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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35-41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마가복음 4:35-41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마가복음 4:35-41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갈릴리 바다의 지리와 기상

마가복음 4:35-41의 배경은 '갈릴리 바다'(θάλασσα τῆς Γαλιλαίας)입니다. 이 수역은 요한복음 6:1에서 "갈릴리 곧 디베랴의 바다"로도 언급되는데,[bg1]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이 호수를 게네사렛 호수(Lake of Gennesaret)라 불렀습니다. 해수면보다 약 210미터 낮은 분지에 위치한 이 호수는 길이 약 21km, 폭 약 13km로, 주변 골란 고원(헤르몬 산맥 지류)과 서쪽 구릉지 사이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에 취약합니다. 북쪽 협곡을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와 주변 산악 지형이 교차할 때, 본문의 λαῖλαψ(라일라프스, 회오리바람)처럼 짧은 시간에 맹렬한 폭풍이 발생합니다. 헤로도토스는 에게해에서의 폭풍 기사를 기록하면서 갑작스러운 폭풍이 선박을 파멸시키는 양상을 묘사한 바 있습니다.[bg2] 이 호수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이었던 갈릴리 어부들 — 베드로·안드레·야고보·요한 — 은 이런 폭풍에 결코 낯선 자들이 아니었음에도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은, 4:37이 묘사하는 폭풍의 격렬함을 방증합니다.

고대 근동의 바다 상징과 신성 권위

고대 근동 세계에서 바다와 폭풍은 단순한 자연 현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바빌론 의례 문헌인 SBH(Sumerian Balag-Hymns) 6번은 "그의 말씀은 거센 폭풍, 그의 말씀은 광풍"이라 노래하며, 신의 말씀과 폭풍을 동일시합니다.[bg3] SBH 52번은 "폭풍이 가축의 우리를 파괴하고, 폭풍이 양 떼의 우리를 뿌리째 뽑는다"라고 묘사하는데,[bg4] 이는 폭풍을 무질서한 파괴력의 상징으로 이해한 고대 근동 공통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이사야서는 이 세계관에 응답하여 야웨를 "폭풍 속의 피난처, 뜨거운 열기를 피하는 그늘"로 선포합니다(이사야 25:4).[bg5]

구약 성경은 바다를 통제하는 행위를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의 표시로 반복합니다. 시편 107편은 폭풍 중에 뱃사람들이 야웨께 부르짖자 그분이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며 물결을 잠잠하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욥기 38장에서 야웨는 욥에게 "바다가 그 원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시편 89:9(MT 89:10)는 야웨가 바다의 교만을 다스리고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다고 선언합니다. 이 구약의 '바다 통치' 모티프는 마가복음 4:39에서 예수께서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시는 장면의 신학적 토대를 이룹니다. 독자들이 이 장면에서 야웨를 연상하도록 의도된 것입니다.

로마 지배 시대 갈릴리의 사회적 맥락

마가복음이 기록된 시기(기원후 1세기 중·후반)의 갈릴리는 복잡한 정치-경제 구조 안에 있었습니다. 예수 당시 갈릴리는 혜롯 안티파스의 통치 아래 있었으며, 이후 로마의 직접 통치로 이어졌습니다. 타키투스(Tacitus)는 유대 지방에 대해 기술하면서 로마 군사력이 예루살렘 함락(기원후 70년)에서 절정에 달한 역사적 과정을 서술합니다.[bg6] 갈릴리 어부들은 이러한 제국적 정치 구조 안에서 세금(헤롯의 어업세)과 경제적 압박을 감내하는 계층이었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중간층에 속했던 이들 어부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는 사실(막 1:18, 20)은 예수의 부르심이 경제적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초청이었음을 암시합니다. 갈릴리 기적 군(4:35-5:43)이 이 지역적 맥락 — 이방인과 유대인이 호수를 두고 마주 보며 사는 경계 지대 — 에서 전개된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건너편(τὸ πέραν)은 이방 지역인 거라사(게르게사) 방향으로, 예수의 사역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는 방향을 시사합니다.

