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7:1-7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시편 67:1-7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시편 67:1-7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풍성한 추수의 절기 — 시편의 삶의 자리
시편 67편의 표제는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느기놋)로, 이 시가 성전 예배에서 현악기 반주로 불리도록 지어졌음을 알려줍니다.[bg3] 6절 "땅이 그 소산을 내었다"는 완료형 동사로 진술되는데, 이는 방금 지나간 추수 또는 풍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히며, 옛 주석가들은 이 시편이 실제로 풍성한 수확을 거둔 직후 감사의 자리에서 지어졌을 가능성을 지적합니다.[bg1] 즉 본문의 배경은 특정한 역사적 전쟁이나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절기적 감사—땅의 소산을 거둔 공동체가 그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예배의 정황입니다. 이런 삶의 자리는 7절의 결론("땅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함이로다")이 왜 갑자기 등장하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 눈앞의 풍성한 수확이 이스라엘 한 민족의 복에 그치지 않고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아야 할 이유로 확장되는 신학적 논리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작 정황에 대한 옛 주석 전통
MT 표제에는 저작자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칠십인역·불가타·아랍어·에티오피아어 역본은 이 시편을 다윗의 시로 전하며, 옛 주석가들은 그 문체와 어조가 다윗의 다른 시들과 닮았다는 점을 근거로 다윗 저작설을 지지하는 한편, 아벤 에즈라(Ibn Ezra)는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혀 불확실성을 인정했습니다.[bg3] 시리아어 역본의 표제 전승은 이 시가 압살롬의 반역이 끝난 뒤 다윗이 요단강을 건널 때 백성이 불렀던 노래라고 전하기도 합니다.[bg3] 후대 유대 전통 가운데는 이 시편을 메시아 시대, 곧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흩어진 백성이 다시 모이는 종말의 때에 대한 예언으로 읽는 흐름도 있었습니다(킴히 등).[bg3] 이런 다양한 저작 전승은 어느 것도 확정할 수 없지만, 공통적으로 이 시편이 이스라엘의 특정 사건보다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와 복이라는 더 큰 주제를 향해 열려 있는 본문으로 오래전부터 읽혀 왔음을 보여줍니다.
고대 역본이 본 본문의 어조 — 기원인가 확신인가
3-7절의 동사들을 어떤 서법으로 읽을지는 고대 역본에서부터 갈렸습니다. 칠십인역·불가타·히에로니무스는 이 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원(祈願, "…하기를 원하나이다")의 형태로 옮겼고, 심마쿠스도 4절까지는 기원형을 따르되 아퀼라는 그 자리를 미래형으로 옮겼습니다.[bg2] 이 차이는 사소한 문법 문제가 아니라 시편 전체의 무드를 결정합니다 —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간구로 읽을 것인지("만민이 주를 찬송하게 하옵소서"), 아니면 뒤로 갈수록 그 간구가 이미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 섞인 선언으로 전환된다고 읽을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근대 이전 역본들이 이 지점에서부터 이미 견해가 갈렸다는 사실은, 본문이 처음 구절의 겸손한 기원에서 출발해 점차 확신의 어조로 상승해 가는 구조로 설계되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제사장 축복의 언어와 고대 근동의 축복 관습
1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사"는 민수기 6:24-26의 제사장 축복문과 동일한 세 동사(은혜를 베풀다·복 주다·얼굴을 비추다)를 사용하며, 이는 본문이 성전에서 제사장이 회중에게 선포하던 축복 선언을 예배시의 언어로 재구성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bg1] 이런 '축복을 선포하는' 발화 행위 자체는 이스라엘에 국한된 관습이 아니라 고대 근동 전반에서 확인되는 종교적 언행 양식이었습니다. 신아시리아 시대의 제의 문헌은 향로 앞에서 축복을 선포하는 순서를 규정하고 있으며,[bg4] 서신 자료에서도 팔을 들어 축복하는 몸짓과 함께 왕에게 축복을 아뢰는 관용구가 등장합니다.[bg4] 이런 자료는 이스라엘이 근동의 관습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뜻이 아니라, '복을 선포함'이 고대 근동 세계에서 널리 인식된 예배·궁정 언어의 한 장르였음을 보여주는 비교 자료로 참고할 수 있습니다 — 그런 공통된 언어 관습 위에서, 시편 67편은 그 복의 방향을 이스라엘의 왕이나 신전이 아니라 "땅끝까지" 확장하는 독특한 신학적 전환을 이룹니다.
