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21-28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마태복음 16:21-28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마태복음 16:21-28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마태복음은 1세기 말(70-100 CE) 유대-기독교 공동체를 배경으로 형성된 복음서로, 예수의 정체성을 구약 예언의 성취 관점에서 일관되게 제시합니다. 공동체는 토라 준수와 기독론적 고백 사이의 긴장 속에 있었으며, 이 복음서의 강력한 교회론(ἐκκλησία)적 강조는 그 정황을 반영합니다.[bg1] 16:21-28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세 층위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 종교 지도부의 구성, 로마의 십자가 처형 관행, 그리고 인자 종말론의 사회·문화적 맥락입니다.

예루살렘 산헤드린 — 장로·대제사장·서기관

21절이 열거하는 세 집단(πρεσβύτεροι·ἀρχιερεῖς·γραμματεῖς, 장로·대제사장·서기관)은 예루살렘 최고 의결기구인 산헤드린의 핵심 구성원들입니다. 산헤드린은 71인으로 구성된 유대 최고 법정이자 종교·정치 의결 기관으로, 헤롯 왕조 이후 로마 점령 하에서도 내부 종교 문제에 일정한 자율권을 유지했습니다. 장로(πρεσβύτεροι)들은 예루살렘의 유력 귀족 가문 대표로 토지 소유·상업을 기반으로 한 세속 권력 집단이었고, 대제사장들(ἀρχιερεῖς)은 복수형으로서 현직 대제사장 외에도 전직 대제사장·제사장 지도자들을 포괄하는 제의 귀족 계층이었습니다. 서기관(γραμματεῖς)은 토라 필사·해석·교육의 전문가 집단으로, 바리새파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제사장 계층에도 속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세 집단이 연합하여 메시아를 죽인다는 예수의 선언은, 기존 종교 권력 체계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립하는 구조를 드러냅니다. 특히 마태는 '장로들'을 마가복음 병행 본문과 같은 순서로 첫 번째로 배치함으로써(막 8:31 대조), 이 심판 주체가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확립된 사회질서 전체를 대표함을 시사합니다.

로마의 십자가 처형 — σταυρός의 역사적 맥락

24절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ἀράτω τὸν σταυρὸν αὐτοῦ)는 당시 청중에게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환기했습니다. 로마는 정치 반란자와 노예·극악 범죄자를 처형하는 수단으로 십자가형(crucifixio)을 광범위하게 사용했으며, 사형 선고를 받은 자는 통상 처형지(golgotha)까지 자신이 묶일 가로대(patibulum, 십자가의 횡목)를 직접 메고 가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이는 로마 군사력의 절대 권위를 공공연히 과시하는 동시에 수형자에게 극도의 수치와 굴욕을 가하는 의도적인 제의적 치욕이었습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이 처형 방식은 흔히 목격되던 장면이었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유대 지방에서의 처형 방식을 기록하며 십자가형이 반란 진압 수단으로 체계적으로 활용됐음을 전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실 때, 이 말을 듣는 제자들은 문자 그대로 처형수가 자신의 처형 기구를 지고 걸어가는 광경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영적 헌신의 비유가 아니라, 죽음을 향한 공개적 행진이 이 명령의 첫 번째 의미층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문헌 중 콥트어 파피루스(p.koeln.aegypt.2.25)도 십자가 중심성(cross-centered)을 일관된 주제로 다루며, 이 용어가 그리스-로마 세계 전반에서 처형 도구와 치욕을 동시에 상징했음을 증언합니다.

신적 필연(δεῖ)과 유대 묵시 전통

21절의 δεῖ("반드시 ~해야 한다")는 단순한 예언적 선언이 아닙니다. 제2성전기 유대 묵시 문학에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시간과 사건을 미리 정하시고, 마지막 때에 그 경륜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신적 필연성' 개념이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다니엘서와 쿰란 공동체 문헌들은 이 종말론적 결정론을 반복합니다. 마태는 이 전통 위에서 예수의 수난을 '하나님의 필연적 계획'(δεῖ)의 성취로 제시합니다 — 인간 역사의 비극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정해진 구속의 경륜이 지금 진행 중이라는 선언입니다.[bg2]

