 가리킵니다. 12절의 "포도주보다 붉은 눈"과 "우유보다 흰 이"는 유다 왕의 건강과 영화로운 외모를 묘사합니다. 이 풍요 이미지는 이후 아모스 9:13-14의 새 창조 약속("산마다 단 포도주가 흘러내리리라")과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징과 구속사적으로 공명합니다.

우가릿 문헌(Ugaritic texts)은 이 지역에서 포도주가 신들의 잔치와 왕실 제의에서 차지했던 중심적 위치를 보여줍니다. 에런 그리너(Aaron Greener)의 연구에 따르면 늦청동기시대 가나안 도시국가의 신전 발굴에서 포도주 항아리(pithos)와 제의용 잔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으며, 이는 신전 제의가 음식·음료의 공동 나눔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bg1] 야곱의 유다 축복시가 포도주와 우유의 풍요로 결말을 맺는 것은 이 가나안 배경과 대화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왕국의 풍요가 가나안 신전의 제의적 풍요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신학적 전환입니다.

야곱 축복시의 문학 장르와 고대 근동 병행

창세기 49장의 야곱 축복시는 성경 내에서 신명기 33장(모세의 지파 축복)과 사사기 5장(드보라의 노래)과 같은 장르 범주에 속하는 고대 히브리 시(詩)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이나 족장이 임종 직전 자손들의 미래를 시적 언어로 선포하는 '유언 시'(testamentary poem) 형식은 수메르와 아카드 문학에서도 발견됩니다. 이 장르의 특징은 현재 상황을 넘어서는 예언적 성격, 과거 성품에 기반한 미래 선포, 그리고 강렬한 이미지(동물·자연 현상·지명)를 통한 운명의 형상화입니다. 창세기 49:8-12의 유다 축복이 지닌 메시아적 함의는 이 시가 단순한 지파 예언이 아니라 구속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신학적 진술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에서 성경 본문과 고고학적 증거를 상보적으로 읽을 것을 주장하며, 유다 지파의 역사적 부상이 성경 내러티브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 고고학적 흔적을 남겼음을 인정합니다.[bg2]

참고 자료

  1. Aaron Greener, "Archaeology and Religion in Late Bronze Age Canaan," *Religions* 10 (2019): 258. DOI: 10.3390/rel10040258.
  2. Israel Finkelstein, "Archaeology as a High Court in Ancient Israelite History: A Reply to Nadav Na'aman," *Journal of Hebrew Scriptures* 10 (2011). DOI: 10.5508/jhs.2010.v10.a147.

창세기 49장 8-12절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교부·설교사 전통, OA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

49:8 — 유다의 이름과 왕적 첫 번째 선포

본문: יְהוּדָ֗ה אַתָּה֙ יוֹד֣וּךָ אַחֶ֔יךָ — יָדְךָ֖ בְּעֹ֣רֶף אֹיְבֶ֑יךָ — יִשְׁתַּחֲוּ֥וּ לְךָ֖ בְּנֵ֥י אָבִֽיךָ 직역: 유다여, 너는 네 형제들이 찬양하는 자이며, 네 손은 원수들의 목덜미를 잡는다.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릴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יוֹד֣וּךָ (요두카): 히필형 미완료 3인칭 남성 복수, "그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어근 יָדָה(야다, '찬양하다')는 יְהוּדָה(예후다)의 이름 어근과 동일하여, 유다의 이름 자체가 왕적 사명을 품고 있음을 언어유희로 선언합니다. LXX는 αἰνέσαισάν σε(아이네사이산 세)로 번역하여 메시아적 맥락을 강조합니다. - יָדְךָ֖ בְּעֹ֣רֶף אֹיְבֶ֑יךָ (야데카 베오렙 오예베카): "네 손이 원수의 목덜미에." עֹרֶף(오렙, 목덜미)은 패자의 목을 잡아 제압하는 전투 장면입니다(시 18:41). 예언적 완료 구문으로 군사적 정복을 완결된 사실처럼 선포합니다. - יִשְׁתַּחֲוּ֥וּ (이슈타하부): 히슈타팔형(재귀·강의), '몸을 완전히 엎드리다.' 신적 경배와 왕적 굴복에 함께 쓰이는 동사형입니다.

