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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1-14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이사야 7:1-14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이사야 7:1-14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사야는 주전 8세기 후반,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로 이어지는 유다 왕정 아래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의 사역 전체를 관통하는 신학적 배경에는 시온 신학과 다윗 언약, 그리고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 전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7장은 이 큰 배경 가운데서도 아하스 통치 초기, 유다 왕국이 실제 전쟁 위협 앞에 놓였던 매우 구체적인 정치적 순간을 다룹니다.

아람-에브라임 동맹과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7:1-2이 전제하는 사건은 흔히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으로 불리는 주전 734년 무렵의 위기입니다. 앗시리아 제국이 서진하며 레반트 지역 소국들을 압박하자, 다메섹의 르신 왕과 사마리아의 베가 왕은 반(反)앗시리아 동맹을 결성하고 주변 소국들에게 동참을 요구했습니다. 유다의 아하스가 이 동맹 가담을 거부하자, 아람과 에브라임 연합군은 직접 예루살렘을 침공해 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인물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7:6). 본문이 "다윗의 집에 전해지다"(7:2)라는 표현으로 사건을 서술하는 것은, 이 위협이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다윗 왕조의 존속 자체를 겨눈 정치적 쿠데타 시도였음을 보여줍니다. 아하스와 백성의 마음이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요동했다는 묘사(7:2)는 과장이 아니라, 수도가 포위당할 위기에 실제로 놓인 왕정의 공포를 정확히 반영합니다.

다윗 언약과 위기 속의 '다윗의 집'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나아가 전하는 말씀이 유독 무게를 갖는 이유는, 이 위기가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약속—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람-에브라임 동맹이 다윗 혈통이 아닌 인물을 왕좌에 앉히려 한 시도는, 단지 아하스 개인의 정치적 생존이 아니라 다윗 언약 자체의 존폐를 시험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구약 예언 전통에서 다윗 언약에 근거한 메시아 소망이 위기의 순간마다 재확인되는 흐름이 있다는 점은 최근 연구에서도 지적됩니다.[bg1] 7:7의 "이루어지지 아니하며 되지 아니하리라"는 선언은 바로 이 언약적 배경 위에서, 침략자들의 계획이 실현 불가능한 이유를 다윗 언약의 견고함에서 찾는 신학적 논증입니다. 즉 아하스가 신뢰해야 했던 대상은 군사적 동맹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다윗 언약의 약속이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의 그림자 아래 아하스의 선택

이 위기의 배후에는 앗시리아라는 더 큰 제국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 치하의 앗시리아는 이 시기 서쪽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었고, 아람과 에브라임의 반앗시리아 동맹은 그 팽창에 맞선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아하스에게 실제로 열려 있던 선택지는 두 갈래였습니다 — 아람-에브라임 동맹에 가담해 앗시리아에 맞서거나, 앗시리아에 직접 조공을 바쳐 아람-에브라임의 위협에서 벗어나거나였습니다(열왕기하 16:7-9은 아하스가 실제로 후자를 택했음을 전합니다).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요구한 것은 이 두 정치적 선택지 어느 쪽도 아닌 제3의 길, 곧 군사·외교적 계산을 넘어선 여호와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표징을 구하라는 명령(7:11)은 바로 이 신뢰를 확증할 기회로 주어진 것이었으나, 아하스는 이미 앗시리아 쪽으로 마음을 굳힌 채 경건을 가장해 그 기회를 거절합니다.

예루살렘의 물 공급과 회담 장소

이사야가 하나님의 명으로 아하스를 만나러 나간 장소는 "윗못 수로 끝 세탁자의 밭 큰길"(7:3)입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의 유일한 상시 수원인 기혼 샘에서 끌어온 물을 성 안으로 공급하던 수로 체계의 일부로, 포위전에 대비한 예루살렘 물 공급의 실질적 요충지였습니다. 이사야가 하필 이 장소에서 아하스를 만난 것은 우연한 지리적 선택이 아니라, 왕이 바로 그 순간에도 포위전에 대비한 방어 태세 점검에 몰두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 왕은 군사 기술자의 눈으로 성벽과 수로를 살피고 있었고, 예언자는 그 자리에서 정반대되는 신뢰의 논리를 제시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지명은 후일 36:2에서 앗시리아 산헤립의 사절 랍사게가 히스기야의 신하들과 회담하는 장소로 다시 등장합니다. 같은 지점이 두 세대에 걸쳐 유다 왕정이 외세의 위협 앞에서 신뢰의 시험대에 오르는 무대로 반복 사용된다는 점은, 이사야서 전체가 이 지리적 배경을 의도적으로 문학적 장치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다의 종교 개혁과 아하스의 종교 정책

