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7-13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로마서 15:7-13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로마서 15:7-13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로마 교회의 형성과 유대인-이방인 긴장
바울이 로마서를 집필한 시기는 대략 57-58년경으로, 고린도에서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으로 여겨집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특이한 역사적 경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49년경 로마의 유대인들을 추방했으며(행 18:2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 이 사건과 연관됩니다), 이 추방으로 인해 로마 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가 54년에 사망하자 유대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약 5년간 이방인 신자들만으로 운영된 로마 교회의 관행과 문화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로마서 14-15장에 등장하는 '강한 자'(음식과 절기 제한에 구애받지 않는 이방인 신자들)와 '약한 자'(율법적 관습을 지키려는 유대인 신자들) 사이의 긴장을 부분적으로 설명합니다.
로마에서 유대인들은 복잡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1세기 로마에는 약 4만~5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했으며, 이들은 주로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지역과 아피아 가도 인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로마에서 합법적 종교(religio licita)로 인정받아 안식일 준수와 회당 운영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지만, 황제 숭배와 신들에게 바친 고기 섭취 문제에서 유대인들은 지속적으로 긴장을 겪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처음에는 유대교 회당의 한 분파로 인식되다가 점차 분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갈등은 단순한 식탁 관습 문제를 넘어 정체성과 소속의 문제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15:7-13은 두 집단을 향한 바울의 신학적 해결책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종(διάκονος, 디아코노스)이 되어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확증하셨고, 동시에 이방인이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하셨다는 논리는 두 집단 모두를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 포함합니다. 양쪽 모두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받음으로써, 서로를 받아들이라는 명령(7절)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레코-로만 사회의 환대 문화와 후원 체계
1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환대(φιλοξενία, 필록세니아, '나그네 사랑')는 단순한 개인적 덕목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였습니다. 그레코-로만 세계의 사회 복지는 주로 후원자-피후원자(patron-client) 관계를 통해 구현되었습니다. 후원자는 식량·주거·법적 보호를 제공하고, 피후원자는 충성과 사회적 지지를 돌려주는 비대칭적 관계가 도시 생활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람페(P. Lampe)는 이 그레코-로만 사회 복지 구조가 초기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연대 윤리를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고 분석합니다.[bg1]
15:7의 '받아들이라'(προσλαμβάνεσθε, 프로슬람바네스테)는 이 문화적 맥락에서 단순한 내부 교인 화합 이상의 함의를 지닙니다. 다양한 민족·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식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지위 경계를 허무는 급진적 실천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정기적인 공동 식사(agape feast, 사랑의 잔치)를 통해 사회적 계층을 넘는 교제를 실천했으며, 이것이 이방인에게 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독특한 특성 중 하나로 비쳐졌습니다.
이방인의 지위와 경계 횡단
코헨(Shaye J. D. Cohen)은 고대 유대교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경계가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유동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bg2] 이방인이 유대교 회당에 참여하거나 유대 관습을 일부 따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God-fearers)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으며, 로마 교회의 이방인 신자들 중 일부도 이 범주에 속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유일신 신앙에 공감했지만 완전한 개종(할례·음식법 전면 준수)은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15:8-9에서 이 경계의 문제를 구속사적으로 해결합니다. 유대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약속을 확증하는 것(ἀλήθεια θεοῦ, 하나님의 진실하심)이며, 이방인에 대한 사역은 약속 밖에 있던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긍휼(ἔλεος)입니다. 이 두 길이 한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는 무효화되지 않고 초월됩니다.