갈릴리 어선과 항해 전통

4:36-38은 매우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로 모시고 가다"(παραλαμβάνουσιν αὐτὸν ὡς ἦν ἐν τῷ πλοίῳ, '배에 계신 그대로')는 예수께서 가르치시던 배를 그대로 타고 호수를 건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의 고물"(πρύμνα, 프륌나)에 "베개"(προσκεφάλαιον, 프로스케팔라이온)를 베고 주무셨다는 묘사는 목격자 전승의 생생한 흔적으로 평가받습니다. 퍼킷 주석(Pulpit Commentary)은 이 마가복음 4장 전체의 세부적 서술이 마가의 독특한 목격 전통을 반영한다고 지적합니다.[bg7] 실제로 1986년 갈릴리 북서 해안에서 발굴된 1세기 목조 어선('갈릴리 보트', 약 8m 길이)은 그리 크지 않은 실용적인 어선이 이 호수에서 사용되었음을 증명하며, 폭풍이 일자 이런 소형 선박의 침몰 위험이 즉각적이었음을 뒷받침합니다.

참고 자료

  1. John 6:1, "After these things, Jesus went away to the other side of the sea of Galilee, which is also called the Sea of Tiberias."
  2. Herodotus, *The Histories* 7.192.1 (trans. A. D. Godley).
  3. *Sumerian Balag-Hymns* (SBH) 6, "His word is a hasty storm, his word is a storm, a storm wind" (Hellenistic period, Babylon provenance).
  4. *Sumerian Balag-Hymns* (SBH) 52, "The storm destroys the cattlepen, the storm uproots the sheepfold" (Hellenistic period, Babylon provenance).
  5. Isaiah 25:4 (Rainbow Missions, Inc., trans.): "For you have been a stronghold to the poor … a refuge from the storm."
  6. Tacitus, *The Histories*, Book V (Conquest of Judaea section).
  7. H.D.M. Spence-Jones and Joseph S. Exell, *The Pulpit Commentary: Mark*, Vol. I, on ch. 4.

마가복음 4:35-41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4:35

본문: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직역: 그리고 그 날 저녁이 되자,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원어·문법 핵심: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엔 에케이네 테 헤메라, '그 날에')는 비유 강화(4:1-34)와 즉각적 시간 연결을 형성합니다. ὄψιος(옵시오스, '저녁')는 일몰 후 시각입니다. εἰς τὸ πέραν(에이스 토 페란, '건너편으로')은 갈릴리 동편, 이방 지역 방향입니다.

주석적 논의: 이 명령은 예수 쪽에서 발원합니다. 비유로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마가의 구성 논리가 작동합니다. 하루 종일 군중을 가르치신 뒤 저녁에 다시 호수를 건너는 결단은 사역의 경계 확장을 암시합니다.[v1]

설교적 함의: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운동은 인간의 기획이 아닌 예수의 주도에서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건너가자"에 응답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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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본문: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직역: 그리고 무리를 떠나보내고서, 그들은 그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배들도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ὡς ἦν ἐν τῷ πλοίῳ('배에 계신 그대로')는 마가 특유의 목격자 어구로 마태·누가 병행에 없습니다. ἄλλα πλοιάρια(알라 플로이아리아, '다른 작은 배들')도 마가만 보존한 세부 사항입니다.

주석적 논의: "배에 계신 그대로"는 예수가 가르치시던 배에서 그대로 출항했음을 가리키며 급박한 출발을 암시합니다. 캠브리지 성경 주석은 이 같은 세부 묘사가 마가복음의 목격자 전통을 반영한다고 지적합니다.[v2] 다른 배들은 이후 서사에서 사라지며, 기적 장면은 예수와 제자들에게 집중됩니다.