열왕기하 16:10-18에 따르면 아하스는 이 위기 이후 다메섹을 방문해 그곳 제단 양식을 본떠 예루살렘 성전 제단을 개조했고, 앗시리아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 기물의 배치까지 바꾸었습니다. 이는 7장에서 이미 예견된 신학적 문제—군사·외교적 필요 앞에서 여호와 신앙의 자리를 타협하는 태도—가 실제로 아하스의 통치 후반부에 구체적인 종교 정책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줍니다. 표징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제안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경건한 언어로 거절한 왕(7:12)이, 실상은 정치적 실리를 위해 이방 제의 양식마저 서슴없이 들여온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본문의 아이러니를 한층 선명하게 합니다.

고고학적 증거

이 시기 사마리아(에브라임의 수도)의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물증으로 '사마리아 도편(Samaria Ostraca)'이 있습니다. 오므리 왕조 시기 사마리아 궁전 터에서 출토된 히브리어 잉크 명문 도편 약 102점으로, 주전 8세기의 것으로 추정됩니다.[arch1] 포도주·기름 납품 행정 영수증 성격의 이 도편들에는 지명·연도·인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인명 가운데 여호와 계열(-yaw) 이름과 바알 계열 신명이 나란히 공존하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는 에브라임 왕국 안에 여호와 신앙과 바알 숭배가 뒤섞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물 증거로, 왜 이사야가 에브라임을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심판받을 대상으로 규정하는지(7:8-9)를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본문에 언급된 다메섹과 사마리아 두 도시는 각각 아람과 에브라임의 수도로서 오늘날까지 그 위치가 지리적으로 특정되어 있으며, 이는 이 전쟁 서사가 신화적 배경이 아니라 실재했던 두 왕국의 수도를 무대로 한 구체적 정치 사건이었음을 뒷받침합니다.

참고 자료

  1. Guilherme Brasil de Souza, "Messianic Hope and Davidic Covenant in the Classical Prophets," *Práxis Teológica* 19 (2023): n.p. DOI: 10.25194/2317-0573.2023v19n1.e1923.
  2. Samaria Ostraca, in *Pleiades* gazetteer entry "Samaria (region)" (8th century BCE archaeological find).

이사야 7:1-14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원어 문법 분석,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7:1 — 침공의 시간과 실패로 끝난 포위

본문: וַיְהִי בִּימֵי אָחָז... עָלָה רְצִין... וְלֹא יָכֹל לְהִלָּחֵם עָלֶיהָ 직역: 아하스의 시대에 르신이 올라왔으나… 능히 싸우지 못하였다

원어·문법 핵심: עָלָה(올라오다)는 칼 완료형으로 침공을 기정사실로 서술하며, 뒤의 קוּם(7:7)·אָמַן(7:9)과 함께 '서다·무너지다' 어휘 축의 첫 항입니다.

주석적 논의: 침공과 포위 실패가 완료형으로 나란히 제시되어, 독자는 사건 전개보다 먼저 결말을 통보받습니다. 이어질 공포·계략·신탁은 이미 실패로 확정된 사건에 대한 반응입니다.

설교적 함의: 전투 전에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구조는, 명령 계통이 현장의 기세보다 앞선다는 것을 아는 군·경 회중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이미 내려진 하나님의 결정을 붙들라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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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 숲의 나무처럼 흔들리는 마음

본문: נָחָה אֲרָם עַל אֶפְרָיִם... וַיָּנַע לְבָבוֹ... כְּנוֹעַ עֲצֵי יַעַר מִפְּנֵי רוּחַ 직역: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매…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의 마음이 흔들렸다

원어·문법 핵심: נוּעַ(흔들리다)는 안정성의 반대 개념으로 뒤의 קוּם·אָמַן과 대조되는 어휘 계열을 형성하며, 뿌리 없이 요동하는 이미지가 왕의 내면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주석적 논의: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외력에 노출된 모든 나무의 공통 운명입니다. 왕과 백성의 마음이 나란히 흔들렸다는 서술은 지도자의 불안이 공동체로 전이되는 현실을 포착합니다.

