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1~24절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창세기 22장 1~24절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창세기 22장 1~24절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족장 시대와 아브라함의 역사적 위치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은 성경 내러티브에서 이스라엘 믿음의 조상으로 소개되지만, 역사적으로 그의 시대는 중기 청동기 시대(Middle Bronze Age II, 기원전 2000-1550년경)와 대략 겹칩니다. 이 시기 가나안 지역은 도시국가들로 분할되어 있었으며, 이집트의 영향권 아래에서 상당한 물질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셈어를 구사하는 유목 반유목 집단들—아모리인, 가나안인 등—이 팔레스타인 고원 지대와 네게브 지역을 오가며 생활했는데, 아브라함의 이동 패턴(우르→하란→가나안→이집트→네게브)은 이 시기 셈어 집단의 전형적 이주 루트와 부합합니다. 창세기 22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브엘세바(19절)는 이 유목 패턴의 거점 도시로, 족장 시대 네게브 지역의 주요 정착·교역 거점이었습니다.

고대근동의 자식 제물 관행과 창세기 22장의 신학적 역전

창세기 22장을 이해하는 핵심 배경 중 하나는 고대근동에서 실제로 인신공희(人身供犧) 관행이 있었느냐는 질문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자료들(바빌로니아 문헌 IM.58563 등)은 신을 '검증 도구'와 유사한 존재로 묘사하는 언어적 패턴을 보여줍니다.[bg2]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후기 청동기 가나안 도시들에서 신들에게 바치는 번제 의식이 제의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의 신 몰렉(Molech)에게 자식을 바치는 관행에 대해 성경 자체가 명시적으로 금지합니다(레 18:21; 신 12:31). 창세기 22장의 신학적 역전(theological reversal)은 바로 이 맥락에서 두드러집니다. 주변 민족들의 신들은 자식을 요구하고 그것으로 끝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확인한 직후 스스로 대체 제물을 준비하십니다. 이 역전 구조는 창세기 22장이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가나안 제의 문화에 대한 예언적 비판이자, 이스라엘 제의 정체성의 선언임을 보여줍니다.

번제(עֹלָה, 올라)의 제의적 의미

번제(עֹלָה, 올라)는 히브리어로 '위로 올리다'(עָלָה)에서 파생된 단어로, 제물을 완전히 불에 태워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는 헌신의 제사입니다. 이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제물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레위기 1장에 규정된 번제 제도에 따르면 번제물은 소, 양, 비둘기였는데, 창세기 22장은 번제 제도가 시내산 율법 이전에 이미 족장 시대에 실천되었음을 보여줍니다(창 8:20; 22:2 등).

모리아 산의 지리와 신학적 의미

2절에 등장하는 '모리아 땅'(אֶרֶץ הַמֹּרִיָּה, 에레츠 하모리야)은 지리적으로 논쟁이 있는 지명입니다. 역대하 3:1은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모리아 산을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구입한 장소와 동일시합니다. 유대교 전통은 이 동일시를 받아들여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한 곳과 솔로몬 성전 터를 같은 장소로 봅니다. 성경 내러티브 자체는 모리아 땅이 브엘세바에서 '사흘 길'(3-4절)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80킬로미터로, 걸어서 사흘은 합리적인 거리입니다.

'모리아'라는 지명의 어원은 불확실합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됩니다: (1) '여호와께서 보신다'(יְהוָה + רָאָה, 야훼 + 라아)의 합성어로, 14절의 '여호와 이레'와 연결하는 해석, (2) '가르침의 땅'(מוֹרֶה에서, 교사·선생의 의미)으로 해석하는 방향. 어떤 해석이든 이 산은 단순한 지리적 표지가 아니라 신학적 의미를 담은 장소임은 분명합니다.