설교적 함의: 마가는 예수의 인간적 실재를 생생하게 보존합니다. 사도적 증언의 전승이 이러한 구체성을 통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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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

본문: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직역: 그리고 큰 회오리바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파도가 배 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그래서 배가 이미 가득 차고 있었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λαῖλαψ μεγάλη(라일라프스 메갈레, '큰 회오리바람')에서 λαῖλαψ는 신약 3회 출현(막 4:37; 눅 8:23; 벧후 2:17). κῦμα(큐마, 파도)는 복수형. ἤδη γεμίζεσθαι(에데 게미제스다이)의 현재진행·미완료는 침수 과정이 이미 진행 중이었음을 강조합니다. LXX에서 λαῖλαψ는 욥기 38:1에서 야웨 현현의 폭풍에 사용됩니다.

주석적 논의: λαῖλαψ는 고대 항해 문헌에서 갑작스럽고 격렬한 회오리바람을 가리키는 전문어입니다.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에게해 폭풍에 대해 갑작스러운 폭풍이 함대를 전멸시킨 사례를 기록합니다.[v3] 갈릴리 호수의 분지형 지형은 북쪽 골란 고원에서 내려오는 한랭 기류가 따뜻한 수면과 부딪힐 때 이 같은 λαῖλαψ를 발생시킵니다. 배가 "이미" 가득 찼다는 서술은 상황의 객관적 절박함을 묘사합니다.

설교적 함의: 폭풍의 객관적 위협은 제자들의 두려움을 약화로 규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설교자는 위기의 실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위기를 주목해야 할 방향을 묻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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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

본문: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워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직역: 그런데 그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깨우며 말한다, "선생님, 우리가 죽어 가는데 신경 쓰지 않으십니까?"

원어·문법 핵심: πρύμνα(프륌나, '고물') — 배 뒤편. προσκεφάλαιον(프로스케팔라이온, '베개') — 신약 단 1회 출현. μέλει σοι(멜레이 소이, '당신에게 관심 있습니까') — 동사 μέλω(멜로)는 '~에게 중요하다/신경 쓰다'. ἀπολλύμεθα(아폴뤼메타) — '우리가 죽어 가고 있다' (현재 진행).

주석적 논의: 예수의 수면은 세 신학적 층위로 읽힙니다. (1) 인성: 하루 종일 가르치신 참된 인간의 피로. (2) 신뢰: 시편 3:5; 4:8에서 야웨를 신뢰하는 자가 안전히 잠듭니다("야웨께서 나를 지켜주시니 내가 누워 자도다"). (3) 주권자의 평온: 신현 장면에서 주권자는 요동하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 바빌론 의례 문헌(SBH 6)은 "그의 말씀은 거센 폭풍"이라며 폭풍을 신의 능력과 연결하는데,[v4] 이 맥락에서 폭풍 가운데 주무시는 예수의 평온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제자들의 물음 μέλει σοι는 비난이 아니라 절박한 호소입니다.[v5]

설교적 함의: 예수가 폭풍 중에 잠드셨다는 사실은 불신의 증거가 아니라 완전한 신뢰의 모범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올바른 방향을 향한 신앙의 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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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본문: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직역: 그러자 그가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말씀하셨다, "잠잠하라, 재갈 물려 있으라." 그러자 바람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큰 고요함이 생겼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ἐπετίμησεν(에페티메센, '꾸짖으셨다') — 마가복음의 귀신 축출 용어(막 1:25; 3:12; 9:25). σιώπα(시오파, '잠잠하라') — 현재 명령법. πεφίμωσο(페피모소, '재갈 물려 있으라') — 완료 수동 명령법, 즉각적이고 영속적인 복종 요구. κοπάζω(코파조) — '멎다/기운이 빠지다'. γαλήνη μεγάλη(갈레네 메갈레) — '큰 고요함'.