설교적 함의: 지휘관의 동요는 부대 전체로 번집니다. 흔들리지 않는 지도력은 흔들리지 않는 대상께 뿌리내리는 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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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수로 곁에서 주어지는 신탁과 아들의 이름

본문: צֵא נָא לִקְרַאת אָחָז... אֶל קְצֵה תְּעָלַת הַבְּרֵכָה הָעֶלְיוֹנָה... וּשְׁאָר יָשׁוּב בְּנֶךָ 직역: 아하스를 만나러 나가라… 윗 못 수로 끝으로… 네 아들 스아르 야숩과 함께

원어·문법 핵심: תְּעָלָה(수로)는 히브리 성경 전체 9회(왕상 18:32 등)이며 같은 지명이 36:2 랍사게 회담 장소로 재등장합니다. שְׁאָר יָשׁוּב는 히브리 성경 전체 유일례입니다.

주석적 논의: 이사야가 하필 포위전 대비 점검 현장에서 아하스를 만난 것은 실용적 계산의 자리에 신뢰의 논리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아들의 이름은 순전한 구원 약속으로 읽는 통념과 달리 '오직 남은 자만 돌아온다'는 심판 경고로 읽어야 한다는 비판적 독법도 있습니다(Blank, JBL, 1948).[s4-1]

해석적 쟁점: '스아르 야숩'의 함의 — 순전한 구원 약속인가, 심판이 앞서는 조건부 남은 자 사상인가.

설교적 함의: 정한 자리로 나아가는 예언자의 모습은 배치에 익숙한 군·경 회중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오늘 성도가 선 자리도 보내신 분이 정하신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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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 삼가고 조용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본문: הִשָּׁמֵר וְהַשְׁקֵט אַל תִּירָא... מִשְּׁנֵי זַנְבוֹת הָאוּדִים הָעֲשֵׁנִים הָאֵלֶּה 직역: 삼가며 조용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로 말미암아

원어·문법 핵심: 세 개의 명령형이 연속되고, אוּד(부지깽이, 전체 3회)·עָשֵׁן(연기 나는, 전체 2회 — 그중 하나는 출 20:18 시내산 신현)의 대조가 아이러니를 이룹니다.

주석적 논의: 르신과 베가를 '연기 나는 부지깽이'로 부르는 것은 신학적 재규정입니다. 이미 다 타버려 곧 꺼질 그루터기를, 아하스는 실제 수명으로 다시 보아야 합니다.

설교적 함의: 겁내지 말라는 명령은 위협의 유효기간을 정확히 재라는 요구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그것이 이미 다했음을 아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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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 — 다브엘의 아들을 세우려는 음모

본문: יָעַץ עָלֶיךָ אֲרָם רָעָה... נַעֲלֶה בִיהוּדָה... וְנַמְלִיךְ מֶלֶךְ בְּתוֹכָהּ אֵת בֶּן טָבְאַל 직역: 아람이 너를 대적하여 악한 계획을 꾀하였다… 유다로 올라가서…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자

원어·문법 핵심: יָעַץ(모의하다)는 완료형으로 계획의 완결성을 서술합니다. טָבְאֵל(다브엘)은 히브리 성경 유일례로, 다윗 혈통 아닌 인물을 세우려 한 시도는 다윗 언약 자체를 겨눈 쿠데타였습니다.

주석적 논의: 침략자의 계획을 직접 인용해 세부를 엿듣게 하는 구조는, 뒤이은 신적 무효 선언(7:7)의 반전을 극대화하는 발판입니다.

설교적 함의: 적의 작전이 정교하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키기로 하신 언약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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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 이루어지지 아니하며 되지 아니하리라

본문: כֹּה אָמַר אֲדֹנָי יְהוִה לֹא תָקוּם וְלֹא תִהְיֶה 직역: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루어지지 아니하며 되지 아니하리라

원어·문법 핵심: קוּם(서다)은 여성 미완료형으로 앞선 עֵצָה(계획, 여성명사)를 가리키며, 뒤 동사와 동의어 병렬로 강조됩니다.

주석적 논의: 짧은 신탁 정형에 앞선 계략 전체를 무효화하는 무게가 실립니다. 실패는 우연이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하도록 선언된 결정이며, 뒤이은 65년 시간표(7:8)와 결합해 검증 가능한 예고로 제시됩니다.