사흘의 여정과 침묵의 서사

아브라함이 이삭을 이끌고 모리아 산까지 사흘을 여행했다는 사실(3-4절)은 서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사흘 동안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을 되새기고 순종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할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고대 히브리 내러티브의 규칙상 저자가 이 사흘의 여정에 대해 전혀 내면 묘사를 하지 않는 것—아브라함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혀 서술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서사 전략입니다. 독자는 이 침묵 속에서 스스로 아브라함의 내면을 상상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는 그의 유명한 비교문학 분석에서 이 호메로스와 성경 내러티브의 차이—'완전히 서술된 호메로스'와 '배경에 있는 성경'—를 지적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

텔 브엘세바(Tel Be'er Sheva) 유적은 창세기 22장의 결말 배경(19절)인 브엘세바와 동일시되는 곳입니다. 텔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남부 브엘세바 시 외곽에 위치한 고고학 유적으로, 수십 년의 발굴을 통해 기원전 12-7세기의 철기 시대 지층이 잘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유적에서는 4뿔 제단(four-horned altar)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및 가나안 제의 전통에서 제단의 역할과 형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bg1]

참고 자료

  1. Wikipedia contributors, "Tel Be'er Sheva,"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2001-). Talbert, Richard J., *Barrington Atlas of the Greek and Roman World*, BAtlas 70 F3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0).
  2. 이라크 박물관 소장 고바빌로니아 시기 점토판 IM.58563, ref. 7'. 원문 아카드어 자료.

창세기 22장 1~24절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과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각 절(묶음)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창세기 22장(24절)은 의미 단위 10그룹으로 묶어 주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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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 — 시험 명령: "네 사랑하는 이삭을 바치라"

본문: וַיְנַסֵּ֤ה אֱלֹהִים֙ אֶת־אַבְרָהָ֔ם... קַח־נָ֨א אֶת־בִּנְךָ֩ אֶת־יְחִידְךָ֩ אֲשֶׁ֨ר אָהַ֜בְתָּ 직역: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 "네가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원어·문법 핵심: - נִסָּה(니사, 피엘 완료, '시험하다'): 피엘 어간은 강조적 검증을 함의합니다. 신명기 8:2, 16의 광야 시험('לְנַסֹּתְךָ')과 히브리서 11:17('πειραζόμενος', 페이라조메노스)에서 믿음의 공적 드러냄을 가리킵니다. 고바빌로니아 점토판 IM.58563 7'행은 신을 "외방 민족에게 시험 도구처럼 놓을 수 있는 자"로 묘사하며(이라크 박물관 소장), '시험' 어휘의 고대근동 맥락을 보여줍니다. - יְחִידְךָ(예히드카, '유일한 아들'): LXX는 ἀγαπητόν(아가페톤, '사랑받은 자')으로 번역하며, 마가복음 1:11 세례 음성("사랑하는 아들")과 공명합니다.

주석적 논의: 1절에서 독자는 '시험'임을 미리 알지만 아브라함은 모릅니다. 이 서사적 아이러니가 긴장을 조성합니다. 2절 명령의 점층 구조(네 아들 → 유일한 아들 → 사랑하는 → 이삭)는 요구의 무게를 단계적으로 키웁니다. '모리아 땅'은 역대하 3:1이 솔로몬 성전 터와 동일시하는 장소로, 이 명령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 제의와 정경적으로 맞닿습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의 시험은 믿음을 파괴가 아니라 드러내고 확증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돌려드리라는 요청은 그것이 이미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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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5 — 즉각적 순종과 사흘 여정: "우리가 함께 돌아오리라"

본문: וַיַּשְׁכֵּ֨ם אַבְרָהָ֜ם בַּבֹּ֗קֶר... וַיֹּ֙אמֶר֙ אַבְרָהָ֔ם... נָשׁ֥וּבָה אֲלֵיכֶ֖ם 직역: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 …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원어·문법 핵심: - וַיַּשְׁכֵּם(바야쉬켐, '아침 일찍 일어나다'): 즉각성을 강조하는 서사적 신호입니다. 지체 없는 순종입니다. - נָשׁ֥וּבָה(나슈바, 1인칭 복수 코호타티브, '우리가 돌아오겠다'): '나'가 아닌 '우리'—이삭도 돌아온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히브리서 11:17-19("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이삭을 살리실 것이라")의 문법적 근거입니다.

