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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5-15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로마서 10:5-15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로마서 10:5-15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스라엘의 열심과 "자기 의" — 제2성전기 유대교의 종교적 정황

로마서 10장은 9장 말미의 논증을 이어받아 이스라엘의 불신앙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바울은 곧바로 냉담한 논쟁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동족을 향한 간절한 기도로 문을 엽니다. 이 어조은 본문을 읽는 회중에게 중요한 배경 정보를 줍니다 — 바울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지적하는 것은 적대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족의 구원을 향한 절박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칼뱅(John Calvin)은 이 대목을 주석하면서, 바울이 유대인의 배척이라는 날카로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종 그들을 향한 선의를 증언하고 있으며, 이는 그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에게는 배교자로, 이방인에게는 율법에 대한 적대자로 오해받지 않기 위한 목회적 배려이기도 했다고 짚습니다.[bg1]

이 정황 속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상태를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10:2). 이는 제2성전기 유대교의 신앙 실천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배경 사실입니다. 당대 유대교, 특히 바리새적 경건의 흐름은 토라에 대한 뜨거운 헌신과 엄격한 실천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바울이 문제 삼는 지점은 그 열심 자체가 아니라, 그 열심이 향한 방향입니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의를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10:3). 칼뱅은 이를 두고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 함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다"는 구절에 주목하며, 문제의 본질을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의의 원천을 자기 자신에게 두려는 근본적 방향 착오로 읽어냅니다.[bg1] 이는 이어지는 10:5-15의 논증 —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대조하는 논증 — 이 이스라엘 역사 속 실제 종교적 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성경 인용 관습 — 신명기 30장과 유대 해석 전통

10:6-8에서 바울은 신명기 30:12-14을 인용하며 논증의 절정에 이릅니다. 이 인용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신명기 본문 자체의 원래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마이어(Heinrich August Wilhelm Meyer)가 지적하듯, 신명기 30장에서 모세가 본래 말하고자 한 바는 하나님의 계명이 이스라엘에게 실천 불가능할 만큼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 계명은 하늘에 있어 올라가야 얻을 수 있는 것도, 바다 건너에 있어 항해해 가져와야 하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bg2] 이는 원래 율법의 접근 가능성을 강조하는 본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본문을 가져와 유형론적으로 재적용합니다 — 신명기가 율법의 가까움을 말한 것처럼, 이제는 믿음의 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이어는 이러한 성경 재적용 방식이 바울에게 낯선 기법이 아니라, 그가 다른 곳에서도 사용하는 "미드라쉬 양식"의 주해 관습이라고 지적하며, 로마서 9:8과 갈라디아서 3:16, 4:23-24을 같은 계열의 예로 듭니다.[bg2] 이는 제2성전기 유대 해석 전통에서 널리 통용되던 방식으로, 한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예표적·유형론적 의미를 찾아 현재의 논증에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이어는 또한 칠십인역과 필론의 전통이 신명기 본문에 "네 손에 있어"라는 구절을 덧붙였다는 점, 그리고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는 동일한 수사적 구조가 바룩서 3:29-30에서도 지혜의 접근 불가능성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을 함께 지적합니다 — 이는 이 표현이 유대 문헌 안에서 이미 하나의 정형화된 수사적 관용구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바울이 이를 정반대 방향(믿음의 의의 가까움)으로 뒤집어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bg2]

이러한 인용 관습에 대한 후대의 이해도 이 배경을 뒷받침합니다. 마이어가 인용하는 테오도레투스(Theodoret)는 이 대목에서 바울이 모세를 통해 율법과 은혜의 차이를 가르치고 있다고 보았고, 에라스무스(Erasmus)는 그의 의역에서 "모세 자신이 이미 두 의(義)의 형상을 그려 놓았다"(utriusque justitiae imaginem Moses ipse depinxit)고 요약했습니다.[bg2] 즉 바울의 신명기 인용은 즉흥적 전용이 아니라, 모세오경 자체 안에 내포된 이중적 의미를 유대 해석 전통의 방법론으로 끌어낸 것으로 오랫동안 이해되어 왔습니다. 이 관습을 알면 10:5-15에서 바울이 왜 신명기·이사야·요엘의 여러 본문을 촘촘히 엮어 하나의 논증으로 짜 나가는지 — 이것이 자의적 짜깁기가 아니라 당대 유대 회당과 랍비 학교에서 통용되던 정당한 주해 기법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배경의 접점 — 10:5-15을 읽는 회중을 위한 정리

