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2-20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5:12-20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고린도전서 15:12-20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시리즈 배경 (요약)
고린도는 아가야의 로마 식민지 수도로, 동서 무역로가 교차하는 국제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주후 50-51년경 약 18개월간 이 도시에서 선교하며 교회를 세웠고(행 18:1-18), 고린도전서는 이후 에베소 체류 중에 집필되었습니다.[bg1] 고린도 교회는 사회적으로 다층적인 구성원 — 유대인 회당 출신, 이방인 개종자, 해방 노예, 소수의 상류층 후원자 — 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 다양성이 신학적 분열의 배경을 이루었습니다. 15장은 이 복합적 회중 안에서 부활 교리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긴장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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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부정자들의 정체: 내부 논쟁의 윤곽
바울이 맞닥뜨린 반대는 단순한 무신론이나 외부의 적대가 아니었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이들이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5:12)는 물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정하면서도 일반적 죽은 자의 부활만은 부정하는 교회 내부의 일부를 직접 겨냥합니다.[bg2] 이들은 '거짓 사도'라기보다는, 그리스 철학적 직관을 기독교 신앙에 통합하려던 교육받은 고린도 신자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의 논리적 출발점은 명확합니다 — 그리스도는 특별히 살아나셨을 수 있지만, 일반적 의미에서 신체적 부활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의 바탕에는 당시 고린도 사회를 지배하던 헬레니즘 철학의 인간론이 놓여 있습니다. 그들이 부정한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①이미 부활이 영적으로 일어났다는 과거적 부활론(hyper-realized eschatology — 딤후 2:18의 후메네오·빌레도 유형), ②육체의 부활이 아닌 영혼 불멸만 긍정하는 영지주의 이전 경향성, ③단순히 그리스 자연관에 입각한 신체 소멸 확신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주장은 기독교 복음의 논리적 핵심을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바울에게 즉각적 반박을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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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세계의 영혼불멸론과 육체 부활의 긴장
고대 그리스 철학의 주류는 영혼(psychē)을 불멸의 실체로, 육체(sōma)를 영혼의 일시적 감옥으로 이해했습니다. 플라톤의 『파이돈』(Phaedōn)은 이 관점을 가장 체계적으로 전개한 PD 1차 사료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영혼이 육체의 족쇄에서 해방되는 사건으로 묘사합니다.[bg3] 이 세계관에서 육체의 부활이란 정화된 영혼을 다시 감옥에 가두는 퇴보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아테네에서 아레오바고 연설 후 바울이 부활을 언급했을 때 청중의 반응은 "어떤 이들은 비웃고"(행 17:32)로 기록됩니다 — 이 반응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헬레니즘 청중에게 부활 교리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낯설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린도 교회의 부활 부정자들도 이 문화적 직관을 공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복음에서 자신들의 철학적 세계관과 가장 충돌하는 요소를 제거하거나 재해석하려 했습니다.
※ 그레코-로만 1차 사료와 신화 속 하데스·엘리시움 개념, 그리고 이집트 부활 신화와의 비교는 §7 「고대 문헌·자료 심화」에서 상세히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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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성전기 유대교의 부활론적 스펙트럼
고린도 교회의 유대인 배경 신자들은 부활에 대한 전혀 다른 문화적 자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2성전기(주전 516년~주후 70년) 유대교는 부활 신앙에 대해 단일한 입장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이루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구분은 요세푸스(Josephus)의 증언에 근거합니다 — 바리새파는 영혼의 불멸과 의인의 부활을 긍정한 반면, 사두개파는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했습니다.[bg4] 바울 자신은 바리새파 출신으로(빌 3:5),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학적 확신을 부활 신앙이 깊이 뿌리내린 교육적 배경으로부터 가져왔습니다.
제2성전기 문헌들은 부활의 방식과 시기에 대해 다양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다니엘 12:2("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는 신체적 부활의 가장 명시적인 구약 근거로, 바울이 15:20의 ἀπαρχή 논증에서 암묵적으로 의존하는 종말론적 틀과 연결됩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과 이사야 26:19("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나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역시 이 기대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 유대적 부활 기대를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 사건에 근거한 종말론적 완성으로 재정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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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확신 구조: 다메섹 현현과 공동체 전승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제기할 수 있었던 가장 날카로운 물음 — "바울은 예수를 직접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토록 확신할 수 있는가" — 은 §6 학술 논의에서 변증사적 관점으로 상세히 다루어집니다. 여기서는 역사적 맥락만 소개합니다.
바울은 15:8에서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증인으로 소개합니다 — 그는 지상의 예수를 따르지 않았고, 부활 현현 목격자들의 명단(게바, 12제자, 500인, 야고보, 모든 사도) 중 가장 나중이자 가장 비정상적 위치에 자신을 놓습니다. 이 정직한 자기 위치 설정은, 바울이 자신의 확신을 단순한 개인적 신비 체험으로만 근거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15:3-5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부활 선포를 사도적 공동 전승(παρέδωκα… παρέλαβον)에 명시적으로 귀속시킵니다.[bg5]
이것이 역사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 1:18에 따르면 바울은 다메섹 체험 후 3년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해 게바(베드로)와 15일을 함께 지냈습니다 — 이때 전달된 것이 바로 15:3-5의 초기 신경 전통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전통은 예수 사망(주후 30년경)으로부터 길어야 3-5년 이내의 것으로, 신약학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론 문서로 평가됩니다. 바울의 확신은 개인 신비 체험 + 공동체가 검증한 복수 증언 + 500인 이상의 살아있는 목격자들(v.6: "그 중에 태반은 지금까지 살아 있고")이라는 삼중 근거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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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Albert Barnes, *Barnes' Notes — 1 Corinthians* (1832; PD), on 1 Cor 16:8-9; 15장 집필 배경.