주석적 논의: 사흘 여정 동안 텍스트는 아브라함의 내면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히브리 내러티브는 이 침묵 속에서 서사적 절제(restraint)를 고전적으로 구현합니다. "우리가 돌아오겠다"는 믿음 선언인지 단순 대화인지가 해석 쟁점이지만, 문법적 복수 주어는 히브리서 11장의 독법을 지지합니다.

설교적 함의: 이유도 설명도 없이 걷는 사흘—그 침묵이 믿음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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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8 — 번제 나무와 이삭의 질문: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본문: וַיִּקַּח֩ אַבְרָהָ֨ם אֶת־עֲצֵ֣י הָעֹלָ֗ה... אַיֵּ֥ה הַשֶּׂ֛ה לְעֹלָ֖ה... אֱלֹהִ֞ים יִרְאֶה־לּ֥וֹ הַשֶּׂ֛ה 직역: 아브라함이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지웠다 … "어린양이 어디 있습니까?" … "하나님이 친히 보실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יִרְאֶה(이르에, 칼 미완료, '보다/준비하다'): '보다'(רָאָה, 라아)와 '준비하다'가 겹치는 히브리어 관용 표현입니다. 8절의 이 단어가 14절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의 어근입니다.

주석적 논의: 7-8절 대화("내 아버지여" / "내 아들아")는 친밀함과 비극적 아이러니를 동시에 담습니다. 번제 나무를 이삭이 진다는 서술(6절)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그리스도의 예표로 읽혀 왔습니다(요 19:17). 8절 "하나님이 보실 것이다"는 목적어 없는 열린 문장—예언적 선언이 됩니다(요 1:29).

설교적 함의: "아버지여, 어린양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세대 신자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신다—이것이 복음의 핵심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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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10 — 결박과 순종의 절정: 칼을 드는 순간

본문: וַיַּעֲקֹ֗ד אֶת־יִצְחָ֣ק בְּנֹ֔ו... וַיִּשְׁלַ֤ח אַבְרָהָם֙ אֶת־יָד֔וֹ וַיִּקַּ֖ח אֶת־הַֽמַּאֲכֶ֑לֶת 직역: 그가 아들 이삭을 결박했다 …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았다.

원어·문법 핵심: - עָקַד(아카드, '결박하다'): 구약 전체에서 이 한 절에만 등장하는 하팍스 레고메논(hapax legomenon)입니다. LXX는 συμποδίζω(심포디조, '발을 묶다')로 번역하며, 이 단어에서 유대 전통의 '아케다'(עֲקֵדָה, 아케다) 개념 전체가 나옵니다. 스키너(Skinner)는 이 절 맥락에서 '여호와 이레' 표현의 텍스트 변형 가능성을 언급합니다(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 ICC, p.331). - הַמַּאֲכֶלֶת(하마아켈레트, '도살 칼'): 어근 '아칼'(אָכַל, 먹다)에서 파생, 고대 도살 의식에 사용된 대형 칼입니다.

주석적 논의: 연속 행위 동사(제단→나무→이삭 묶음→칼 잡음)가 독자를 그 순간으로 끌어당깁니다. 랍비 전통은 이삭이 자발적으로 묶였다고 해석하며(아케다 전통), 이는 요한복음 10:17-18("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와 신학적으로 공명합니다. 이삭의 나이는 명시되지 않으나 나무를 직접 질 수 있다는 사실(6절)은 상당한 연령임을 시사합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은 순종의 결과가 아니라 순종 자체를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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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2 — 천사의 급박한 제지: "이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안다"

본문: וַיִּקְרָ֨א אֵלָ֜יו מַלְאַ֤ךְ יְהוָה֙ מִן־הַשָּׁמַ֔יִם אַבְרָהָ֖ם אַבְרָהָ֑ם... כִּ֣י עַתָּ֣ה יָדַ֗עְתִּי 직역: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불렀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 "이제 내가 안다."