설교적 함의: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결과는 이미 상부에서 선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이 이미 내려져 있음을 붙들고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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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a — 두 나라의 머리, 65년 후의 종말

본문: כִּי רֹאשׁ אֲרָם דַּמֶּשֶׂק... בְּעוֹד שִׁשִּׁים וְחָמֵשׁ שָׁנָה יֵחַת אֶפְרַיִם מֵעָם... וְרֹאשׁ אֶפְרַיִם שֹׁמְרוֹן 직역: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육십오 년 안에 에브라임이 부서지리라…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원어·문법 핵심: רְצִין(르신)은 히브리 성경 전체 11회(대표 왕하 15:37)이며 이후 앗시리아에 살해되고 다메섹이 속주로 전락한 역사가 이 시간표와 대체로 부합합니다. '머리는 머리요' 반복 구문은 두 나라의 힘이 한 사람의 수명에 묶인 유한함을 부각합니다.

주석적 논의: 65년이라는 구체적 시한은 이 신탁을 검증 가능한 역사적 예고로 전환시키며, 사마리아는 주전 722년 함락되어 대체로 이 흐름에 부합했습니다. 인간 왕권에 근거한 동맹과 다윗 언약에 근거한 신뢰가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견고함이라는 대조가 다음 절의 근거가 됩니다.

설교적 함의: 강해 보이는 조직도 결국 지휘 계통 정점 한 사람에게 의존합니다. 다음 절이 요구하는 신뢰의 대상은 그런 유한함에 속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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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b —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

본문: אִם לֹא תַאֲמִינוּ כִּי לֹא תֵאָמֵנוּ 직역: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진실로 너희가 굳게 서지 못하리라

참고 자료

  1. Sheldon H. Blank, "The Current Misinterpretation of Isaiah's She'ar Yashub,"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948). DOI: 10.2307/3261751.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2. George Buchanan Gray,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Isaiah I-XXVII* (ICC, 1912), pp.247, 253 *(공개 발췌 기반 참조)*.
  3. John McHugh, "The Date of Hezekiah's Birth," *Vetus Testamentum* (1964). DOI: 10.2307/1516797.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4. Herbert Wolf, "A Solution to the Immanuel Prophecy in Isaiah 7:14-8:22,"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972). DOI: 10.2307/3263678.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5. George Buchanan Gray,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Isaiah I-XXVII* (ICC, 1912), p.243 *(공개 발췌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이사야 7:1-14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 본 섹션은 초기 교회(3-5세기)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했는지, ANF·NPNF 문헌을 바탕으로 제시합니다. 현재 가용 자료는 7:9b("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의 칠십인역 표현("믿지 아니하면 깨닫지 못하리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키프리아누스(Cyprian) / 3세기 (니케아 이전 교부)

3세기 라틴 교회의 증언집 전통은 성경 전체에서 같은 주제의 구절을 모아 하나의 교리 사슬로 엮었습니다. "믿음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믿는 만큼 행할 수 있다"는 표제 아래 아브라함("믿으매 의로 여겨졌다")과 겨자씨 믿음 말씀 사이에 이사야 7:9b이 나란히 배치되어, 아하스 당대의 정치적 신탁이 아니라 믿음 일반의 초시간적 공리로 읽힙니다.

> "또한 이사야서에 이르되,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깨닫지 못하리라' 하였다." — "Also in Isaiah: 'And if ye do not believe, neither shall ye understand.'"[pat1]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 3세기 (니케아 이전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치유받은 이야기를 다루며, 그 여인이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별한 것이라고 논증하는 대목에서 이사야 7:9b을 근거로 끌어옵니다. 믿음이 먼저 있고 그 믿음이 깨달음(분별)을 낳는다는 논리로, 본문을 공동체적 정치적 신뢰의 요구에서 한 개인의 신앙 심리로 옮겨 적용합니다.

