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1-22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이사야 2:1-22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이사야 2:1-22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사야 사역의 역사적 정황
이사야는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 왕이 통치하던 주전 8세기 후반 유다를 무대로 활동했습니다(사 1:1). 2장의 본문은 구체적 연대 명시 없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말씀"(2:1)으로 시작하는데, 학자들은 1-5절의 시온 찬가가 웃시야 또는 요담 시대의 번영기에 속하며, 6-22절의 심판 신탁은 점술·우상·외세 의존이 심화된 아하스 시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봅니다. 주전 734년 이후 앗수르 제국의 팽창이 가속화되면서 유다는 아람·이스라엘 연합(시리아-에브라임 동맹)과 앗수르 세력 사이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외세 문화와 이방 종교가 급격히 유입되었습니다. 이사야 2:6-8이 고발하는 "동방 관습"(מִקֶּדֶם, 미케뎀)과 "블레셋 점술"(עֹנְנִים כַּפְּלִשְׁתִּים), 금은·군마의 범람은 이 시기 유다 사회의 실제 모습을 반영합니다.
시온 신학과 고대 근동의 우주산 개념
이사야 2:2의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הַר בֵּית יְהוָה, 하르 베이트 야흐웨)은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된 우주산(cosmic mountain) 전통 위에 서 있습니다. 가나안 신화에서 바알의 거처는 북쪽의 차폰 산(צָפוֹן, 차폰)이었고,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는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만나는 땅의 꼭짓점을 상징했습니다. 이런 고대 근동의 신성 산 개념이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재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면, 2:2의 "모든 산보다 높이 들릴 것이라"는 선언이 단순한 지리적 약속이 아니라 신학적 주권 선언임이 분명해집니다. 여호와의 산은 가나안의 종교 경쟁 지형 안에서 바알의 차폰 산을 대체하는 진정한 우주의 중심으로 제시되며, 이 주권은 2:1-5의 종말론적 비전 안에서 열방 전체를 향해 확장됩니다.
시편 48:1-3과 46:4-5에 나타난 "시온 노래들(Zion songs)"은 2장의 비전과 동일한 신학적 언어를 공유합니다. 시편 48:2는 예루살렘을 "북쪽(צָפוֹן, 차폰)에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가나안의 차폰 산 전통을 의도적으로 시온 신학으로 전용(轉用)한 표현입니다. 이사야 2장의 만국 순례 비전은 이 시온 노래 전통이 묵시론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 개념의 예언 전통
이사야 2:12의 "만군의 여호와의 날"(יוֹם לַיהוָה צְבָאוֹת, 욤 라이흐와 츠바오트)은 이사야만의 독창적 개념이 아니라 8세기 예언자들이 공유한 신학 공식입니다. 아모스는 이미 "여호와의 날"이 일반 백성이 기대하는 승리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는 심판의 날임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암 5:18-20). 즉 이사야 2장이 말하는 '여호와의 날'은 민족적 기대를 전복하는 방향으로 쓰입니다 — 이스라엘도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학은 스바냐 1:14-18, 요엘 2:1-11, 에스겔 7장에서도 반복되며, 예언 전통 안에서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형성합니다.
"모든 교만하고 높아진 것"(כָּל גֵּאֶה וָרָם, 칼 게에 와람)을 겨냥하는 이 심판은 구체적인 역사적 대상을 포함합니다. 이사야 2:13-16은 레바논의 백향목, 바산의 상수리나무, 높은 산과 언덕, 라합의 배들을 열거하는데, 이는 당시 국제 무역과 군사력의 상징들로 — 레바논 목재는 신전 건축과 왕실 사치의 재료였고, 다시스의 배들은 지중해 무역망의 표상이었습니다. 이 목록은 이사야 당시 유다 상류층이 의존하던 경제·군사적 부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지목합니다.