이민·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설교할 때, 이 역사적 배경은 강한 울림을 가집니다. 로마의 유대인 신자들처럼, 이민자 공동체는 거주지와 본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협상해야 하며,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갈등은 문화적 적응 정도나 신앙 표현 방식의 차이로 현대 이민 교회 안에서도 재현됩니다. 바울의 해법은 양측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게 하나님의 사역의 수혜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사야 11장의 메시아 기대와 이방인 포함
15:12에서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 11:10은 이새의 뿌리가 이방 민족들의 표지(標識)로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이사야 11장은 메시아 통치와 민족들의 종말론적 순례를 담은 핵심 텍스트로 읽혔습니다. 쿰란 공동체의 문헌(특히 이사야 두루마리, 1QIsa^a)도 이 본문의 메시아적 독해를 공유했으며, 이방 민족들이 메시아의 통치 아래 포함된다는 이해가 당시 유대교 내부에도 다양하게 논의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기존의 메시아 기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ἀνιστάμενος, 아니스타메노스, '일어나시는 자')과 연결함으로써, 이방인의 구원이 새로운 계획이 아니라 오래된 약속의 성취임을 논증합니다.
구약 인용의 배경과 기능
15:9b-12에서 바울은 네 개의 구약 구절을 연속적으로 인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논증을 마무리합니다. 이 인용들은 각기 다른 구약의 주요 문헌군에서 채택되었습니다: 시편(18:49 = 삼하 22:50), 율법서(신 32:43), 시편(117:1), 그리고 예언서(사 11:10)입니다. 이 구성은 단순한 증거 제시가 아니라, 율법(Torah)·성문서(Ketuvim)·예언서(Nevi'im) 전체가 이방인의 찬양을 예언하고 있다는 포괄적 선언입니다.
첫 인용(시 18:49)에서 다윗이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이방인 가운데서 행하는 예배가 이스라엘의 왕인 그리스도와 연결된다는 함의를 가집니다. 신명기 32:43(둘째 인용)은 모세의 노래 결말부로,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도록 부름받는 장면입니다. 시편 117편(셋째 인용)은 성경에서 가장 짧은 시편으로, 모든 이방 민족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보편적 초청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 11:10은 이새의 뿌리(다윗의 후손)가 이방인들의 소망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메시아 예언으로, 이 인용 사슬 전체의 절정을 이룹니다.
이 인용 체계는 초대교회의 설교 관행과도 연결됩니다. 당시 사도들은 구약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구절들을 묶어 설교에 사용했으며(testimonium 전통),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구약 예언의 성취로 설명하는 것이 표준적 논법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의 두 집단(유대인과 이방인 신자)에게 이 구절들을 제시할 때, 두 집단 모두 자신들의 정경(구약)이 이 연합을 예언하고 있었음을 확인받게 됩니다.
참고 자료
- P. Lampe, "Social welfare in the Greco-Roman world as a background for early Christian practice," *Acta Theologica* 23 (2016). DOI:10.38140/at.v0i23.2767.
- Shaye J. D. Cohen, "Crossing the Boundary and Becoming a Jew," *Harvard Theological Review* 82 (1989): 13-33.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로마서 15:7-13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각 절은 본문(원문)·직역·원어·문법 핵심·주석적 논의·설교적 함의 다섯 블록으로 분석합니다. 인터리니어 전문은 §1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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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 환영의 명령과 목적
본문: Διὸ προσλαμβάνεσθε ἀλλήλους, καθὼς καὶ ὁ Χριστὸς προσελάβετο ὑμᾶς, εἰς δόξαν τοῦ θεοῦ.
직역: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를 받아들이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원어·문법 핵심: 핵심 동사 προσλαμβάνεσθε(프로슬람바네스테)는 현재 중간 명령법 2인칭 복수입니다. 현재형은 지속적·반복적 행위를 명령하고, 중간태(middle voice)는 받아들이는 주체가 그 행위의 영향권 안에 있음을 표시합니다 — 환영은 타자에 대한 일방 시혜가 아니라, 행위자 자신도 변화되는 상호적 관계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행위를 가리키는 προσελάβετο(프로셀라베토)는 부정과거(aorist)로, 십자가·부활의 일회적 완성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 시제 대비 — 우리에게는 현재 진행형, 그리스도에게는 과거 완료형 — 가 논증의 핵심입니다. εἰς δόξαν τοῦ θεοῦ(에이스 독산 투 테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는 목적 전치사구로, 공동체 환영의 목적을 규정합니다.
