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6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로마서 15:1-6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로마서 15:1-6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로마 교회의 사회적 구성: 유대인과 이방인

로마서 15장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로마 기독교 공동체의 복잡한 구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1세기 로마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으며, 기원전 1세기부터 여러 회당이 도시 곳곳에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이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서기 49년경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칙령을 내렸고, 이는 유대인 기독교인들도 로마를 떠나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이 결과 이방인 기독교인들만 남은 로마 교회는 독자적인 구조와 신학적 정체성을 발전시켰습니다. 클라우디우스 사후(서기 54년)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귀환하면서, 이미 이방인 주도로 재편된 공동체와의 갈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했습니다. 14-15장의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갈등—음식 규례와 절기 준수를 둘러싼—은 이 사회적·신학적 긴장을 배경으로 이해됩니다.[bg1]

유대인 신자들은 코셔(정결) 음식법과 안식일 준수, 절기 달력에 따른 삶의 패턴을 지켜 왔습니다. 이들에게 율법 준수는 정체성과 공동체 소속의 핵심이었습니다. 반면 이방인 신자들은 이런 규례를 구약의 그림자로 보며 자유롭게 사는 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긴장을 단순히 신학적 논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δυνατοί)가 '약한 자'(ἀδύνατοι)를 짊어지는 윤리로 전환합니다.

그레코-로만 사회의 '강자-약자' 개념

고대 그레코-로만 도덕 철학은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광범위하게 논의했습니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Gorgias)는 수사학의 역할을 논하면서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중심에 둡니다—강자가 권력을 통해 약자를 압도하는 경향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덕이 타인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고대 그리스 도덕론은 강함(δύναμις)을 자기 이익의 도구가 아닌 타인을 위한 책임으로 이해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로마 사회에서 강자-약자 관계의 가장 구조적인 표현은 후원-피후원(patronus-cliens) 체계였습니다. 상류층 후원자(patronus)는 음식·법적 보호·사회적 지위를 피후원자(clientes)에게 제공하고, 피후원자는 후원자의 명예와 정치적 지지를 반대급부로 제공했습니다. 이 체계는 강자의 의무를 사회적으로 제도화했지만, 그 핵심 동기는 상호 이익과 명예 획득이었습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모델은 이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짊어지는 것은 사회적 이익이 아닌 그리스도의 선례에 근거합니다.[bg2]

사회 복지와 공동체 부조(扶助) 관행

P. 람페(Lampe)의 연구는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사회 복지 실천의 다층적 구조를 분석합니다. 건강 관리, 노인·과부·고아 돌봄, 후원 체계를 통한 실업 구제, 곡식 배급 등이 국가와 사적 영역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체계는 대부분 시민권 여부와 사회적 지위에 연동된 선택적 복지였습니다. 이에 비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신분·민족·성별의 경계를 넘어 상호부조를 실천했습니다.[bg3]

사도행전 4:32-35의 예루살렘 공동체가 서로의 필요를 채운 것, 고린도후서 8-9장에서 바울이 예루살렘 빈민 구제를 위한 헌금을 독려한 것, 그리고 로마서 15:26-27에서 이방인 교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과 나눈 물질적 교제가 이를 보여줍니다. 15:1-6의 '약한 자의 약점을 짊어지라'는 권면은 이 더 광범위한 상호 부조 전통의 신학적 기초에 해당합니다.

회당 예배와 시편 낭독 전통

3절에서 바울이 인용하는 시편 69:9("당신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나이다")은 단순한 성경 인증 구절이 아닙니다. 시편 69편은 당대 유대인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 모두에서 메시아적 수난 시편으로 이해되었습니다. 4절의 "무릇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는 해석학적 원리는 당시 회당과 초기 기독교 예배에서 성경을 공동으로 낭독하고 적용하는 관행을 반영합니다.