엘로힘 시편군 안에서의 위치
본문 전체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은 "엘로힘"(אֱלֹהִים)으로만 나타나며, 언약의 고유한 이름인 "여호와"(YHWH)는 쓰이지 않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제2권(42-72편)과 제3권 앞부분(73-83편)에 걸쳐 나타나는 이른바 '엘로힘 시편군'의 특징으로, 같은 시가 제1권(예: 시 14편)에서는 여호와로, 제2권에 재수록된 형태(시 53편)에서는 엘로힘으로 나타나는 등 편집 단계에서 신명이 의도적으로 통일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본문을 포함하는 시편 42-89편을 하나로 묶어 다루는 커크패트릭의 주석 자체가 바로 이 구간의 경계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이 편집적 특징을 반영합니다.[bg1] 이 관찰이 설교 적용에서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1·6·7절에 반복되는 "엘로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스라엘만의 언약적 호칭(여호와)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 신명으로 부른다는 점에서, "열방이 주를 알게 하려 함이라"는 본문의 선교적 지향과 미묘하게 맞물립니다.
참고 자료
- A. F. Kirkpatrick, *The Book of Psalms*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 Book II-III (Psalms 42–89), on Ps 67.
- J. J. Stewart Perowne, *The Book of Psalm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s and Notes*, vol. 1 (Psalms 1–72), on Ps 67.
- John Gill, *An Exposition of the Old Testament*, on Ps 67.
- State Archives of Assyria (SAA) 03 011; SAA 10 198.
시편 67:1-7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67:1 — 은혜에서 시작되는 축복
본문: אֱלֹהִ֗ים יְחָנֵּ֥נוּ וִֽיבָרְכֵ֑נוּ יָ֤אֵ֥ר פָּנָ֖יו אִתָּ֣נוּ סֶֽלָה
직역: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며, 그 얼굴을 우리와 함께 비추시기를 — 셀라"
원어·문법 핵심: - חָנַן(피엘 미완료) — 자격을 전제하지 않는 값없는 은혜. LXX οἰκτείρω(36회). - בָּרַךְ(피엘 미완료) — 1·6·7절 세 차례 반복되어 시 전체를 감싸는 봉투 구조. LXX εὐλογέω(515회). - 히필 지시형 יָאֵ֥ר + פָּנָיו("그의 얼굴")는 임재·호의의 관용구로, 민수기 6:24-26의 세 동사(은혜·복·얼굴빛)와 순서까지 일치합니다. - 1차 문헌 병행: 신아시리아 제의 문헌(SAA 03 011)은 향로 앞에서 축복을 선포하는 순서를 규정하며, 서신 자료(SAA 10 198)도 팔을 들어 축복을 아뢰는 관용구를 전합니다 — '복을 선포함'이 고대 근동 전반의 예배 언어였음을 보여주는 비교 자료입니다.
주석적 논의: 이 절은 민수기 6장 제사장 축복문을 2인칭 단수("네게")에서 1인칭 복수("우리에게")로 바꾸어, 회중 전체의 발화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세 동사의 순서 자체가 신학적입니다 — 은혜(값없이 주심)가 복보다 먼저 오고, 복이 있어야 얼굴빛(지속적 임재)이 뒤따릅니다. 즉 복은 우리 안의 무언가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에서 흘러나옵니다.
설교적 함의: 축복은 회중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작은 교회는 "우리가 이만큼 갖추어야 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눌리기 쉽지만, 본문은 그 순서를 뒤집습니다. 오늘은 자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베푸셨다"는 확신으로 예배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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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 — 복의 목적: 온 땅에 알려질 주의 길과 구원
본문: לָדַ֣עַת בָּאָ֣רֶץ דַּרְכֶּ֑ךָ בְּכָל גּ֝וֹיִ֗ם יְשׁוּעָתֶֽךָ
직역: "땅 위에서 주의 길을 알게 하시고, 모든 나라 가운데 주의 구원을 알게 하시려고"
원어·문법 핵심: - לָדַ֣עַת(칼 부정사연계) — 1절 축복 기원의 목적("알게 하시려고")을 나타내는 전형적 용법(GKC). - דֶּרֶךְ("길")은 하나님의 성품·다스리심의 은유이며, גּוֹי는 이스라엘 밖 열방을 가리키는 표준어입니다. - יְשׁוּעָה("구원")는 LXX σωτήριος(139회)로 옮겨집니다.