이 δεῖ 신학은 특히 마태 공동체의 Sitz im Leben과 맞닿아 있습니다. 박해와 소외를 경험하는 공동체에게 '고난은 신적 필연'이라는 선언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위기 대응 신학을 형성하는 핵심 언어였습니다.[bg3]

인자(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의 종말론적 배경

27절의 "인자가 그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리라"는 다니엘서 7:13-14의 직접적인 반향입니다. '인자'(bar enash) 칭호는 제2성전기 유대 묵시 전통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자 최후 심판자를 가리키는 묵시적 칭호로 발전했습니다(에녹1서 46-48장, 4에스라 13장). 마태는 이 칭호를 예수에게 귀속시켜, 현재의 고난(21절)과 미래의 영광(27절)이 동일 인물 안에 통일되어 있음을 선언합니다 — 십자가를 지는 이 예수가 바로 영광 중에 심판하러 오실 인자라는 것입니다.

28절의 "죽음을 맛보지 않고 인자가 그 왕권으로 오는 것을 볼 자들이 있다"는 해석 상 논쟁이 많은 구절입니다. 이것이 변화산(17:1-8)을 가리키는지, 부활을 가리키는지, 성전 파괴(70 CE)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종말론적 재림을 가리키는지는 §6 학술 논의에서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고고학적 증거

예루살렘 성전 구역은 마태복음 16:21-28에서 수난의 목적지 및 종교 지도부의 근거지로 핵심적 배경을 이룹니다. 소위 '제2성전'은 기원전 약 516년 재건되어 헤롯 대왕에 의해 대규모 확장되었으며(기원전 20년경 착공), 예루살렘 성전 산의 북부 돔 구역에 위치했고, 기원후 70년 로마의 공성 작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헤롯 성전 시대의 유물 연구는 대제사장 가문들의 권력과 부를 고고학적으로 확인해 줍니다 — 예루살렘 구시가 번화가(Upper City)에서 발굴된 1세기 귀족 저택들은 제의 귀족 계층의 경제적 기반을 입증합니다.

참고 자료

  1. F. P. Viljoen, "Matthew's Sitz im Leben and the Emphasis on the Torah," *Acta Theologica* 32 (2012): 195–218. DOI:10.38140/at.v32i2.2453.
  2. Marius J. Nel, "The Conceptualisation of Sin in the Gospel of Matthew," *In die Skriflig/In Luce Verbi* 51 (2017): 1–11. DOI:10.4102/ids.v51i3.2097.
  3. Francois P. Viljoen, "Matthew and the Torah in Jewish Society," *In die Skriflig/In Luce Verbi* 49 (2015): 1–10. DOI:10.4102/ids.v49i2.1946.

마태복음 16:21-28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학술 논문, 1차 문헌 자료를 종합하여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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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 — δεῖ: 신적 필연의 전환 선언

본문: δεῖ αὐτὸν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ἀπελθεῖν καὶ πολλὰ παθεῖν ἀπὸ τῶν πρεσβυτέρων καὶ ἀρχιερέων καὶ γραμματέων 직역: 그는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부터 많은 것을 당하여야 한다.

원어·문법 핵심: - Ἀπὸ τότε: 마태복음의 편집 구조 표지(4:17과 함께 복음서를 두 축으로 구분). 베드로의 고백이 즉각적 수난 예고로 전환됨을 강조합니다. - δεῖ: 비인칭 동사로 신적 필연성 표현. 다니엘 LXX(단 2:28 δεῖ γενέσθαι)가 배경으로, 고난이 하나님의 묵시적 경륜에 의한 필연임을 선언합니다. 신약에서 예수 수난에 결합될 때(눅 9:22; 24:7; 행 17:3) 동일 신학을 강조합니다.