주석적 논의: 캠브리지 성경 주석은 πεφίμωσο가 "재갈 물린 상태로 있으라"는 완료 명령으로, 단번에 영속적 침묵을 명령한다고 지적합니다.[v6] 동일한 φιμόω(피모오) 동사가 막 1:25에서 귀신에게 사용됩니다 — 마가는 자연 세계와 악의 세계를 동일한 언어로 예수의 꾸짖음 아래 놓습니다. 구약에서 야웨만이 바다를 꾸짖으십니다 — 시편 107:29, 욥기 38:8-11, 나훔 1:4는 폭풍과 바다가 야웨의 명령 앞에 복종한다고 선포합니다. 예수가 같은 방식으로 바다를 꾸짖을 때, 그 언어적 전통이 행위의 무게를 규정합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설교적 함의: 예수의 명령은 협상이나 과정이 없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폭풍이 침묵하는 이 장면은 하나님 나라의 권위가 어떤 성질인지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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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

본문: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직역: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 이렇게 겁쟁이들이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원어·문법 핵심: δειλοί(데일로이, '비겁한/겁쟁이들') — 신약 3회(마 8:26; 막 4:40; 계 21:8). 계 21:8에서 지옥에 던져지는 첫 번째 부류가 δειλοί입니다. οὔπω(우포, '아직도') — 제자들의 지속적 믿음 결핍 상태. πίστιν(피스틴) — 관사 없음,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음.

주석적 논의: δειλοί는 단순한 심리적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의 근본적 결핍을 진단하는 어휘입니다. 라일(J. C. Ryle)은 예수와 같은 배에 있으면서도 두려워한다는 역설을 지적하며, 이것이 신자들에게 "믿음 없음의 위험성"을 가르치는 본문이라고 봅니다.[v7] 알포드(Henry Alford)는 οὔπω('아직도')가 제자들의 점진적 이해 과정 — 함께 있으면서도 아직 믿음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 — 을 가리킨다고 분석합니다.[v8]

설교적 함의: 예수와 함께 있음(함께 배에 탄 상태)과 예수를 믿음(믿음의 완성)은 다릅니다. 교회 출석과 신앙의 확증이 동일하지 않음을 이 본문이 직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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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참고 자료

  1. J. C. Ryle, *Expository Thoughts on the Gospels: St. Mark* (London, 1857), on Mark 4:35, p. 100.
  2. G. F. Maclear, *Cambridge Bible: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Cambridge, 1877), on Mark 4:36, p. 99.
  3. Herodotus, *The Histories* 7.192.1 (storms destroying ships at sea).
  4. *Sumerian Balag-Hymns* (SBH) 6: "His word is a hasty storm, his word is a storm, a storm wind" (Hellenistic period, Babylon provenance).
  5. Maclear, *Cambridge Bible: Mark*, on Mark 4:38.
  6. Maclear, *Cambridge Bible: Mark*, on Mark 4:39.
  7. Ryle, *Expository Thoughts: Mark*, on Mark 4:40, p. 102.
  8. Henry Alford, *The Greek Testament*, vol. 1 (London, 1856–1861), on Mark 4:40.
  9. G. A. Chadwick, *The Expositor's Bible: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London, 1887), on Mark 4:41, p. 123.

교회 역사에서 마가복음 4:35-41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니케아 이전 교부 (2-3세기) — 타티아누스·테르툴리아누스의 배경

타티아누스(Tatianus)의 디아테사론(Diatessaron)은 사복음서를 하나의 복음 서사로 조화시킨 2세기 복음서 편집본으로, 마가 4:35-41 병행 기사를 "우리 주여, 구하소서, 우리가 죽겠습니다"라고 옮기며 복음 전통의 초기 수용을 보여줍니다.[p1]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c. 200)는 De Baptismo(세례론)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가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 첫 능력을 드러내시며, 물 위를 걸으신 것과 함께 폭풍을 잔잠케 하심으로 물과의 긴밀한 연관을 드러내셨다고 논증합니다.[p2] 이 배경에서 배는 교회를 상징하는 물 위의 공동체로 읽히기 시작했고, 이 알레고리는 이후 교부 전통에서 표준이 됩니다.