1세기 회당 예배에서 토라와 예언서(하프타라)를 낭독한 뒤 설교를 통해 현재 공동체에 적용하는 패턴은 기독교 예배에서도 계승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전통 위에서 시편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예언으로 읽으면서(3절), 성경의 기능을 '인내와 위로와 소망'(4절)으로 규정하는 해석학적 선언을 내놓습니다.[bg1]

로마 교회의 예배 관행과 한마음(ὁμοθυμαδόν)

6절의 '한마음으로 한 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은 공동 예배의 구체적 상을 가리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혼합된 로마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것은 신학적 과제이기 이전에 사회적·문화적 도전이었습니다. 음식을 함께 먹는 것(식탁 교제)과 함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것은 서로 다른 관습과 전통을 가진 집단이 실제로 하나가 됨을 요구했습니다.

타키투스(Tacitus)는 로마의 유대인들이 다른 집단과 구별된 관습을 철저히 유지한다고 기록합니다—"그들은 자신들끼리만 상호 충성심이 있고, 다른 민족에 대해서는 적대적 증오가 있다"(The Histories V).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바울이 로마 신자들에게 '한마음으로' 예배하라고 권하는 것은, 당시 사회의 민족적 장벽을 복음의 공동체 윤리로 극복하라는 급진적 호소였습니다.

참고 자료

  1. Jean-Claude Loba-Mkole, "Interculturality in peace-building and mutual edification (Rm 14:19)," *HTS Teologiese Studies / Theological Studies* 75 (2019). DOI:10.4102/hts.v75i4.5259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2. Mireia Ryšková, "The Reception of the Book of Isaiah in Paul's Letter to the Romans," *Acta Universitatis Carolinae Theologica* (2020). DOI:10.14712/23363398.2020.8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3. P. Lampe, "Social welfare in the Greco-Roman world as a background for early Christian practice," *Acta Theologica* (2016). DOI:10.38140/at.v0i23.2767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로마서 15:1-6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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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 강한 자의 의무: 자기 기쁨을 넘어 짊어짐으로

본문: Ὀφείλομεν δὲ ἡμεῖς οἱ δυνατοὶ τὰ ἀσθενήματα τῶν ἀδυνάτων βαστάζειν καὶ μὴ ἑαυτοῖς ἀρέσκειν.

직역: 그런데 우리 곧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의 연약함들을 짊어지고,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ὀφείλομεν (현재능동직설 1복수, ὀφείλω) — 도덕적 채무·의무를 가리키는 동사. 단순 권고가 아닌 '빚처럼 갚아야 할 책임'의 뉘앙스를 담습니다. - NT 용례: 신약 전체에서 빚·채무(마 18:28)와 도덕적 의무(롬 13:8 "서로 사랑의 빚 외에는") 양쪽 의미로 사용됩니다. 롬 13:8의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명령 직후, 유일하게 허용되는 채무로 '사랑의 빚'이 제시된 구도가 15:1과 직결됩니다. - LXX/OT 용례: LXX에서 ὀφείλω는 금전 채무와 죄적 채무를 모두 포괄하며, 이스라엘의 언약적 책임을 표현하는 데도 쓰인다(신 24:10-11).

- δυνατοί / ἀδύνατοι (형용사 복수 남성 주격 / 속격) — 로마서에서 14-15장 논의의 두 축. δυνατοί는 단순한 신앙 성숙도가 아니라, 그레코-로만 맥락에서 '권력·능력을 가진 자'라는 사회적 함의도 겹쳐 있습니다. ἀδύνατοι는 '불가능한 것'과 '약한 자' 두 의미를 동시에 품습니다.

- βαστάζειν (현재 능동 부정사, βαστάζω) — '짊어지다·운반하다'의 현재 부정사로, 지속적 행위를 암시합니다. 갈 6:2("서로의 짐을 지라")의 βαστάζετε와 동근이며, 십자가를 진다는 은유(눅 14:27)와도 연결됩니다. 단순한 '용납'이 아닌 무거운 짐을 직접 들어 옮기는 이미지다. - NT 용례: 신약에서 βαστάζω는 십자가 짐(요 19:17), 사람 이름 전달(행 9:15 "내 이름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그릇"), 공동체의 짐(갈 6:2) 등에 사용되며, 항상 자신을 낮추는 섬김의 맥락을 동반합니다.