위의 두 배경은 서로 분리된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문제는 열심의 결핍이 아니라 그 열심이 향한 방향의 문제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의를 받는 대신, 자신의 실천으로 의를 쌓으려 한 것입니다. 둘째, 바울이 10:5-15에서 펼치는 논증은 이 방향 착오를 바로잡기 위해, 이스라엘 자신의 경전인 신명기를 새롭게 읽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모세가 "이 계명이 네게서 멀지 아니하다"고 말했던 바로 그 본문을 근거로,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가 "네 입에, 네 마음에" 이미 가까이 와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유대 청중에게 낯선 논법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해석 전통 — 한 본문을 유형론적으로 재적용해 현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 — 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면 10:5-15이 단순히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추상적으로 대조하는 신학 명제의 나열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실제 종교적 정황과 그들 자신의 성경 해석 관습을 정교하게 겨냥한 논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동족을 밖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전과 그들의 해석 방법을 안에서부터 사용해 그리스도께로 이끌고자 합니다. 이는 오늘 본문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 복음은 유대인의 신앙 전통과 무관하게 외부에서 부과된 낯선 메시지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경전이 이미 가리키고 있던 성취라는 것입니다.

참고 자료

  1. John Calvin (tr. John Owen), *Commentaries on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on Rom 10:1-4.
  2. Heinrich August Wilhelm Meyer, *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Epistle to the Romans*, on Rom 10:6-8.

로마서 10:5-15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10:5

본문: Μωϋσῆς γὰρ γράφει ὅτι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τὴν ἐκ τοῦ νόμου ὁ ποιήσας ἄνθρωπος ζήσεται ἐν αὐτῇ.

직역: 모세는 기록하되, 율법에서 난 그 의를 행한 자는 그것으로 살리라 하였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관사를 겹쳐 쓴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τὴν ἐκ τοῦ νόμου는 6절의 ἐκ πίστεως와 짝을 이루는 대조 구문이며, ὁ ποιήσας(부정과거 분사)가 행함을 ζήσεται(미래 중간태)의 조건으로 못박습니다. 레위기 18:5의 칠십인역 어법을 그대로 이은 인용입니다.

주석적 논의: 언약신학적으로 이 절은 행위 언약의 완전한 순종 요구를 드러내어, 인간이 스스로는 그 기준에 이를 수 없음을 폭로하는 율법의 기능을 보여줍니다.

설교적 함의: 율법의 의는 완전한 행함을 요구해 우리의 무능력을 드러냅니다 — "더 잘해야 인정받는다"는 압박에 갇힌 이들에게, 행함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내려놓으라는 초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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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본문: ἡ δὲ ἐκ πίστεως δικαιοσύνη οὕτως λέγει· Μὴ εἴπῃς ἐν τῇ καρδίᾳ σου· Τίς ἀναβήσεται εἰς τὸν οὐρανόν; τοῦτ᾽ ἔστιν Χριστὸν καταγαγεῖν·

직역: 그러나 믿음에서 난 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 네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말하지 말라(이는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καταγαγεῖν(부정과거 부정사, "끌어내리는 것")은 신명기 30:12을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재적용한 것으로, ἐκ πίστεως δικαιοσύνη는 5절의 ἐκ τοῦ νόμου와 정확히 대칭을 이룹니다.

주석적 논의: 이 재적용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인간이 스스로 이르러야 할 것을 이미 값없이 가져다주신 사건임을 보여주며, 구원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확증합니다.

설교적 함의: 그리스도는 우리가 애써 올라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내려오신 분이니,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자책 대신 이미 이루어진 은혜를 붙들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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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본문: ἤ· Τίς καταβήσεται εἰς τὴν ἄβυσσον; τοῦτ᾽ ἔστιν Χριστὸν ἐκ νεκρῶν ἀναγαγεῖν.

직역: 혹은 "누가 무저갱으로 내려가겠느냐" 말하지 말라(이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원어·문법 핵심: ἄβυσσος는 로마서 안에서는 이 절에만 나타나는 예외적 용례이며, ἀναγαγεῖν(부정과거 부정사)은 6절의 καταγαγεῖν과 짝을 이루어 부활을 가리킵니다.

주석적 논의: 성육신-부활의 이 대구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결코 이룰 수 없는 두 과업을 대신 완결하셨음을 보여주어, 믿음의 의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함을 확증합니다.

설교적 함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심연에서 우리를 대신 건져 올리신 완결된 사건이니, 상실과 무력감 앞에서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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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본문: ἀλλὰ τί λέγει; Ἐγγύς σου τὸ ῥῆμά ἐστιν, ἐν τῷ στόματί σου καὶ ἐν τῇ καρδίᾳ σου, τοῦτ᾽ ἔστιν τὸ ῥῆμα τῆς πίστεως ὃ κηρύσσομεν.

직역: 그러나 무엇을 말하는가? 그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과 마음에 있으니, 이는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ἐγγύς는 신명기 30:14의 접근 가능성 어법을 그대로 이으며, τὸ ῥῆμα τῆς πίστεως(목적격적 속격)는 그 말씀을 사도적 선포의 내용으로 구체화합니다.