> "'네가 믿지 아니하면' 선지자가 말하듯이, '너는 깨닫지 못하리라.'" — "'If ye will not believe,' says (the prophet), 'ye shall not understand.'"[pat2]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 4-5세기 (니케아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의 동등함이 이성으로 온전히 파악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하며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이해가 아직 이르지 못한 자리에서 먼저 믿음으로 붙들라는 원리로, 훗날 스콜라 신학이 "믿음이 이해를 구한다(credo ut intelligam)"는 표어로 정식화하게 될 논리의 뿌리를 이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결코 깨닫지 못하리라' 하신 이가 마음에 비추실 때까지, 그것을 믿음으로 붙들라." — "let it be held by faith, until He shall dawn in the heart who says by the prophet, 'If ye will not believe, surely ye shall not understand.'"[pat3]

해석의 흐름 — 초기 교회 전통의 형성

현재 확보된 교부 문헌은 한결같이 7:9b의 칠십인역 어구 "믿지 아니하면 깨닫지 못하리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3세기 라틴 교회는 이 구절을 아브라함 이야기·겨자씨 믿음 말씀과 나란히 놓아 "믿음이 능력의 조건"이라는 교리 사슬의 한 고리로 삼았고(키프리아누스), 테르툴리아누스는 같은 원리를 한 개인의 치유 이야기에 적용해 공동체적 신뢰를 개인 신앙 심리로 옮깁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삼위일체 교리의 인식론적 원리로 승격시켜, 믿음이 이해에 선행한다는 후대 스콜라 신학의 뼈대를 예비합니다. 아하스에게 주어진 반쪽 절이 두 세기를 거쳐 믿음-이해 구조 전체의 기둥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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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수용사

> 본 섹션은 청교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세기 (청교도)

헨리는 이 장 전체를 마태복음 11:17의 어린아이들 비유("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았다")에 빗대어, 아하스 세대가 자비의 신탁과 심판의 신탁 어느 쪽에도 반응하지 않았다고 진단합니다. 그는 이 장이 "우리의 위로와 경계 둘 다를 위해 기록되었다"고 못박아, 임마누엘 표징을 순전한 위로로만 읽는 손쉬운 독법을 경계합니다.

> "이는 마치 때를 만난 설교와도 같아서, 선지자가 그들에게 자비와 심판을 노래했으나 그들은 알아듣지도 깨닫지도 못했다. 그가 그들을 향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았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았다." — "This chapter is an occasional sermon, in which the prophet sings both of mercy and judgment to those that did not perceive or understand either; he piped unto them, but they danced not, mourned unto them, but they wept not."[rh1]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웨슬리는 아하스가 "심히 악한 왕"이었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런 그의 시대에 오히려 가장 위로가 되는 예언이 주어졌다는 역설에 주목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통치자의 자격이 아니라 그 아래 사는 신실한 남은 자들을 향한 배려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 "아하스 — 심히 악한 왕이었으나, 그 시대에 전해진 예언들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예언은 없다. 하나님이 그 불경건한 통치 아래 살아가는 신실한 자들을 격려하시고자 이렇게 정하신 것이다." — "Ahaz - A most wicked king: yet no prophecies are more comfortable than those which were delivered in his time; God so ordering it for the encouragement of the faithful that lived under his impious reign."[rh2]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스펄전은 이 본문으로 두 편의 설교를 남겼습니다. 1893년 설교 "믿음 없이는 굳건함도 없다"(7:9)에서는 이사야를 보내신 정확한 장소와 시점에 주목해 "보내심을 받은 종을 위해 모든 회중은 이미 골라진 회중"이라는 섭리 신학을 전개하고, 1854/1891년 설교 "그리스도의 탄생"(7:14-15)에서는 표징 앞 아하스의 노골적인 불신을 생생히 그려 임마누엘의 표징이 요청이 아니라 거절에도 불구하고 주어졌음을 부각합니다.

> "하나님은 그 신실한 종들을 어디로 보낼지 아신다… 참된 설교자에 관한 모든 상황을 그분이 정하셨으니 — 무엇을 말할지, 어디서 말할지 — 그리고 모든 회중은 보내심을 받은 종을 위해 이미 골라진 회중이다." — "God knows where to send His faithful servants. He has arranged every circumstance about the true preacher—what he shall say and where he shall say it—and every congregation is a picked congregation for God's sent servants."[rh3]

참고 자료

  1. Cyprian, *Testimonies* (Book III, ch. 42), in *Ante-Nicene Fathers*, vol. 5. PD.
  2. Tertullian, in *Ante-Nicene Fathers*, vol. 3 (Latin Christianity). PD.
  3. Augustine of Hippo, *On the Holy Trinity*,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1, vol. 3. PD.
  4.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4 (Isaiah to Malachi), on Isaiah 7.
  5.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on Isaiah 7.
  6. C. H. Spurgeon, "No Fixity Without Faith" (No. 2305), *Spurgeon's Sermons* Volume 39: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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