- ἀρέσκειν (현재 능동 부정사, ἀρέσκω) — '기쁘게 하다' 동사. 부정형(μὴ ἑαυτοῖς ἀρέσκειν)으로 등장해 이 절의 핵심 금지 명령을 이룹니다. 다음 2절과 3절이 이 동사의 긍정형(τῷ πλησίον ἀρεσκέτω, Χριστὸς οὐχ ἑαυτῷ ἤρεσεν)으로 정반합 구도를 형성합니다.

주석적 논의: 바울은 '우리'(ἡμεῖς)를 강조해 자신을 강한 자 집단에 포함시키며 자기 고백적 권면을 제시합니다. ἀσθενήματα(복수)는 14장에 열거된 다양한 연약함들—음식·절기·신앙적 불확실함—을 포괄하며, βαστάζειν의 현재형은 지속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짊어짐을 요청합니다. 자기 기쁨의 거부(μὴ ἑαυτοῖς ἀρέσκειν)는 ὀφείλομεν의 내용—의무의 반면(反面)이며, 강한 자의 자기-기쁨은 공동체 분열의 원인 구조였습니다.

설교적 함의: 신앙의 성숙은 자유와 권리의 확대가 아니라 그 자유를 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캠퍼스와 청년 공동체에서 '나의 신앙 스타일'이 공동체의 약자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합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기쁨을 내려놓는 순간에 비로소 바울이 말하는 공동체의 유일한 의무에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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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 이웃을 기쁘게 하라: 덕을 세우는 선

본문: ἕκαστος ἡμῶν τῷ πλησίον ἀρεσκέτω εἰς τὸ ἀγαθὸν πρὸς οἰκοδομήν.

직역: 우리 각자는 선을 위하여, 덕 세움을 향하여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원어·문법 핵심:

- ἀρεσκέτω (현재 능동 명령 3단수, ἀρέσκω) — 3인칭 명령법 '기쁘게 하라'는 '각자'(ἕκαστος)에 걸립니다. 1절의 자기 기쁨 거부(μὴ ἑαυτοῖς ἀρέσκειν)가 역설적으로 이웃 기쁘게 하기(τῷ πλησίον ἀρεσκέτω)로 전환되는 구조. 바울이 유일하게 허용하는 ἀρέσκω의 방향은 자기가 아닌 이웃입니다.

- τῷ πλησίον (여격 단수) — '이웃에게'. LXX에서 πλησίον은 히브리어 רֵעַ(레아, 동반자·이웃)의 번역어로, 레위기 19:18의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에서 기원합니다. 롬 13:9-10에서 바울이 사랑의 율법 요약으로 인용한 바로 그 개념이 여기서 다시 등장합니다. - LXX/OT 용례: 레 19:18에서 LXX는 ἀγαπήσεις τὸν πλησίον σου ὡς σεαυτόν으로 번역합니다. 15:2의 τῷ πλησίον ἀρεσκέτω는 이 명령을 공동체 상호 세움의 맥락으로 구체화한 셈입니다.

- οἰκοδομή (명사 단수 여격, '건축·세움') — 바울 서신에서 교회 공동체의 상호 강화를 가리키는 기술 용어(고전 14:3-5, 고전 14:12, 엡 4:12, 4:29). 건물을 세우는 물리적 은유로, 한 벽돌이 다른 벽돌을 지탱하는 구조를 암시합니다. - NT 용례: 오이코도메(οἰκοδομή)는 바울 서신 전체에 걸쳐 공동체의 덕 세움 과정을 가리키며, 특히 고전 14장의 방언과 예언 비교(14:4-5)에서 강한 대비로 부각됩니다. '혼자의 덕'이 아닌 '공동체의 성장'을 가리키는 것이 이 단어의 일관된 사용법입니다.