우상숭배의 역사적 실태
이사야 2:8의 고발은 고고학적 발굴과 일치합니다. 8세기 유다의 발굴지들에서는 테라코타 여신상과 다양한 소형 제의 물품들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제의 맥락의 토우들은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 내에 여호와 신앙과 가나안 신앙의 혼합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입니다. 이사야가 "그 땅이 우상으로 가득하여 자기 손으로 만든 것,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것에 경배한다"(2:8)고 할 때, 이것은 추상적 고발이 아니라 발굴된 유물들이 입증하는 역사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2:7이 고발하는 금은의 범람과 군마의 충만도 역사적 배경과 연결됩니다. 솔로몬 시대 이래 왕실은 애굽에서 말을 수입했고(왕상 10:28-29), 아하스는 앗수르에 신속하면서 은금 예물을 바쳤습니다(왕하 16:7-8). 이 행위들은 군사·경제적 자원에 대한 의존 — 곧 여호와 신뢰를 대신하는 구조적 우상 — 이었고, 이사야 2장은 그것을 신학적 차원에서 정면으로 심문합니다.
이사야 2:2-4와 미가 4:1-3의 이중 전승
이사야 2:2-4는 미가 4:1-3과 거의 동일한 문학적 구조와 내용을 공유합니다. 두 예언서가 사실상 동일한 본문을 수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대 예언 전통 안에서 이 시온 비전이 하나의 공유된 신학적 유산으로 기능했음을 시사합니다. 학자들은 이 공유 전통의 기원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합니다: (1) 이사야가 먼저 기록하고 미가가 인용했다는 설, (2) 미가가 먼저 기록하고 이사야가 수용했다는 설, (3) 두 예언자가 모두 예루살렘 성전 제의 안에서 공유되던 전례(liturgical) 자료에서 독립적으로 끌어냈다는 설입니다. 어느 설을 택하든, 이 비전이 8세기 유다 예언 운동 안에서 중요한 공유 언어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주목할 것은 두 예언서에서 이 비전이 배치되는 문학적 맥락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사야에서는 이 비전 직후 심판 신탁(2:6-22)이 이어지지만, 미가에서는 위로와 회복의 흐름 안에 더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두 예언자가 동일한 전통 자료를 각자의 신학적 맥락에 맞게 사용했음을 보여줍니다.[bg2]
고고학적 증거
제2성전기 예루살렘 성전산
예루살렘 성전산(현 하람 알-샤리프) 발굴은 8-7세기 BC 이스라엘의 제의 중심으로서의 예루살렘 지위를 확인해 줍니다. 성전산 북측 가장자리에 위치했던 제1성전은 주전 970년경 솔로몬에 의해 건립되었고, 이사야 시대에도 그 종교적 권위가 유지되었습니다. 성전산 발굴에서 확인된 주전 8세기 층은 예루살렘이 당시 이미 중요한 도시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며, 이사야 2:3의 "시온에서 율법이 나오며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나온다"는 선언이 실제 성전 예배·율법 낭독 전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arch1]
참고 자료
- Breytenbach, "Meesternarratiewe, kontranarratiewe en kanonisering," *HTS Teologiese Studies* 53 (1997): 956. DOI:10.4102/hts.v53i4.1774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예루살렘 성전산 발굴 개요: "Second Temple, Jerusalem — BAtlas 65 C5 site entry," *Barrington Atlas of the Greek and Roman Worl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0).
이사야 2:1-22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학술 논문, LXX 용례를 종합하여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이사야 2:1-22는 22절이므로 의미 단위별로 묶어 주해합니다.
---
2:1 — 표제: 예언 수령의 양식
본문: הַדָּבָר אֲשֶׁר חָזָה יְשַׁעְיָהוּ בֶן אָמוֹץ עַל יְהוּדָה וִירוּשָׁלָ ִם 직역: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상 중에 본 말씀
원어·문법 핵심: - חָזָה (하자, Qal 완료): 예언자적 이상(異象) 수령의 기술 용어입니다(암 1:1; 미 1:1). LXX는 ὁ λόγος ὁ γίνομαι παρά κύριος(주님 곁에서 발생한 말씀)로 번역해 계시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명시합니다.
주석적 논의: 이중 표제 구조(1:1과 2:1)는 이 신탁이 독립 전통 단위였음을 보여주는 편집 흔적입니다. 그뢰네발트(Groenewald, 2016)는 1:1-2:5를 이사야서 전체의 서사적 도입부로 분석하며, 2:1이 그 두 번째 축을 여는 선언이라고 봅니다.