주석적 논의: 8절은 유다 지파의 역사적 운명을 단 세 행으로 요약하는 선포시입니다. 스킨너(Skinner)는 이 단락이 창세기 49장 전체에서 가장 고양된 부분이며, 유다의 영광이 수위 지파 · 사자 지파 · 메시아적 소망 담지자 · 자연 복락의 수혜자라는 네 측면으로 전개된다고 분석합니다(Commentary on Genesis, ICC, p.615). 개혁주의 언약신학 관점에서 이 선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전제합니다 — 르우벤·시므온·레위의 실패(창 49:1-7) 이후 넷째 아들 유다를 왕권의 담지자로 부르신 것은 인간의 서열을 넘어선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입니다. 굿(Good)은 이 구절의 장르를 지파 신탁(tribal oracle)으로 규정하면서, 유다의 패권적 우위가 다윗 왕조 이념과 연속성을 가진다고 분석합니다.[s4i1]

설교적 함의: 하나님은 가장 잘난 자를 선택하시지 않고, 가장 필요한 자리에 예비하신 자를 부르십니다. 찬양을 받을 유다를 부르신 것처럼, 오늘 개척교회 공동체가 크기와 역사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 불려 있음이 이 본문의 선포입니다. 설교 적용: "우리 교회의 사명은 찬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속 역사의 한 고리가 되기 위해 불린 것입니다."

[설교 대지 1과 연결: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 약속의 선포]

---

49:9 — 사자 형상: 정복의 힘과 왕적 위엄

본문: גּ֤וּר אַרְיֵה֙ יְהוּדָ֔ה — כָּרַ֨ע רָבַ֧ץ כְּאַרְיֵ֛ה וּכְלָבִ֖יא — מִ֥י יְקִימֶֽנּוּ 직역: 유다는 사자 새끼. 내 아들이여, 너는 사냥감에서 올라갔도다. 그는 수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엎드려 누웠으니, 누가 그를 일으키겠는가?

원어·문법 핵심: - גּ֤וּר אַרְיֵה֙ (구르 아르예): '사자 새끼' — 이후 아ַרְיֵה(아르예, 수사자)와 לָבִ֖יא(라비, 암사자)로 성장하는 이미지는 유다 왕권의 태동에서 완성까지의 서사입니다. 요한계시록 5:5("유다 지파의 사자", ὁ λέων ὁ ἐκ τῆς φυλῆς Ἰούδα)는 이 이미지를 그리스도의 칭호로 전용합니다. - כָּרַ֨ע רָבַ֧ץ (카라 라바츠): 칼 완료형 예언적 완료(prophetic perfect) — 미래 왕권의 확립을 완결된 사실로 선포합니다. - מִ֥י יְקִימֶֽנּוּ (미 예키메누): "누가 그를 일으키겠는가?" — 유다 왕에 맞설 자가 없다는 수사적 선언입니다.

주석적 논의: 고대 근동에서 사자는 왕권의 범문화적 상징이었습니다(길가메시 서사시·이집트 스핑크스·가나안 왕실 인장). 그러나 야곱의 선포는 이 도상을 이스라엘 하나님의 언약 약속으로 재전유합니다. 사자 새끼 → 수사자 → 암사자의 성장 이미지는 세대를 넘어 완성되는 왕권을 암시하며, 개혁주의 시각에서 다윗(웅크린 사자)부터 그리스도(불패의 왕)까지 이어지는 언약 왕권의 단일한 흐름을 드러냅니다.

설교적 함의: 성경이 그리스도를 "유다 지파의 사자"로 선포하는 것은 왕권의 위엄과 구속의 능력을 동시에 담습니다. 개척교회의 회중에게 이것은 위로입니다 — 우리의 왕은 작은 것에 움츠러드는 분이 아니라, 누가 감히 일으키지 못할 만큼 강하게 진을 치신 분입니다. 설교 적용: "사자처럼 누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사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음을 입증하셨습니다."