주석적 논의: 1절의 축복이 곧바로 목적절로 이어져, "복을 주소서"라는 간구가 "주의 길과 구원이 열방 중에 알려지게 하소서"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옛 주석 전통은 이 절을 이중으로 읽었습니다 — 이스라엘 자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기도이자, 그 자비를 지켜본 열방이 이끌려 오게 해 달라는 기도로요.[v2] 이는 스가랴 8:20-23에서 여러 민족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찾는 장면과 맥이 닿습니다. 이 절이 67편 전체의 신학적 중심축입니다 — 뒤따르는 모든 구절이 이 목적을 향해 배열되어 있습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는 그것을 넘어서는 목적이 있습니다 —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이 주의 길과 구원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는 받은 은혜를 '우리끼리' 누리고 마는 데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오늘 내가 받은 은혜가 누구에게로 흘러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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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 — 후렴: 만민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본문: יוֹד֖וּךָ עַמִּ֥ים אֱלֹהִ֑ים י֝וֹד֗וּךָ עַמִּ֥ים כֻּלָּֽם
직역: "백성들이 주께 감사하리이다, 하나님이여, 백성들이 다 주께 감사하리이다"
원어·문법 핵심: - יָדָה(히필 미완료) — "감사하다·찬송하다·고백하다". LXX ἐξομολογέω(137회), 이 시편 자체(LXX 66:4·6)가 대표 용례입니다. - 같은 절이 5절에서 그대로 반복되어 4절을 감싸는 짧은 후렴 틀을 이룹니다. - כֻּלָּם("다")이 עַמִּים를 뒤따르며 총체성을 강조합니다.
주석적 논의: 완전한 반복은 히브리 시가에서 강조와 확신을 더하는 장치로, 시 전체를 두 폭으로 나누는 봉투 틀(envelope)을 이룹니다. 이 미완료형 서법을 기원으로 읽을지 확신의 선언으로 읽을지는 고대 역본에서부터 갈렸습니다 — 칠십인역·불가타·히에로니무스는 기원형으로 일관되게 옮겼습니다.[v3] 뒤이은 6절의 완료형과 나란히 보면, 이 후렴이 단순한 소망을 넘어 이미 시작된 감사의 합창으로 읽힐 여지가 열립니다.
설교적 함의: 찬양은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반복해서 외치는 공동체적 행위입니다. 소수라는 이유로 위축되기 쉬운 작은 교회에, 이 후렴은 규모가 아니라 일치된 고백에 방점을 둡니다. 오늘 함께 외치는 찬송이 그 자체로 '만민의 찬송'의 작은 실현임을 확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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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 — 공평한 통치가 낳는 기쁨: 심판이 아니라 인도
본문: יִֽשְׂמְח֥וּ וִֽירַנְּנ֗וּ לְאֻ֫מִּ֥ים כִּֽי תִשְׁפֹּ֣ט עַמִּ֣ים מִישׁ֑וֹר וּלְאֻמִּ֓ים בָּאָ֖רֶץ תַּנְחֵ֣ם סֶֽלָה
직역: "민족들이 기뻐하며 즐거이 노래하리니, 이는 주께서 백성들을 공평으로 재판(통치)하시며 땅 위의 민족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니이다 — 셀라"
원어·문법 핵심: - שָׂמַח("기뻐하다")와 רָנַן("노래하다")가 짝을 이뤄 내적 감정과 외적 표현을 함께 묶습니다. - שָׁפַט("재판·통치")에 מִישׁוֹר("공평")가 방식을 규정하는 부사어로 붙습니다. LXX εὐθύτης(24회). - 뒤이은 "인도하시리이다"(히필)가 재판과 동의적으로 병행되어, 통치의 결과가 억압이 아니라 선한 인도임을 강조합니다.