원어·문법 핵심: - אַבְרָהָם אַבְרָהָם(이름 이중 호명): 히브리 내러티브에서 급박함과 중요성을 신호합니다. 출애굽기 3:4(모세)·사무엘상 3:10(사무엘)·누가복음 10:41(마르다)에서 동일 패턴이 나타납니다. - עַתָּ֣ה יָדַ֗עְתִּי(아타 야다티, '이제 안다'): '야다'(יָדַע)는 관계적·경험적 앎입니다. 이 구절은 신적 예지와 인간 자유의지의 교차점에서 핵심 신학적 수수께끼를 드러냅니다.

주석적 논의: "이제 안다"는 전지하신 하나님의 지식 변화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이 역사 무대에 공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네 독자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이 확인 발화는 아브라함의 행위가 언약 관계를 재확증하는 사건이었음을 선언합니다.

설교적 함의: 시험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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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3 — 대체 숫양: 유형론적 절정

본문: וַיַּרְא֙ וְהִנֵּה־אַ֔יִל אַחַ֕ר נֶאֱחַ֥ז בַּסְּבַ֖ךְ בְּקַרְנָ֑יו 직역: 보니 뿔이 덤불에 잡혀 있는 숫양 하나가 있었다.

원어·문법 핵심: - נֶאֱחַז(네에하즈, 니팔 완료, '잡혀 있다'): 수동태—숫양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채로 발견됩니다. 하나님이 먼저 준비하셨다는 함의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창세기 22장 1~24절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초기 교회 교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창세기 22장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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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 초기 교회(1-5세기) 교부들은 아케다(아브라함의 이삭 결박) 사건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원의 예표로 읽는 신학적 전통을 형성했습니다.

유스티누스 순교자(Justin Martyr) / 2세기 (변증가 시대)

유스티누스는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에서 아브라함의 이삭 헌신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논증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영 안에서 주님이 오시는 날을 보았다'고 해석하면서, 아케다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사도들의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해명하는 신학적 틀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유스티누스는 이삭이 번제 나무를 진 것(6절)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한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명시합니다. 이 유형론은 초기 기독교 변증에서 유대인 반론에 답하는 핵심 논거가 되었습니다.[pat1]

오리게네스(Origen of Alexandria) / 3세기 (알렉산드리아 학파)

오리게네스는 이 본문에 알레고리적-영적 해석을 적용합니다. 그는 창세기 22장의 양이 뿔로 덤불에 걸린 것(13절)을 그리스도께서 가시관을 쓰신 것과 연결합니다. 또한 사흘 여정(3-4절)을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예표하는 '사흘'과 연결하며, 영적 해석을 통해 이 본문이 모든 신자의 영적 성장—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내면의 헌신—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오리게네스의 이 알레고리 전통은 이후 서방 교부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pat2]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4세기 (니케아 시대)

크리소스톰은 『창세기 강해(Homilies on Genesis)』에서 아브라함의 즉각적 순종을 가장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지체 없이 출발한 것(3절)이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믿음이 감정을 이겼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또한 이삭에게 어린양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다"고 대답한 것(8절)이 억압된 감정 속에서도 일관된 신앙 고백이었다고 서술합니다. 크리소스톰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인간 감정과 이성을 초월하는 순간을 묘사합니다.[pat3]

해석의 흐름 — 초기 교회 전통의 형성

2-5세기 교부들은 창세기 22장을 세 층위로 읽었습니다. 첫째, 역사적 층위: 아브라함과 이삭의 실제 사건으로 읽으며 언약 신학의 기초를 확인합니다. 둘째, 유형론적 층위: 이삭(희생양)→그리스도, 번제 나무→십자가, 숫양→대속 제물의 예표론 구조를 형성합니다. 셋째, 영적·도덕적 층위: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 헌신의 훈련으로 읽어 개별 신자의 영적 성장에 적용합니다. 유스티누스의 유형론, 오리게네스의 알레고리, 크리소스톰의 도덕적·심리적 분석이 함께 이후 1,500년 기독교 해석 전통의 모판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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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설교사·수용사