주석적 논의: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명령은 εἰς τὸ ἀγαθὸν('선을 위하여')과 πρὸς οἰκοδομήν('세움을 향하여')이라는 이중 목적 어구로 규정되어 아첨이나 단순 친절과 구별됩니다. πλησίον은 레위기와 예수의 명령에 뿌리 둔 신앙적 이웃 개념으로, 이 절은 '강자의 자기절제'(1절)에서 '이웃 세움 지향'(2절)으로의 전환을 완성합니다.

설교적 함의: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선과 성장을 향해 방향이 정해진 행동입니다. 청년 공동체 안에서의 배려는 때로 불편한 진실을 나누는 것도 포함하지만, 언제나 상대를 세우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나는 공동체를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공동체를 내 기호에 맞게 조각하고 있는가" — 이것이 이 절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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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 그리스도의 선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심

본문: καὶ γὰρ ὁ Χριστὸς οὐχ ἑαυτῷ ἤρεσεν, ἀλλά·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Οἱ ὀνειδισμοὶ τῶν ὀνειδιζόντων σε ἐπέπεσαν ἐπ' ἐμέ.

직역: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기록된 바와 같이, "당신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οὐχ ἑαυτῷ ἤρεσεν (ἀρέσκω 부정과거 능동 3단수 + 재귀 여격) —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1절의 μὴ ἑαυτοῖς ἀρέσκειν의 동사가 이제 그리스도에게 적용됩니다. 바울은 공동체 윤리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역사적 행위에 둠으로써, 도덕 훈계가 아니라 신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 γέγραπται (γράφω 완료 수동 3단수) — '기록되어 있다'의 완료 수동형. 신약에서 구약 인용의 표준 도입 공식입니다. 완료 시제는 과거의 기록이 현재까지 유효함을 강조합니다.

- ὀνειδισμός / ὀνειδίζω (명사 복수 주격 / 분사 복수 속격) — '비방·수치·모욕'. ὀνειδίζω는 시 69:9 LXX의 'ὀνειδισμοί' 직접 인용입니다. 신약에서 이 어근은 히 11:26(그리스도의 수치), 롬 15:3, 히 10:33, 약 1:5 등에서 박해·수난의 맥락에 쓰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로마서 15:1-6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 본 섹션은 초기 교회(1-5세기)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했는지 제시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4-5세기 (금구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로마서 15:1-6을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 윤리의 절정으로 읽었습니다. 그는 로마서 강해 설교(호밀리아 XXVIII)에서 바울이 로마 교회의 분열 상황을 단순한 행동 규범이 아닌 그리스도의 위로 사역에 뿌리박은 원리로 해결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크리소스톰에 따르면 바울은 이 단락 전체에서 하나의 주제를 붙든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크신 일을 행하셨는가. "그는 여전히 같은 주제를 붙들면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관심을 말하며,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Again, he is speaking of Christ's concern for us, still holding to the same topic, and showing what great things He hath done."[pat1]

크리소스톰의 해석에서 공동체 윤리의 근거는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짊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비방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신 행위—시 69편의 성취—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3절의 시편 인용을 그리스도의 대속과 직결시키는 독법으로, 이후 로마서 수용사의 해석 방향을 결정적으로 형성했습니다.

요한 카시아누스(John Cassian) / 5세기 (수도원 전통)

갈리아의 수도원 신학자 요한 카시아누스는 사막 교부들의 전통을 서방 교회에 전달하면서, 로마서 15장의 '강함'과 '약함'의 역설을 수도원 공동체 수련의 맥락에서 해석했습니다. 그에게 인내로 이웃을 감내하는 일은 자기 극복의 훈련이자 공동체 덕목의 진수였습니다. "이웃을 감내함으로써 강하고 활기차다는 성품을 얻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와 다르다." — "putting up with his neighbour gains the character of being strong and vigorous, while the latter gain."[pat2] 카시아누스는 강한 자의 약자 포용을 영적 싸움에서 자기 자신을 이기는 행위로 읽음으로써, 이 본문에 수도원적 해석 층위를 더했습니다. 이 관점은 중세 수도 공동체에서 공동생활 규범의 성경적 근거로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해석의 흐름 — 초기 교회 전통의 형성