주석적 논의: 예루살렘 제2성전(Second Temple) 고고학은 헤롯 확장 규모와 제사장 귀족 계층의 권력 구조를 확인해 줍니다. 21절의 장로·대제사장·서기관 삼중 집단은 바로 이 권력 구조의 핵심이며, δεῖ는 이 인간적 연합과 신적 경륜의 충돌 지점을 '하나님의 필연'으로 규정합니다. 블루멘탈(Blumenthal)은 마 16:21-20:34 전체를 예수의 왕적 정체성과 무능(Ohnmacht)의 역설적 공존으로 분석하며, 마태 공동체의 실존 모범으로 제시됨을 논증합니다.[v21]

설교적 함의: 수난은 비극적 실패가 아니라 창세 전부터 정해진 구속 경륜의 실현(δεῖ)입니다. 교양층 회중에게 십자가를 '하나님이 선택하신 구원의 방법론'이라는 지적 확신으로 선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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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 — ἵλεώς σοι: 베드로의 신학적 항거

본문: ἵλεώς σοι, κύριε· οὐ μὴ ἔσται σοι τοῦτο 직역: "주님께 이런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προσλαβόμενος: 부정과거 중간태 분사로 신체적 주도권 행사를 함축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데려가 꾸짖으려 했음을 암시합니다. - ἵλεώς σοι: 히브리어 חָלִילָה의 헬라어 번역. 신약에서 이 절에만 등장하는 마태 특수 전승으로, '결코 그러지 마소서'의 강력한 부정을 표현합니다.

주석적 논의: 22절의 ἤρξατο ἐπιτιμᾶν('꾸짖기 시작하였다')은 충동적·즉각적 반응을 드러냅니다. 마가 8:32보다 마태에서 더 구체적 언어로 특정된 이 항거는, 당시 유대 메시아 기대 — 정치적 해방자, 다윗 왕조 복원자 — 가 굳어진 세계관에서 비롯된 신학적 저항입니다. 인간이 선호하는 '성공하는 메시아' 상과 하나님의 '고난받는 메시아' 계획의 충돌 지점을 드러냅니다.

설교적 함의: 선의에서 비롯된 반대가 하나님의 계획에 저항하는 σκάνδαλον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설교자는 '좋은 의도'로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현상을 회중의 삶의 장면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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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 — σκάνδαλον: 걸림돌의 신학

본문: σκάνδαλόν μου εἶ, ὅτι οὐ φρονεῖς τὰ τοῦ θεοῦ ἀλλὰ τὰ τῶν ἀνθρώπων 직역: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들이 아니라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

원어·문법 핵심: - σκάνδαλον: 히브리어 מִכְשׁוֹל의 헬라어 번역. 마태의 편집 강조어(5:29; 13:41; 18:7)로 마가 8:32 병행에는 없는 마태 고유 표현입니다. - φρονεῖς τὰ τοῦ θεοῦ / τὰ τῶν ἀνθρώπων: 복수 중성 관사 표현으로 두 '세계관 전체'의 충돌을 선언합니다.

주석적 논의: 베드로를 '사탄'으로 부른 것은 인격 공격이 아닙니다. '대적자'로서 사탄의 기능(욥 1-2장)은 하나님의 계획에 맞서는 것입니다. 광야 시험(4:1-11)에서 악마가 수행한 역할 — 십자가 없는 메시아 경로로 유혹하는 것 — 을 베드로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또한 στραφείς("돌이키사")는 예수님이 전체 제자단을 향해 돌아섰음을 암시하며(24절 "누구든지"), 23절의 꾸짖음이 공동체 전체를 향합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의 충돌은 오늘도 지속됩니다. 내 기도와 소원이 σκάνδαλον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 설교자는 이 자기 성찰의 질문을 회중에게 초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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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 — ἀπαρνησάσθω: 자기부인과 십자가 지기

본문: ἀπαρνησάσθω ἑαυτὸν καὶ ἀράτω τὸν σταυρὸν αὐτοῦ καὶ ἀκολουθείτω μοι 직역: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들어 메고, 나를 따르라.

원어·문법 핵심: - ἀπαρνησάσθω: 부정과거 중간태 명령형. 강조 전치사 ἀπο-가 '자기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다'는 철저한 부인을 표현합니다. 동일 어근 ἀπαρνέομαι는 신약에서 주로 베드로의 예수 부인 맥락(26:34, 75)에서 쓰여, 24절의 자기 부인 명령과 아이러니한 긴장을 형성합니다. - σταυρόν: 타키투스(Tacitus, Historiae V)는 유대 지역 로마 처형 관행을 기록합니다. 1세기 청중에게 '십자가를 지다'는 사형수가 자신의 횡목(patibulum)을 처형지까지 메고 가는 실제 이미지를 즉각 환기했습니다. 코프트어 파피루스(p.koeln.aegypt.2.25)도 십자가 중심성을 초기 기독교 문헌의 핵심 언어로 증언합니다.