주석적 논의: 桑데이(Sanday)·헤드럼(Headlam)의 ICC 주석은 이 절을 14:1-15:13 단락의 '주제 명제'(propositio)로 분류합니다. 연결 접속사 Διό(디오, '그러므로')는 앞선 긴 논증의 논리적 귀결점을 표시합니다.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환대(φιλοξενία, 필록세니아)는 사회 규범의 근간이었습니다. 키케로(De Officiis 1.51-59)는 집에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국제 관계와 사회 통합의 기초라고 논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명령은 사회적 환대 규범을 넘어, 그리스도의 행위를 모범으로 삼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공동체 통합의 동력이 사회적 예절이 아니라 그리스도론적 확신임을 선언합니다.
설교적 함의: 이민·디아스포라 교회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문화적 갈등(예배 언어, 음식, 세대 간 가치관 차이)의 현실과 직면합니다. 7절은 이 실천의 근거를 문화적 타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먼저 하신 환영에 두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먼저 받아들이셨다는 확신이 내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동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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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 그리스도가 할례의 종이 되심
본문: λέγω γάρ Χριστὸν διάκονον γεγενῆσθαι περιτομῆς ὑπὲρ ἀληθείας θεοῦ, εἰς τὸ βεβαιῶσαι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τῶν πατέρων·
직역: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종이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증하려 하심이라."
원어·문법 핵심: λέγω γάρ(레고 가르, '내가 말하노니')는 바울이 신학적 핵심 명제를 직접 진술할 때 사용하는 강조 표현입니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 διάκονον γεγενῆσθαι(디아코논 게게네스타이, '종이 되었다')에서 γεγενῆσθαι는 완료 부정사로, 성육신이 지속적 결과를 가진 완료 사건임을 표시합니다. βεβαιῶσαι(베바이오사이, '확증하다')는 당시 법률·상업 문서에서 '계약 이행을 보증하다',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다'는 의미로 사용되던 법적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그리스도의 사역이 법적 효력을 가진 것으로 완전히 이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주석적 논의: '할례의 종'(διάκονον περιτομῆς)이라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낮아지심을 강조합니다. 빌립보서 2:7에서도 그리스도가 δοῦλος(노예)의 형태를 취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두 진술을 비교하면, 성육신의 본질이 자발적 자기 낮춤임을 알 수 있습니다. ὑπὲρ ἀληθείας θεοῦ(휘페르 알레테이아스 테우,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는 하나님의 속성이 이 사역의 동인임을 선언합니다.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신들은 변덕스럽거나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바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분임을,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역사적으로 입증한다고 선언합니다.
설교적 함의: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그 증거입니다. 청년 세대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할 때, 이 절은 가장 단단한 근거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수천 년 전의 약속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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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a —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
본문: τὰ δὲ ἔθνη ὑπὲρ ἐλέους δοξάσαι τὸν θεόν·
직역: "이방인들은 긍휼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리라."
원어·문법 핵심: ἔλεος(엘레오스, '긍휼')는 히브리어 헤세드(חֶסֶד)에 대응하는 단어로, 언약 관계에서 나오는 충성스러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감정적 동정이 아니라 관계적·언약적 의무에서 나오는 구체적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 절은 8절과 의도적 대칭을 이룹니다: 유대인 신자에게는 '진실하심'(ἀλήθεια)으로, 이방인 신자에게는 '긍휼'(ἔλεος)로 각각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납니다. δοξάσαι(독사사이)는 부정과거 부정사로 '영화롭게 하다'는 의미이며,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 확정적 결과임을 표시합니다.