설교적 함의: 말씀은 언제나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오지만 그 기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설교자는 먼저 "나는 어디서 듣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
2:2-3 — 말일의 시온 고양과 열방의 순례
본문: וְהָיָה בְּאַחֲרִית הַיָּמִים נָכוֹן יִהְיֶה הַר בֵּית יְהוָה... כִּי מִצִּיּוֹן תֵּצֵא תוֹרָה 직역: 말일에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이 굳게 서게 될 것이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원어·문법 핵심: - בְּאַחֲרִית הַיָּמִים (브으아하리트 하야밈, '말일에'): 창 49:1, 민 24:14, 호 3:5, 미 4:1 등에 공통으로 사용되는 종말론적 정형 표현입니다. LXX의 ἐν ταῖς ἐσχάταις ἡμέραις는 신약 종말 언어(요 6:39; 계 1:17)의 직접적 토대입니다. - וְנָהֲרוּ (으으나하루, Qal 완료 3인칭 복수남성): נָהַר는 '강처럼 흐르다'(렘 51:44)와 '빛을 향해 몰려들다'(사 60:5)는 이중 의미를 지녀 열방의 순례를 양의도(兩義圖)적으로 표현합니다. - תּוֹרָה (토라): LXX의 νόμος와 달리 히브리어는 '가르침·교훈'을 포괄합니다. 열방의 목적이 "여호와의 길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점은 이 비전이 군사 정복이 아닌 계시를 통한 보편 통치임을 선언합니다.
주석적 논의: 그뢰네발트(Groenewald, 2013)는 여호와가 이 구절에서 "보편적 재판장으로 열방에 효력 있는 명령을 내리는" 존재로 묘사된다고 분석합니다. 이 비전의 독창성은 열방이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오라 우리가 올라가자"고 결단하는 자발적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그레이(Gray, ICC)는 2:1-5의 운율이 주로 2:2 악센트 이련구 형식임을 확인하며, 이 절제된 운율이 장엄한 선포 효과를 낸다고 봅니다.
설교적 함의: 시온 순례 비전은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께로 이끌려 오는 그림입니다. "우리가 그 빛 안에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회중 앞에 먼저 놓여야 합니다.
---
2:4 — 전쟁이 평화로: 여호와의 재판과 검의 전환
본문: וְשָׁפַט בֵּין הַגּוֹיִם... וְכִתְּתוּ חַרְבוֹתָם לְאִתִּים 직역: 그가 열방 사이를 심판하실 것이요...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며
원어·문법 핵심: - וְכִתְּתוּ (으으키트으투, Piel 완료 3인칭 복수남성): Piel 강조형으로 '거듭 두들겨 형태를 바꾸다'는 뜻입니다. 요엘 3:10의 역방향 표현("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라")과 의도적 상호텍스트 관계를 이루어, '여호와의 날'이 심판과 구원 양면을 품는 변증법적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LXX는 συγκόπτω τὰς μαχαίρας εἰς ἄροτρα로 번역하며, 롬 12:18, 마 5:9 등 신약 평화 윤리에 반향됩니다.
주석적 논의: 반 데르 발트(van der Walt, 2021)는 2:1-5에 שָׁלוֹם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본문이 묘사하는 평화가 전쟁 부재를 넘어 여호와와의 관계에 기반한 적극적 상태임을 논증합니다. 오바시·이보(Obasi·Igbo, 2023)는 사 2:4의 비전이 구조적 폭력의 해체와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예언자적 요청으로 기능한다고 봅니다.
설교적 함의: "칼을 쳐서 보습 만드는" 비전은 개인 변화와 사회적 변혁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상입니다. "당신의 손에 있는 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적용의 출발점입니다.
---
2:5 — 빛의 초청: 야곱아 오라
본문: בֵּית יַעֲקֹב לְכוּ וְנֵלְכָה בְּאוֹר יְהוָה 직역: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원어·문법 핵심: - לְכוּ (레쿠, Qal 명령 복수남성): 3절의 열방이 서로 권하는 표현과 동일한 어형이 이스라엘에게 역적용됩니다. בְּאוֹר יְהוָה(베오르 야흐웨)는 시 36:9와 사 60:19-20의 새 창조 빛과 연결되며, LXX의 φωτὶ κυρίου 표현은 요 8:12의 "나는 세상의 빛"의 배경이 됩니다.