교부 시대의 로마서 15:1-6 수용에는 두 흐름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크리소스톰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 중심적 독법으로, 강한 자의 의무를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에서 출발시키는 흐름입니다. 다른 하나는 카시아누스로 대표되는 공동체 실천 중심 독법으로, 이웃을 감내하는 훈련을 영적 성장의 경로로 해석하는 흐름입니다. 두 흐름은 오늘날에도 이 본문의 두 가지 설교 가능성을 열어준다—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출발점으로 삼는 신학적 설교,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구체적 수련을 강조하는 실천적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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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존 칼빈은 『로마서 주석』(1539)에서 로마서 15:1-2를 공동체 윤리의 핵심으로 읽으면서, 강한 자의 의무가 단순한 양보가 아닌 능동적 짊어짐임을 강조합니다. 칼빈에 따르면 바울의 명령은 약자를 용인하거나 참는 소극적 태도를 넘어, 그들의 짐을 직접 들어 함께 걷는 적극적 참여를 요청합니다. 1절의 ὀφείλομεν('의무가 있다')을 칼빈은 도덕적 채무(moral debt)의 언어로 해석하며, 이 의무는 자기 의지의 선택이 아니라 신자의 부르심에 내재한 책임이라고 주장합니다.

칼빈은 4절("무릇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에서 구약 성경의 현재적 기능을 강조합니다. 그에게 성경은 먼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성도가 인내하고 위로받으며 소망 안에 서 있도록 현재에도 작동하는 수단입니다. "인내와 위로를 통한 소망"은 칼빈에게 복음 선포가 낳아야 할 공동체의 실질적 결과다.[rh1]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감리교 부흥)

존 웨슬리는 1765년경 로마서 15:2를 본문으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함에 대하여"(On Pleasing All Men)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습니다. 이 설교는 ἀρέσκω('기쁘게 하다')의 의미를 단순한 인간 관계의 친절을 넘어 공동체 세움(edification)의 방향성으로 해석합니다. 웨슬리에게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은 상대의 모든 욕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의 진정한 유익을 위해 선택적으로 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에 규정된 의무는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며, 하나님의 신탁을 위탁받은 모든 이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 "Undoubtedly the duty here prescribed is incumbent on all mankind; at least on every one of those to whom are entrusted the oracles of God."[rh2]

웨슬리의 로마서 강해(1755)에서도 1절의 강한 자 개념을 "더 명확한 판단력을 가진 자, 이 문제들에서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로운 자"로 정의하며, 강함이 특권이 아닌 책임의 기초임을 설교자 입장에서 명료하게 제시합니다.

알렉산더 맥라렌(Alexander MacLaren) / 19세기 (침례교 설교자)

스코틀랜드 출신의 알렉산더 맥라렌은 로마서 14-15장의 설교 연속에서 로마서 15:4를 한 폭의 지리적 이미지로 풀어냈습니다. 그는 인내와 위로가 소망이라는 하나의 강을 이루는 두 지류에 비유하며, "스위스의 한 강은 두 지류가 합쳐져 흐른다"고 말한다: "There is a river in Switzerland fed by two uniting streams." 두 지류—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시는 인내와 위로—가 하나의 소망이라는 강을 이룬다는 이 이미지는, 성경 독서가 어떻게 신자의 내면 자원을 공급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표현합니다.[rh3]

맥라렌은 4절과 13절을 연결하면서 소망(ἐλπίς)을 로마서 15장 전체의 궁극 열매로 보았습니다. 강한 자의 자기 부인과 약한 자 세움이 목표로 삼는 공동체는 결국 소망이 충만한 예배 공동체라는 것—이 주석은 6절의 공동 예배 호소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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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참고 자료

  1. John Chrysostom, *Homilies on Acts and Romans*, Homily XXVIII (NPNF¹, vol. 11).
  2. John Cassia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NPNF).
  3.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1539).
  4. John Wesley,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Sermon 100 [102], "On Pleasing All Men."
  5. Alexander MacLaren, *Expositions of Holy Scripture: Romans and 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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