주석적 논의: 8-9절의 진실하심/긍휼 대칭은 신학적으로 중요합니다.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하심'의 범주이며, 이방인을 향한 사역은 '약속 밖에 있는 자들에게까지 미치는 자유로운 긍휼'의 범주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이 열등한 방식으로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이 언약의 경계를 초월한다는 선언입니다. 헬레니즘 세계의 후원-피후원 관계(patron-client system)에서 후원자는 피후원자에게 '호의'(χάρις, 카리스)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ἔλεος는 그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이방인에게까지 일방적으로 미친다는 점에서, 그레코-로만 호혜성 원칙을 근본적으로 초월합니다.
설교적 함의: 이민자·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종종 '언약 백성' 밖에 있다는 정체성의 불안을 경험합니다. 9a절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주변부에 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 안에서 완전히 포함됨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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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b-12 — 구약 네 인용의 연쇄
본문 (요약): (9b) 시 18:49 인용 — "이방인 가운데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10) 신 32:43 인용 — "이방 민족들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시 117:1 인용 — "모든 이방 민족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12) 사 11:10 인용 —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직역: (9b) "이 때문에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께 고백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겠습니다." (10) "이방 민족들아, 그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모든 이방 민족들아, 주를 찬양하라.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12) "이새의 뿌리가 있을 것이니, 이방 민족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분이라. 이방 민족들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교회 역사에서 로마서 15:7-13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이 섹션은 로마서 15:7-13이 교회사를 통해 어떻게 해석되고 설교되었는지를 연대순으로 살핍니다. 이전 본문(로마서 15:1-6) 자료집에서 다룬 요한 크리소스톰·요한 카시아누스·존 칼빈·존 웨슬리·알렉산더 맥라렌은 이 섹션에서 제외하고, 보완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성합니다.
A. 교부 시대: 테르툴리아누스·아우구스티누스·알렉산드리아의 키릴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5-220경) 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신학자로 최초의 라틴 신학자로 평가됩니다. 그의 저작들에서 로마서 15장의 이방인 포함 주제는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 논증에서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마르키온주의자들이 구약을 거부하고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의 하나님 사이의 연속성을 부정한 것에 대항하여, 바울의 구약 인용 연쇄(9b-12절)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신학적 연속성을 입증한다고 논증했습니다. 그에게 이방인들이 구약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사실의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pat1]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는 도나투스 논쟁(4세기 후반-5세기 초)의 한복판에서 로마서 15:7의 '서로 받아들이라'는 명령을 활용했습니다. 도나투스파는 박해 시대에 배교한 성직자에게 세례를 받은 신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교회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항하여 바울의 명령을 교회 통일성의 신학적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죄인을 먼저 받아들이셨다면, 교회도 연약한 지체를 배제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지입니다. 그는 또한 로마서 15:8을 이스라엘 예정에 대한 그의 예정론(predestination) 발전에 중요한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유대인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하나님의 진실하심'(ἀλήθεια θεοῦ)을 위한 것이라는 선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언약적 신실하심이 결합된 신학적 원리를 발견했습니다.[pat2]
알렉산드리아의 키릴(Cyril of Alexandria, 376-444) 은 네스토리우스 논쟁(5세기 초)의 핵심 인물로, 그리스도의 한 인격(person)에 두 본성(신성·인성)이 통합됨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로마서 15:8의 '할례의 종'이라는 표현을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종의 형태를 취하셨다는 것은 두 본성의 통합을 보여주는 성육신의 역설이며, 바로 이 역설 때문에 그리스도가 유대인과 이방인 양쪽을 모두 섬길 수 있었다고 키릴은 논했습니다. 그에게 15:13의 '소망의 하나님'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충만함을 가리켰으며, 기쁨·평강·소망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만 온전히 경험되는 것이었습니다.[pat3]
참고 자료
- Tertullian, in *Ante-Nicene Fathers*, Series 1, Vol. 3 (Latin Christianity: Its Founder, Tertullian). PD.
- Augustine of Hippo, *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1, Vol. 8. PD.
- Cyril of Alexandria, *A Commentary upon the Gospel according to S. Luke*, Part II.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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