주석적 논의: 5절은 2-4절의 종말론적 비전과 6절의 현실 고발 사이에 삽입된 단 하나의 전환절입니다. 열방이 시온을 향해 올라갈 준비를 하는데 정작 야곱 족속이 빛 가운데 걷고 있는가라는 반어적 질문이 내포되어 있으며, 곧이어 오는 "그러나 주께서 주의 백성을 버리셨다"는 고발이 이 초청의 거절을 증거합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의 초청은 언제나 현재 시제입니다. 종말 비전을 들었다면 지금 그 빛 안에 걷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
2:6-8 — 이스라엘의 신앙 이탈: 동방 관습·점술·우상
본문: כִּי נָטַשְׁתָּה עַמְּךָ בֵּית יַעֲקֹב... מַעֲשֵׂה יָדָיו 직역: 이는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기 때문이라... 그 손으로 만든 것들
원어·문법 핵심: - נָטַשְׁתָּה (나타쉬타, Qal 완료 2인칭 남성 단수): 충격적 역전입니다 — 주어가 '주'이고 목적어가 '주의 백성'입니다. LXX는 ἀνίημι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그의 백성을 놓아버리다)로 번역해 보호 관계의 종료를 강조합니다. - 6-8절의 מָלְאָה(말레아, '가득하다') 반복: 동방 관습·점술·금은·군마·우상으로 "가득하다"는 수사학적 누적이 언약 소송(רִיב) 형식의 기소문을 이룹니다.
주석적 논의: 6-8절의 고발 순서가 신앙 이탈의 단계적 진행을 드러냅니다: 문화적 혼합(동방 관습·점술) → 경제·군사적 의존(금은·군마) → 종교적 우상. 8세기 고고학 발굴의 테라코타 여신상들은 이 고발이 역사적 현실을 반영함을 보여줍니다.
설교적 함의: 우상숭배는 결코 단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문화 수용에서 시작된 작은 타협이 경제적 의존으로, 마침내 완전한 신뢰 이탈로 이어집니다.
---
2:9-10 — 낮아짐의 전주: 용납 없는 심판
본문: וַיִּשַּׁח אָדָם וַיִּשְׁפַּל אִישׁ... מִפְּנֵי פַּחַד יְהוָה 직역: 그리하여 사람이 굽어지고 장부가 낮아지니... 여호와의 두려움 앞에서
원어·문법 핵심: - וַיִּשַּׁח (바이샤흐, Niphal 연속 과거) / וַיִּשְׁפַּל: 동의어 병행으로 우상숭배의 결과로 인간이 이미 '굽어졌다'는 서술이 11·17절의 심판 선언을 선취합니다. LXX의 κύπτω / ταπεινόω는 신약에서 자발적 겸손(약 4:10; 마 23:12)의 어휘로 반전됩니다.
교회 역사에서 이사야 2:1-22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사야 2:1-22가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5.1 교부 해석 전통
유스티누스 순교자(Justin Martyr) / 2세기 (변증가 시대)
유스티누스 순교자(Justin Martyr, c. 155-165 AD)는 이사야 2:4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니"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성취한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을 버리고 평화의 도구를 선택하며 산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예언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논증했습니다. 그의 해석에서 결정적인 대목은 그리스도를 직접 창조자로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 "그분 자신이 쟁기를 만드시고 낫을 도입하셨다 — 즉 아담 안에서 나타난 창조로서 인류의 첫 파종이며, 말씀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때에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 "He Himself who has made the plough, and introduced the pruning-hook, that is, the first semination of man, which was the creation exhibited in Adam, and the gathering in of the produce in the last times by the Word."[pat1]
이 해석은 이사야 2:2의 "마지막 날"을 창조-구속-완성이라는 삼중 틀 안에 놓으며, 칼을 보습으로 바꾸는 행위가 시간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와 연결된 신학적 사건임을 드러냅니다.