[설교 대지 1과 연결: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 왕권의 위엄]

---

49:10 — 실로 예언: 왕권의 지속과 절정

본문: לֹֽא יָס֥וּר שֵׁ֨בֶט֙ מִֽיהוּדָ֔ה וּמְחֹקֵ֖ק מִבֵּ֣ין רַגְלָ֑יו עַ֚ד כִּֽי יָבֹ֣א שִׁילֹ֔ה וְל֖וֹ יִקְּהַ֥ת עַמִּֽים 직역: 홀이 유다에서 떠나지 아니하며, 지팡이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니, 실로가 오실 때까지이며, 만민의 순종이 그에게 속하리로다.

원어·문법 핵심: - שֵׁ֨בֶט֙ (쉐베트): '홀, 왕권 상징.' 민수기 24:17("이스라엘에서 홀이 일어나서")과 직접 연결됩니다. - מְחֹקֵ֖ק (메호케크): 폴팔 능동분사, '입법자' — 왕권의 법적·통치적 측면을 담습니다. - עַ֚ד כִּֽי יָבֹ֣א שִׁילֹ֔ה (아드 키 야보 실로): '실로가 오실 때까지.' 슈타이너는 עַד(아드)의 통사적 중의성 — '~까지'(종결점) vs '~절정까지' — 이 나단·아히야·에스겔·스가랴의 예언에 내적 성경 해석(inner-biblical interpretation)으로 각각 다르게 수용되었음을 논증합니다.[s4i2] 케티브(שילה, 지명)와 케레(שִׁיל֔וֹ, "그의 것")의 차이는 지명 독법과 소유격 독법을 가릅니다. 프롤로프는 지명(실로 성읍) 독법을 지지합니다.[s4i3] - יִקְּהַ֥ת עַמִּֽים (이케하트 암밈): '만민의 순종' — יִקְּהַת는 잠언 30:17 외에 여기에만 등장하는 희귀어입니다. LXX는 "만민의 기대"(προσδοκία ἐθνῶν, 프로스도키아 에트논)로 번역하여 메시아적 함의를 강화합니다.

주석적 논의: 10절은 창세기 49:8-12의 신학적 중심이자 히브리 성경 전체의 가장 논란 많은 구절 중 하나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부정형 선포는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약해 보이는 유다 왕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철회되지 않는다는 영원한 보증입니다.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이 절을 은혜 언약의 불변성 선포로 읽습니다 — 인간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이 왕권의 보장입니다. '실로'를 지명으로 읽든 메시아적 칭호로 읽든, 이 절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도래를 가리킨다는 것은 LXX("만민의 기대"), 타르굼 옹켈로스("메시아가 오시기까지"), 에스겔 21:27의 내적 해석이 모두 합류하는 지점입니다.

설교적 함의: "홀이 떠나지 않는다"는 약속은 역사의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왕국 계획이 지속된다는 보증입니다. 개척교회가 작고 연약해 보일 때도, 왕권의 홀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설교 적용: "실로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지금, 만민의 순종이 그에게 속하는 왕국 건설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설교 대지 2와 연결: 왕권의 지속과 메시아 도래 — 약속의 절정]

---

49:11 — 왕국의 풍요: 포도나무와 포도주 이미지

참고 자료

  1. Edwin M. Good, "The 'Blessing' on Judah, Gen 49:8-12," *JBL* 82 (1963): 427–432. DOI: 10.2307/3264698.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2. Tina Steiner, "Four Inner-Biblical Interpretations of Genesis 49:10," *JBL* 132 (2013): 33–59. DOI: 10.2307/23488236.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3. S. Frolov, "Judah Comes to Shiloh: Genesis 49:10bα, One More Time," *JBL* 131 (2012): 51–61. DOI: 10.2307/23488246.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4. Danie Wielenga, "Judah and Tamar: A missiological study from a redemptive-historical perspective," *In die Skriflig* 58 (2024): e1. DOI: 10.4102/ids.v58i1.3130.