니케아 교부 (4-5세기) — 크리소스톰·아우구스티누스의 심화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4-5세기)은 마태 8장 병행 강해에서 이 폭풍 기사를 제자 훈련의 관점으로 읽습니다.[p3] 예수는 "탁월한 훈련자"로서 군중이 없는 자리에서 제자들만과 폭풍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 기적을 통한 믿음 형성뿐 아니라 시련 앞의 담대함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크리소스톰은 이를 "고난을 고귀하게 감내하도록 훈련하는" 목사적 의도로 해석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설교집에서 이 본문을 마가·마태·누가의 조화 속에서 분석합니다.[p4] 그는 복음서 기자들이 비유 강화 이후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비교하면서, 마가가 비유들로부터 이 기적으로 직접 이행하는 편집 선택이 의미심장하다고 주목합니다 — 비유로 선포된 하나님 나라가 기적으로 입증된다는 구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이 본문의 핵심은 믿음과 두려움의 대립입니다.

종교개혁 시대 — 문자적 독해와 신앙 훈련

16세기 종교개혁 전통은 교부 알레고리(배=교회, 폭풍=박해)에서 멀어져 본문의 문법-역사적 의미와 믿음 교훈을 전면에 세웠습니다. 폭풍은 하나님의 섭리적 신앙 훈련의 장이고, 4:40의 물음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없느냐?"는 교회 구성원 개인을 향한 영적 진단으로 읽혔습니다. 기적의 목적은 두려움 해소가 아니라 믿음으로의 부름이라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19세기 이후 — 빅토리아 시대 복음주의와 현대 수용

라일(J. C. Ryle, 1816-1900)은 Expository Thoughts on Mark에서 이 본문을 세 가지 교훈으로 압축합니다: (1)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 (2) 기도는 위기 앞의 유일한 올바른 반응이다, (3) 믿음 없음은 신자의 영적 위험입니다.[p5] 이 실천적 독법은 영미권 개신교 설교 전통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세기 이후 서사비평의 등장과 함께 제자 이해 결핍 모티프가 조명되었고, 블라운트(Brian K. Blount)의 경계 돌파 읽기는 본문을 사회-선교적 시각에서 해석합니다.[p6] 모나 D. 후커(Mona D. Hooker)는 마가복음에서 두려움과 믿음의 대비가 부활 서사(16:1-8)에서도 반복됨을 지적하며, 이 구조가 마가복음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신학적 뼈대임을 제시합니다.[p7]

참고 자료

  1. 타티아누스(Tatianus), *Diatessaron* §22 (c. 170 CE), in Philip Schaff (ed.), *Ante-Nicene Fathers* 9 (New York, 1896), pp. 108.
  2.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De Baptismo* XII (c. 200 CE), in Philip Schaff (ed.), *Ante-Nicene Fathers* 3 (New York, 1885), p. 1533.
  3.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Gospel of Saint Matthew*, Homily XXVIII, in Philip Schaff (ed.),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 1, vol. 10 (New York, 1888), p. 345.
  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armony of the Gospels*, in Philip Schaff (ed.),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 1, vol. 6 (New York, 1888), p. 349.
  5. J. C. Ryle, *Expository Thoughts on the Gospels: St. Mark* (London, 1857), on Mark 4:35-41, pp. 100–104.
  6. Brian K. Blount, "Jesus as Teacher: Boundary Breaking in Mark's Gospel and Today's Church," *Interpretation* 70 (2016): 30–41. DOI:10.1177/0020964315622997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7. 모나 D. 후커(Mona D. Hooker), 《복음의 결말》 (서울: 비아, 2026),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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