알렉산드리아 교부 전통(ANF Vol. 2) / 2세기
ANF 2권에 수록된 알렉산드리아 계통의 교부들은 이사야 2:3의 "시온에서 율법이 나오며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리라"를 "천상의 말씀(the celestial Word)"의 발산으로 읽었습니다.[pat2] 이들에게 시온 산은 지상의 도성이 아니라 로고스가 온 세계를 향해 진리의 빛을 발산하는 신적 계시의 중심이었으며, 만국의 순례 비전은 로고스를 통한 보편적 구원론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 4-5세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 AD)는 이사야 2:2의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이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그림자 안에서가 아니라(not in a shadow) 몸으로(bodily) — 곧 견고하고 참되게" 임재하는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고 논증했습니다.[pat3] 성육신이 시온 산의 성취라는 이 기독론적 독해는 이후 서방 신학에서 이사야 2장 해석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5.2 설교사·수용사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18세기 (청교도)
매튜 헨리(Matthew Henry, 1662-1714)는 이사야 2장을 두 예루살렘의 대비로 구조화했습니다.[rh1] 2-4절의 시온 비전은 "복음 교회의 영광(the glory of the Christians, Jerusalem, the gospel-church in the latter days)"을 가리키고, 6-22절의 심판 신탁은 우상과 교만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의 수치를 폭로한다고 보았습니다. 헨리는 설교자와 청중 모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남겼습니다.
> "어느 예루살렘의 주민이 될 것인가 — 하나님의 지식으로 충만하여 영원한 영광이 될 곳인가, 아니면 말과 병거와 금은과 우상으로 가득하여 결국 수치가 될 곳인가?" — "which of these Jerusalems will we be the inhabitants of — that which is full of the knowledge of God, which will be our everlasting honour, or that which is full of horses and chariots, and silver and gold, and such idols, which will in the end be our shame?"[rh1]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복음주의)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이사야 2:2의 "마지막 날"을 "메시아의 때(In the times of the Messiah)"로 풀이하며,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이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신비롭게(mystically of the church of God)" 표상한다고 보았습니다.[rh2] 그는 2:3의 "율법"을 "새 율법, 즉 복음의 교리(the new law, the doctrine of the gospel)"로 해석하여, 만국 순례의 비전을 복음 선교의 역동성과 연결하고 교회의 성장이 이사야 2장의 살아있는 성취임을 강조했습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침례교)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은 1859년 4월 24일 이사야 2:2를 본문으로 "후대의 영광에 대한 비전(A Vision of the Latter-Day Glories)"(Sermon No. 249)을 선포했습니다.[rh3] 그는 이 본문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종말론적 사건 — 여호와의 산이 만국 위에 높이 들리는 미래의 영광 — 을 가리킨다고 역설하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후대의 영광"으로 청중의 종말론적 소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교부 시대부터 19세기까지 해석의 무게 중심은 이동했습니다 —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적 독해(성육신이 시온 산을 성취함), 청교도·웨슬리의 교회·선교론적 독해(복음 교회의 영광과 선교적 확산), 스펄전의 종말론적 독해(재림 때 완성될 시온). 이 세 층위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이사야 2장이 그리스도의 초림·교회 시대·재림을 함께 조망하는 복합 예언임을 증언합니다.
참고 자료
- 유스티누스 순교자(Justin Martyr), *Dialogue with Trypho*, in Philip Schaff (ed.), *Ante-Nicene Fathers*, vol. 1 (Peabody: Hendrickson, 1994), 900.
- 알렉산드리아 교부 전통, in Philip Schaff (ed.), *Ante-Nicene Fathers*, vol. 2 (Peabody: Hendrickson, 1994), 285.
-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in Philip Schaff (ed.),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1 (Peabody: Hendrickson, 1994).
- 매튜 헨리(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4: Isaiah to Malachi (Peabody: Hendrickson, 1991), on Isa 2.
- 존 웨슬리(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on Isa 2:2.
-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A Vision of the Latter-Day Glories," Sermon No. 249 (April 24, 1859), in *Spurgeon's Sermons*, vol. 5 (1859).
댓글
댓글 남기기
작성한 댓글은 검토 후 공개됩니다. 이름과 댓글 내용만 저장되며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습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