교회 역사에서 창세기 49장 8-12절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

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기)

칼빈은 창세기 49:8-12를 야곱의 임종 예언 중에서도 가장 신학적으로 비중 있는 단락으로 다룹니다. 그는 유다에 대한 선포가 단순한 지파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구체적 계보를 통해 전개되는 구속사 계시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칼빈은 '실로' 해석에서 메시아적 독법을 지지하면서, 야곱이 성령의 감동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유다 지파의 왕권 후계자로 선포했다고 봅니다. 칼빈에게 이 본문은 은혜 언약의 불변성 —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권 계획이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는 사실 — 을 창세기 단계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는 "유다를 찬양하라"는 선포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교회의 예배를 예고한다고 주장합니다.[rh1]

---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세기 후반-18세기 초 (청교도기)

매튜 헨리는 이 구절에서 유다가 사자에 비유된 방식에 주목합니다. 그는 유다가 "위협하고 날뛰는 사자가 아니라, 자신의 힘과 성공을 누리면서도 다른 이들을 괴롭히지 않는 사자"로 묘사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대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실로를 명시적으로 메시아("평화롭고 번영을 주는 분, 혹은 구원자")로 해석하면서, "죽어가는 야곱이 그리스도의 날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그것이 임종 자리에서 그의 위안이요 힘이었다"고 술회합니다.

> "쉴로, 즉 약속된 씨, 그 안에서 세상이 복을 받을 그 평화롭고 번성케 하는 분, 혹은 구원자가 유다에게서 나오리라. 이로써 죽어가는 야곱은 먼 거리에서 그리스도의 날을 바라보았고, 그것이 임종 자리의 위로와 지지가 되었다." — "Shiloh, that promised Seed in whom the earth should be blessed, 'that peaceable and prosperous One,' or 'Saviour,' he shall come of Judah. Thus dying Jacob at a great distance saw Christ's day, and it was his comfort and support on his death-bed."[rh2]

---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감리교 부흥기)

웨슬리는 창세기 49장 전체를 야곱이 성령의 감동 없이는 말할 수 없었던 예언적 선포로 이해합니다. 그는 "야곱은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이 말들을 할 수 없었고, 성령이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실 때만 할 수 있었다 — 이것이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완전하게 되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웨슬리는 구속사를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조망하면서, 창세기 49:8-12는 그 흐름의 중심 축인 유다 왕권과 그리스도의 오심을 연결하는 결정적 고리라고 이해합니다.[rh3]

---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스펄전은 1874년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에서 창세기 49:10을 본문으로 "실로"(Shiloh)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습니다. 그는 유다 지파의 역사적 왕권을 '유형'(type)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원형'(antitype)으로 읽습니다. 스펄전은 야곱이 유다에게 한 말의 모든 세부 사항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더 위대한 유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다고 설교합니다. 유다가 형제들에게 찬양받는 것은 예수께서 그의 형제들(신자들)에게 찬양받는 장면의 예고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달콤한 것이 그를 찬양하는 것이요, 하늘에서도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설교합니다.[rh4]

---

수용사 흐름

창세기 49:8-12에 대한 교회의 해석 역사는 일관된 방향을 가집니다 — 이 본문을 메시아 예언으로 읽는 것입니다. 칼빈(16세기)은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틀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불변하는 은혜 언약을 이 본문의 중심으로 제시했습니다. 청교도 헨리(17세기)는 실로를 명시적으로 메시아로 해석하면서 야곱의 임종 시선이 그리스도에게 닿아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웨슬리(18세기)는 예언의 성령론적 기원을 부각시켜 이 본문이 단순한 인간의 예언이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 계시임을 설파했습니다. 스펄전(19세기)은 유형론을 극대화하여 유다의 모든 왕적 특성이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됨을 회중에게 열정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이 일관된 흐름은 창세기 49:8-12가 교회의 설교 전통에서 단순한 고대 족장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 설교의 핵심 자원으로 기능해 왔음을 드러냅니다.

참고 자료

  1. John Calvin, *Commentary on Genesis*, vol. 2. Reformation era commentary.
  2.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Concise)*, Genesis 49.
  3.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Genesis 49.
  4. Charles Spurgeon, "Shiloh," *Spurgeon's Sermons* vol. 20, No. 1157 (Metropolitan Tabernacle, Newington, 1874).
카카오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

댓글 남기기

작성한 댓글은 검토 후 공개됩니다. 이름과 댓글 내용만 저장되며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