주석적 논의: 24절의 세 명령(부인하라-지라-따르라)은 점층적 제자도 요건입니다. 단순 도덕적 금욕이 아닌 사망을 향한 자발적 행진의 언어로, 제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께서 여신 삶의 방식 —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 — 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설교적 함의: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죽음으로 가는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라는 요청입니다. 경력·지위·안전망을 하나님의 경륜 앞에 내어 놓는 결단이 구체적 내용이며, 설교자는 '편안한 신앙'과 '십자가를 지는 신앙'의 차이를 날카롭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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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 — ψυχή: 목숨 역설의 신학

본문: ὃς γὰρ ἐὰν θέλῃ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σῶσαι ἀπολέσει αὐτήν· ὃς δ᾽ ἂν ἀπολέσῃ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ἕνεκεν ἐμοῦ εὑρήσει αὐτήν 직역: 자기의 목숨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게 될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 ψυχή: 동일 절에서 두 번 반복되며 의미 전환을 이룹니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 생존, 두 번째는 참된 자아·영혼·영생을 포함한 다층적 의미로 확장됩니다. 신약에서 '목숨'(빌 2:30)과 '영혼'(마 10:28) 사이를 오가는 이 이중 의미가 역설을 가능하게 합니다.

주석적 논의: 이사야 53:12 LXX(παρεδόθη εἰς θάνατον ἡ ψυχὴ αὐτοῦ)는 25절의 구약적 뿌리입니다. 고난받는 종이 자기 ψυχή를 사망에 쏟아붓는 것이 결국 '많은 사람을 얻는' 귀결로 이어지는 이사야의 역설이, 예수의 제자도 선언에서 제자들의 실존 원리로 재적용됩니다. 구약 원문맥: 사 53장의 종은 자발적 죽음으로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며(53:11), 이 구조가 25절 역설의 신학적 토대입니다. 겐터(Genter)는 마태복음 전체에서 이 죽음-생명의 역설이 서사의 일관된 뼈대를 형성한다고 분석합니다.[v25]

참고 자료

  1. Christian Blumenthal, "Vorbildhaftes Gottvertrauen: Der matthäische Jesus zwischen tödlicher Ohnmacht und königlicher Macht," *Biblica* 99 (2018): 163–193. DOI:10.2143/bib.99.2.3284922.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2. John Genter, "A Messianic Secret and an Unconventional Christ in Matthew's Gospel,"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45 (2026): 1–20. DOI:10.15699/jbl.1451.2026.6.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3. John Genter, "A Messianic Secret and an Unconventional Christ in Matthew's Gospel,"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45 (2026): 1–20. DOI:10.15699/jbl.1451.2026.6.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마태복음 16:21-28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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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4-5세기 (안티오크-콘스탄티노플 교부)

크리소스톰은 마태복음 16:24에 대한 설교 55편(Homily LV)에서 베드로의 항거(22절)와 예수의 책망(23절)을 자기부인 명령(24절)의 직접적 맥락으로 연결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책망에 단순 꾸짖음에 그치지 않고 즉각 제자도 선언으로 이어가신 것은, 베드로의 말이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수난 회피라는 신학적 오류임을 드러내고, 고난의 유익을 제자 전체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고 분석합니다. 그의 설교 해석에서 핵심 통찰은, 예수의 수난을 방해하는 것이 베드로에게 '파멸적'인 이유가 예수를 실족시키기 때문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구원의 길 자체를 막음으로 베드로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 "나에게 방해가 되고 나의 수난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 너에게 해롭고 파괴적일 뿐 아니라, 너 자신도 죽음에 항상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구원받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 "Not only is it hurtful to thee, and destructive, to hinder me and to be displeased at my Passion, but it will be impossible for thee even to be saved, unless thou thyself too be continually prepared for death."[r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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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 13세기 (스콜라 신학)