주석적 논의: 접속사 כִּי가 열방의 기쁨과 하나님의 공평한 통치 사이의 인과를 명시합니다 — 열방이 기뻐하는 이유는 자신들을 다스리는 이가 공평하신 분이라는 사실 자체입니다. 이 절은 '재판'이 흔히 주는 두려움의 이미지를 뒤집어, 바로 그 재판을 기쁨과 노래의 근거로 삼습니다. 재판과 인도가 병행되는 것도 공평한 통치가 곧 목자의 선한 이끄심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의 통치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의 이유입니다 — 그분의 재판은 공평하고 다스리심은 선한 인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공평 앞에 위축되기 쉬운 회중에게, 본문은 결국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노래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두려움 대신 기쁨을 선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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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 후렴의 반복: 확신으로 굳어지는 찬양
본문: יוֹד֖וּךָ עַמִּ֥ים אֱלֹהִ֑ים י֝וֹד֗וּךָ עַמִּ֥ים כֻּלָּֽם
직역: "백성들이 주께 감사하리이다, 하나님이여, 백성들이 다 주께 감사하리이다"
원어·문법 핵심: - 3절과 자구 하나 다르지 않은 완전한 반복 — 시 전체를 둘러싸는 후렴이 여기서 완성됩니다. - 이 반복으로 시는 1-2절(축복·목적)·3-4절(후렴·통치)·5-7절(후렴·소산·목적)로 나뉩니다. - יָדָה(히필)가 다시 등장해 3절의 감사·고백의 의미장을 이어받습니다.
주석적 논의: 같은 문장의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강조와 확신을 더하는 수사적 장치입니다. 4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한 직후 이 후렴이 다시 오는 것은, 찬송이 한층 더 굳건해짐을 보여줍니다. 이 절은 또한 구조적 다리이기도 합니다 — 4절의 우주적 통치 선언과 6절의 구체적 소산 사이를 잇습니다.
설교적 함의: 같은 고백의 반복은 신앙의 얕음이 아니라 확신의 깊어짐을 보여줍니다. 매주 크게 다르지 않은 예배 순서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본문의 후렴은 반복 자체가 찬양의 본질적 형태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복되는 고백을 신실하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선포로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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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on Ps 67.
- J. J. Stewart Perowne, *The Book of Psalms*, vol. 1, on Ps 67:3-7.
- John Gill, *An Exposition of the Old Testament*, on Ps 67:6.
- A. F. Kirkpatrick, *The Book of Psalms*, on Ps 67:6-7; A. Tholuck, *Übersetzung und Auslegung der Psalmen*, on Ps 67.
교회 역사에서 시편 67:1-7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해석·선포되어 왔는지 연대순 흐름으로 살핍니다. 아쉽게도 초기 교회(교부) 문헌 코퍼스에서는 이 짧은 시편을 직접 다룬 신뢰할 만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해, 청교도 시대부터 근현대 강단까지의 수용사를 중심으로 제시합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18세기 (청교도)
헨리는 이 시편 전체를 교회를 위한 공적 기도로 규정하고, 본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어 읽었습니다 — 1절은 이스라엘 교회의 번영을 구하는 기도, 2-5절은 이방인의 회심과 교회로의 편입을 구하는 기도, 6-7절은 그 일이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때에 대한 전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구조를 통해 시편 기자가 예언의 영에 이끌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무리로 연합할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미리 내다보았다고 읽었습니다. "이 시편은 교회에 관한 것이며 공적으로 쓰도록 지어졌습니다. 여기 있는 것은, 첫째, 이스라엘 교회의 번영을 위한 기도(1절)이며, 둘째, 이방인의 회심과 그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기도(2-5절)이고, 셋째,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실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때에 대한 전망(6, 7절)입니다."[rh1]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는 헨리의 삼단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개별 구절의 어휘에 더 세밀하게 주목했습니다. 그는 2절의 "주의 길"을 "진리의 길, 참된 신앙"으로, "주의 구원"과 동일한 것을 가리키는 두 표현이 함께 "구원의 길"을 뜻한다고 풀이했습니다. 4절의 "다스리다"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원어가 문자적으로 "인도하다"임을 지적하며, 이것이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 온유하게 이끄는 것이지 다른 왕들처럼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주의 길 — 진리의 길, 곧 참 신앙이니, 다음 구절에서 '주의 구원'이라 불리는 것과 같은 것으로, 둘이 함께 구원의 길을 뜻합니다. 주의 백성을 그처럼 은혜롭게 대하셔서, 그로 인해 이방 세계가 마침내 그들과 연합하도록 이끌리게 하소서."[rh2]