주석적 논의: 구원의 방편이 먼 곳이 아니라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이미 가까이 와 있다는 이 선언은, 믿음이 인간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 자기 계시에 대한 반응임을 보여줍니다.

설교적 함의: 구원의 말씀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선포되는 자리에서 받아들이라는 초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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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본문: ὅτι ἐὰν ὁμολογήσῃς ἐν τῷ στόματί σου κύριον Ἰησοῦν, καὶ πιστεύσῃς ἐν τῇ καρδίᾳ σου ὅτι ὁ θεὸς αὐτὸν ἤγειρεν ἐκ νεκρῶν, σωθήσῃ·

직역: 네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원어·문법 핵심: ὁμολογήσῃς와 πιστεύσῃς(부정과거 능동 가정법)가 ἐάν 조건절로 결합되고, σωθήσῃ(미래 수동)는 구원이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건임을 문법으로 보여줍니다.

주석적 논의: 마음의 믿음과 입의 고백이 하나의 사건으로 결합됨은, 구원이 인간의 자기 개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향한 전적 신뢰와 승복에 근거함을 뜻합니다.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κύριος(주)는 황제 숭배와 결부된 정치적 함의를 지닌 칭호이기도 했으므로,[gr1]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이 고백은 사적 경건 이상의 공적 충성 선언이었습니다.

설교적 함의: 마음으로만 믿으면 된다는 태도에, 본문은 입의 공적 고백까지 함께 부름받았음을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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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본문: καρδίᾳ γὰρ πιστεύεται εἰς δικαιοσύνην, στόματι δὲ ὁμολογεῖται εἰς σωτηρίαν·

직역: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원어·문법 핵심: 9절의 순서를 뒤집는 교차 배열이며, σωτηρία는 εἰς δικαιοσύνην과 짝을 이뤄 믿음과 고백 각각의 지향점을 명시합니다.

주석적 논의: 믿음과 고백이 순서를 바꾸어도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심어 주신 믿음이 필연적으로 산출하는 하나의 열매임을 보여줍니다.

설교적 함의: 참된 믿음은 반드시 입의 고백으로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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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본문: λέγει γὰρ ἡ γραφή·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ἐπ᾽ αὐτῷ οὐ καταισχυνθήσεται.

직역: 성경이 말하되,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어·문법 핵심: 이사야 28:16(9:33에서 이미 인용)을 다시 가져온 것으로, καταισχύνω는 미래 수동태로 그 확실성을 표현합니다.

주석적 논의: 믿는 자의 확신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 자체에 근거한다는 것이 언약신학이 강조하는 견고함입니다.

설교적 함의: 오늘의 불안정한 형편이 아니라 이 약속의 말씀을 신앙의 기초로 삼으라고 권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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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본문: οὐ γάρ ἐστιν διαστολὴ Ἰουδαίου τε καὶ Ἕλληνος, ὁ γὰρ αὐτὸς κύριος πάντων, πλουτῶν εἰς πάντας τοὺς ἐπικαλουμένους αὐτόν·

직역: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차별이 없으니, 동일한 주께서 모든 이의 주가 되사 부르는 모든 자에게 부요하시다.

원어·문법 핵심: διαστολή는 신약에서 드문 어휘이고, πλουτῶν(현재 분사)은 부르는 자를 향한 은혜의 지속성을 나타냅니다.

주석적 논의: 유대인과 헬라인의 구별이 사라진다는 선언은, 구원이 혈통이나 신분이 아니라 오직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에 근거함을 보여주는 은혜 언약의 보편성을 확증합니다.

설교적 함의: 은혜의 풍성함은 교회의 크기나 조건이 아니라 부르시는 주님의 성품에 달려 있음을 선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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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본문: Πᾶς γὰρ ὃς ἂν ἐπικαλέσηται τὸ ὄνομα κυρίου σωθήσεται.

직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1. Cornelius Tacitus, *The Annals* (tr. Alfred John Church) — 로마 제국 통치자에 대한 신적·정치적 존숭의 사회적 정황을 보여주는 그레코-로만 1차 문헌.

교회 역사에서 로마서 10:5-15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서 10:5-15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선포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살핍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4세기 (교부 시대)

크리소스톰은 로마서 연속 강해 열일곱 번째 강론(Homily XVII)의 서두에서 바울의 목회적 어조를 부각합니다. 그는 1절 "내 마음에 원하는 바"가 형벌 면제가 아니라 구원 자체를 향한 것임을 짚으며, 바울이 동족을 책망하면서도 결코 적의에서 말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10장의 논박이 냉담한 신학 논쟁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목회적 권면임을 초기 교회가 이미 읽어냈음을 보여줍니다.