아퀴나스는 『황금 사슬』(Catena Aurea)에서 마 16:21에 대해 오리게네스를 인용합니다. 오리게네스는 베드로의 고백이 예수의 수난 예고 계기가 된 점에 주목하며, 이 연결이 그리스도의 정체성(메시아 고백)과 그리스도의 사역(수난 필연성) 사이의 논리적 연속임을 강조했습니다. 아퀴나스 자신의 관점에서 δεῖ는 단순 역사적 필연이 아니라 영원한 신적 계획(providentia divina)의 표현이며, 장로·대제사장·서기관이라는 세 집단에 의한 죽음은 유대 권력 전체의 책임을 분담시키는 신학적 배분입니다. 중세 스콜라 해석은 이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 수난의 '필연성'이 강제가 아닌 사랑의 자원(自願)에서 비롯됨을 체계화했습니다.[r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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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세기 (청교도 해석)

매튜 헨리의 『성경 주석』은 마 16:21을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마음을 점진적으로 여신다"는 신학적 원리의 예시로 읽습니다. 베드로의 충분한 고백 후에야 수난을 공개하신 것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높은 진리를 점층적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교육법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이 세상에서 위대하거나 높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제자도가 고난의 경로임을 청교도 실천 신학의 틀 안에서 설교의 현실적 지침으로 전환시킵니다. 헨리의 강점은 복잡한 신학을 평신도가 실제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데 있었습니다.[r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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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복음주의 부흥)

웨슬리는 마 16:26을 설교 84번("The Important Question")의 본문으로 삼아, 영혼 구원의 우선성을 당대 영국 사회의 상업 논리에 맞서는 선교 신학적 선언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파스칼의 통찰을 인용하여 시작하되, 예수는 천상의 왕이시기에 영원한 나라의 일들을 말씀하실 때 "그의 언어는 쉽고 자연스럽다"고 역설했습니다. 웨슬리의 방법론은 영혼의 가치와 세상 전체의 가치를 비교하는 26절의 수사적 질문을 감리교 실천 신학 — 성화(聖化)와 영혼 돌봄 — 의 우선순위 선언으로 읽었습니다. 세속 번영과 영혼의 가치 사이의 충돌을 목회적 긴박감으로 선포한 웨슬리의 접근은, 18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회중에게 특히 강력하게 공명했습니다.[r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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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라렌(Alexander Maclaren) /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설교자)

스코틀랜드 침례교 설교자 맥라렌은 마태복음 16장 전체를 설교하면서 "신적 그리스도의 고백,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부인"(THE DIVINE CHRIST CONFESSED, THE SUFFERING CHRIST DENIED)이라는 제목으로 두 사건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포착했습니다. 그의 분석에서 베드로의 고백과 항거가 같은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고백이 자동으로 그분의 방법론(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수용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설교적 통찰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교양 회중을 상대했던 맥라렌은 이 역설을 정교한 수사적 대비로 직조하여, 그리스도의 '위대함'에는 세상적 기준이 아닌 다른 척도가 작동함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습니다. 이 접근은 오늘 도시 교양층 회중에게 여전히 유효한 설교 전략입니다.[r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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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이 본문의 수용사는 일관된 한 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 '어떻게 고난을 신학적으로 납득하는가'. 크리소스톰은 고난을 구원의 조건으로, 아퀴나스는 신적 섭리의 체계로, 헨리는 제자 훈련의 점진적 교육으로, 웨슬리는 영혼 우선의 실천 신학으로, 맥라렌은 그리스도론적 역설의 수사 전략으로 전개했습니다. 시대와 전통이 달라도 이 본문은 언제나 설교자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 당신의 회중은 지금 '위대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고난을 통한 영광이라는 복음의 역설은 언제나 시대의 성공 신학과 충돌하며, 그 충돌 지점에서 이 본문은 살아 있는 선포의 힘을 발휘해 왔습니다.

참고 자료

  1. 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Gospel of St. Matthew*, Homily LV (Matt. 16:24).
  2. Thomas Aquinas, *Catena Aurea: Commentary on the Four Gospels — Matthew*, on Matt. 16:21.
  3.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 5 (Matthew to John), on Matt. 16:21.
  4. John Wesley,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Sermon 84 [86] ("The Important Question"), on Matt. 16:26.
  5. Alexander Maclaren, *Expositions of Holy Scripture: Matthew IX to XVIII*, on Matt.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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