알렉산더 맥클라렌(Alexander MacLaren) / 19세기 (강해설교가)
빅토리아 시대 강해설교의 대표자 맥클라렌은 이 시편의 문학적 건축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일곱 절이 각각 두 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한가운데 4절만 세 소절로 되어 있어, 그 자리와 남다른 길이가 이 절을 시 전체의 핵심으로 표시한다고 관찰했습니다. 그 핵심은 다시 3절과 5절 — 같은 소원을 네 번 되풀이하는 후렴 — 에 둘러싸여 있고, 이 셋은 다시 두 절씩 짝을 이루는 1-2절과 6-7절이라는 두 개의 큰 테두리에 감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시의 구조는 여러 가지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일곱 절이 각기 두 소절로 되어 있으되, 오직 가운데 절(4절)만 세 소절로 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 위치와 남다른 길이는 이 절을 시 전체가 둘러싸며 세워지는 핵심으로 표시합니다."[rh3]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설교자)
1868년 7월 5일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에서 "소망의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편 6-7절을 본문 삼아 설교한 스펄전은, "하나님, 우리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표현 하나에 설교 전체의 무게를 실었습니다. 그는 "우리의(own)"이라는 소유격 한 단어가 조국·고향집·부모·형제 같은 인간의 가장 친밀한 관계에 붙을 때 지니는 정서적 울림을 길게 풀어내며, 그 동일한 친밀함이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도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자신의 하나님.' 이 얼마나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칭호입니까! 이 다정한 이름을 야곱의 하나님께 처음 붙인 사람의 마음에는 얼마나 큰 사랑스러움과 생기가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노래하는 이가 주의 하나님을 그렇게 말한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그 이름은 믿는 귀에 여전히 신선함과 새로움을 지니고 있습니다."[rh4]
수용사 흐름
네 세기(17-19세기)를 잇는 이 흐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시대와 신학적 배경이 다른 이 네 사람이 본문을 읽는 핵심 축만은 거의 흔들림 없이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헨리와 웨슬리는 나란히 이 시편을 이스라엘의 복과 이방인의 회심을 잇는 하나의 기도로 읽었고, 웨슬리는 특히 4절의 "인도하다"라는 원어에 주목해 그 복이 억압이 아니라 목자의 온유한 이끄심으로 임한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맥클라렌은 같은 본문을 신학적 명제가 아니라 정교한 문학적 건축물로 다시 읽어, 4절이 시 전체의 핵심에 놓인 이유를 구조 자체에서 논증했습니다 — 이는 앞선 두 세기의 신학적 읽기가 놓치지 않았던 4절의 중심성을, 형식 차원에서 다시 확인해 준 셈입니다. 그리고 같은 세기 스펄전은 이 모든 신학적·구조적 통찰을 다시 회중의 심장으로 가져와, "우리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단 두 단어에서 시편 전체가 구하는 복의 친밀함을 풀어냈습니다. 결국 청교도의 교회론적 읽기에서 강해설교가의 구조 분석을 거쳐 강단의 목회적 적용에 이르기까지, 이 짧은 시편은 세기를 건너며 한결같이 "값없이 주어진 복이 결국 친밀한 관계로 귀결된다"는 하나의 궤적을 그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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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3 (Job to Song of Solomon), on Ps 67.
-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Whole Bible*, on Ps 67:2, 4.
- Alexander MacLaren, *The Expositor's Bible: The Psalms*, vol. 2, on Ps 67.
- Charles H. Spurgeon, "The Minstrelsy of Hope," Sermon No. 819, *Spurgeon's Sermons*, vol. 14 (1868), on Ps 6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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