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칼빈은 『창세기 주석(Commentary on Genesis)』에서 1절의 '시험하다'(נִסָּה)를 분석합니다. 그는 히브리어와 라틴어가 '시험'과 '검증'을 같은 단어로 쓴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시험은 사탄의 유혹과 다르다고 구분합니다—하나님은 죄로 이끌지 않고, 이미 심어진 믿음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행위 자체의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믿음의 결과라고 강조하며, 이것이 야고보서 2:21-22와 창세기 15:6을 연결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 논거라고 봅니다.[rh1]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세기 (청교도)

청교도 주석가 헨리는 이 본문을 '가장 뜨거운 불에 단련된 금'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논쟁하지 않고 즉각 순종한 것이 약한 마음이 아니라 '야훼를 아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그는 하나님과 다투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그를 가르쳐 논쟁 대신 순종하게 했다." 헨리는 특히 11절 천사의 제지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이삭의 실제 죽음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완전한 헌신을 원하셨다고 서술합니다. 이 해석은 18-19세기 영국 청교도 설교 전통에 폭넓은 영향을 주었습니다.[rh2]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 18세기 (대각성운동)

휫필드는 설교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Abraham's Offering Up His Son Isaac)"에서 12절("이제 내가 안다")을 신자의 회심과 헌신의 증거로 설교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독자도 아끼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죄와 세상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구원의 증거라고 설파했습니다. 대각성운동의 맥락에서 이 설교는 감정적 헌신과 신학적 깊이를 함께 추구하는 부흥 설교의 모범이 되었습니다.[rh3]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스펄전은 1884년 설교 "여호와 이레(Jehovah-Jireh)"(No. 1803, Metropolitan Tabernacle)에서 14절을 집중 분석합니다. 그는 '여호와 이레'를 단순한 과거 지명이 아니라 모든 시대 신자에게 적용되는 신학 명제로 설교합니다: "하나님이 보신다—그리고 보신 것은 반드시 준비하신다." 스펄전은 이 선언이 십자가에서 성취되었고, 이제 모든 기도와 필요에서 신자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전합니다. 또한 1891년 설교 "아브라함의 시험(Abraham's Trial)에서는 새벽 일찍 일어나 순종한 아브라함의 즉각성을 강조하며, 지체 없는 순종이 믿음의 첫 번째 증거라고 설교했습니다.[r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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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창세기 22장의 교회사 수용은 일관된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시대마다 강조점이 달라졌습니다. 교부 시대는 유형론—그리스도를 향한 예표 구조—을 확립했고, 종교개혁은 은혜 언약과 칭의론의 맥락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재해석했으며, 청교도와 대각성운동은 개인의 헌신과 회심을 촉구하는 설교 언어로 발전시켰습니다. 19세기 스펄전에 이르러 '여호와 이레'는 교리적 명제를 넘어 회중의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설교 핵심이 되었습니다. 이 연속성이 창세기 22장을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로 만든 해석의 두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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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유스티누스 순교자(Justin Martyr), *Dialogue with Trypho*, ch. 119 (ANF Vol. 1). PD.
  2. 오리게네스(Origen of Alexandria), *Homilies on Genesis*, Homily VIII (ANF Vol. 4). PD.
  3.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Homilies on Genesis*, NPNF¹ Vol. 13, Homily XLVII. PD.
  4. 존 칼빈(John Calvin), *Commentary on Genesis*, vol. 1, ad loc. Gen. 22:1 (ed.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7). PD.
  5. 매튜 헨리(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1, ad loc. Gen. 22:3-10 (1706). PD.
  6.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Abraham's Offering Up His Son Isaac," in *Selected Sermons of George Whitefield*, ad loc. Gen. 22:12. PD.
  7.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Jehovah-Jireh,"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30 (1884), Sermon No. 1803; "Abraham's Trial,"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37 (1891), Sermon No. 2223.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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