> "그가 그들의 구원을 바랄 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기도까지 한다면, 동시에 그들을 미워하고 혐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it is not likely that the same person should desire their salvation, and not desire it only, but even pray for it, and yet should also hate them, and feel aversion to them."[rh1]

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칼빈은 5-10절을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의 정면 대립으로 읽되, 바울이 모세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오경 안에 담긴 두 의(義)의 구조를 끌어낼 뿐이라고 봅니다. 6-7절의 "하늘에 오름"과 "무저갱에 내려감"은 그리스도를 인간의 노력으로 데려오려는 헛된 시도이며, 믿음의 의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취되어 값없이 선포된 것입니다.

> "모세는 율법에서 난 의를 이같이 말하되 이를 행하는 자는 그것들로 인하여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에서 난 의는 이같이 말한다 —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즉 그리스도를 위에서 모셔 내리려 하지 말라." — "Moses describeth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That the man which doeth those things shall live by them. Bu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faith speaketh on this wise, Say not in thine heart, Who shall ascend into heaven? that is, to bring Christ down from above."[rh2]

매튜 헨리(Matthew Henry) / 17세기 (청교도)

헨리는 믿음의 의가 하늘·무저갱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약속 안의 그리스도, 말씀 안에 제시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일이라 압축하며, 이신칭의가 모든 사람의 마음 앞에 이미 제시된 평이한 교리임을 역설합니다. 동시에 참된 믿음은 반드시 마음을 성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여, 알맹이 없는 고백을 경계합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그를 먹고 산다고 말할 때, 이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나 무저갱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약속 안의 그리스도, 말씀 안에 제시된 그리스도를 뜻한다." — "it is not Christ in heaven, nor Christ in the deep, that we mean; but Christ in the promise, Christ offered in the word."[rh3]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웨슬리는 설교 6번 "믿음의 의"(The Righteousness of Faith)에서 이 본문을 설교 본문으로 삼아, 바울이 모세의 언약과 그리스도의 언약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을 대조한다고 논증합니다. 은혜 언약은 유대 경륜 전후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모든 시대에 사람과 맺어 오신 동일한 언약이라고 강조합니다.

> "사도는 여기서 모세가 준 언약을 그리스도가 주신 언약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이 여기서 행위 언약과 대조하는 것은 은혜의 언약이며, 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시대에 사람들과 맺어 오신 것이다." — "The Apostle does not here oppose the covenant given by Moses, to the covenant given by Christ... it is the covenant of grace, which God, through Christ, hath established with men in all ages... which St. Paul here opposes to the covenant of works."[rh4]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스펄전은 9-10절을 별도의 주일 설교로 다루며, "입으로 시인함"이 마음의 믿음 없이는 공허하다고 경고합니다. 믿음 없는 고백을 재고 없이 신용만으로 장사하는 사기꾼에 빗대어, 참된 고백은 반드시 마음의 실제 믿음에서 흘러나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 "마음의 믿음이 없는 곳에는 입의 시인도 있을 수 없다. 갖지 않은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재고도 자본도 없이 오직 신용만으로 큰 장사를 벌이는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 "There must be no confession with the mouth where there is not a believing with the heart. To profess a faith which you have not is to make yourself a deceptive trader who pretends to be carrying on a very large business, while he has no stock, no capital."[rh5]

수용사 흐름

다섯 세기를 가로지르는 흐름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 의는 인간이 하늘로 오르거나 무저갱으로 내려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까이 와서 값없이 제시된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크리소스톰은 이를 바울의 목회적 사랑의 어조로 읽고, 칼빈은 율법과 복음의 구조적 대조로 정교화해 종교개혁 이신칭의 신학의 본문적 근거로 세웁니다. 헨리는 이를 "약속 안의 그리스도"라는 접근 가능한 언어로 압축하고, 웨슬리는 언약신학의 틀 —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의 대조 — 안에 위치시켜 은혜 언약의 통시대적 일관성을 강조합니다. 스펄전에 이르러 이 전통은 입의 고백이 마음의 믿음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실천적 경계로 첨예화됩니다. 요컨대 교부로부터 19세기 부흥 설교까지, 해석은 한결같이 "행함이 아니라 받음"이라는 축 위에서 강조점의 결을 달리하며 심화되어 왔습니다.

참고 자료

  1. John Chrysostom, *Homilies on the Acts of the Apostles and the Epistle to the Romans*, Homily XVII (on Rom 10:1), NPNF¹ vol. 11.
  2. John Calvin (tr. John Owen), *Commentary on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on Rom 10:5-8.
  3. 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Concise), on Rom 10:5-10.
  4. John Wesley,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Sermon 6, "The Righteousness of Faith," on Rom 10:5-8.
  5. Charles Spurgeon, *Spurgeon's Sermons*, vol. 9 (1863), "Confession With The Mouth," on Rom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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