- Paul E. Kretzmann, *Kretzmann's Popular Commentary — NT vol. 2* (St. Louis: Concordia, 1922; PD), on 1 Cor 15:1-11: "There were, it seems, false apostles or very ignorant members at Corinth, men that claimed there wa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 Plato, *Phaedōn* 64a-67b (PD 1차 사료): 소크라테스의 죽음-해방론과 영혼-육체 이원론.
- Josephus, *Bellum Judaicum* 2.163 (PD 1차 사료): 바리새파의 부활 신앙; *Antiquitates Judaicae* 18.16: 사두개파의 부활 부정.
-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Epistles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Vol. 2* (tr. John Pringle;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8; PD), on 1 Cor 15:1-11: 바울이 수신한 전승과 복음의 공동 확증 구조에 대한 주해.
고린도전서 15:12-20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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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 귀류법의 출발점: 선포와 부정의 내적 모순
본문: Εἰ δὲ Χριστὸς κηρύσσεται ὅτι ἐκ νεκρῶν ἐγήγερται, πῶς λέγουσιν ἐν ὑμῖν τινες ὅτι ἀνάστασις νεκρῶν οὐκ ἔστιν; 직역: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선포되고 있다면, 어떻게 너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원어·문법 핵심: - κηρύσσεται (현재 수동 직설법): 지속적·반복적 선포 상태를 표현합니다. 바울은 "선포되었다"(과거)가 아니라 "선포되고 있다"(현재)를 택합니다 — 이미 확립된 공동체 고백이 현재도 진행형임을 강조합니다. - NT 용례: κηρύσσω, 신약 61회. ἐγήγερται(완료 수동)와 대조 — κηρύσσεται는 현재 선포 행위, ἐγήγερται는 완료 사건 상태.
주석적 논의: 바울이 맞닥뜨린 반대는 복음 전체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일반 부활(ἀνάστασις νεκρῶν)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부활을 부정하는 세 철학적 흐름이 있었습니다 — 소멸론을 주장한 에피쿠로스 계열·사두개파, 범신론적 재흡수를 가르친 스토아 계열, 그리고 영혼 불멸만 인정한 플라톤 계열이었습니다. 이 중 세 번째 흐름이 고린도 교회 내 부활 부정자들과 가장 친화적이었을 것입니다. πῶς λέγουσιν("어떻게 말합니까")은 수사적 의문으로, 이미 고백된 사실(ἐγήγερται)과 주장된 부정(οὐκ ἔστιν) 사이의 논리적 불일치를 지적합니다. ἀνάστασις νεκρῶν(νεκρός 어근 신약 128회)은 특정 부활이 아닌 죽은 자 전체의 부활을 가리키는 범주 개념입니다.
설교적 함의: 이 물음은 오늘 설교자에게 중요한 도전을 제기합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정하면서도 그 종말론적 함의(우리의 부활)를 회피하는 현대적 신앙 유형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세상 믿음으로 충분하지 않는가"라고 묻는 새신자에게, 바울의 물음이 먼저 도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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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 — 첫 번째 귀류: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함
본문: εἰ δὲ ἀνάστασις νεκρῶν οὐκ ἔστιν, οὐδὲ Χριστὸς ἐγήγερται· 직역: 그러나 만약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않으셨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οὐδέ (접속사·주격): "그리고 또한 ~도 아니다"의 연속 부정. v.13과 v.16에서 동일하게 반복되어 귀류법의 논리적 연쇄를 형성합니다.
주석적 논의: 이 절은 귀류법 연쇄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일반 범주라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범주의 특수 사례입니다 — 범주 자체가 없다면 특수 사례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상대의 전제를 수용한 뒤 그 전제가 상대 자신이 이미 믿는 것(그리스도의 부활)과 충돌함을 보입니다. ἐγήγερται의 완료 시제는 이 절에서 역설적 힘을 발휘합니다 — 완료가 주장하는 '현재까지 유효한 상태'가 전제 붕괴 시 동시에 붕괴한다는 논리입니다.
설교적 함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지만 일반 부활은 모르겠다"는 입장이 얼마나 스스로를 무너뜨리는지를 이 절이 보여줍니다. 확신의 근거가 일관성을 갖는지가 믿음의 진지성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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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4 — 두 번째 귀류: κήρυγμα와 πίστις의 공허함
본문: εἰ δὲ Χριστὸς οὐκ ἐγήγερται, κενὸν ἄρα τὸ κήρυγμα ἡμῶν, κενὴ καὶ ἡ πίστις ὑμῶν· 직역: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는 공허하고 너희의 믿음도 공허합니다.
원어·문법 핵심: - κενός (형용사, 신약 18회: 고전 4·눅 3·살전 2): "내용이 없는, 빈, 헛된"을 의미합니다. LXX 77회로 주로 공허한 영광이나 헛된 시도를 묘사합니다. κήρυγμα와 πίστις 양자에 동일 형용사를 적용하여 선포와 반응이 함께 붕괴함을 보입니다. - NT 용례: 고전 15:14, 58; 고후 6:1("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같은 의미장.
주석적 논의: κήρυγμα(신약 7회: 고전 3·딛 1·딤후 1)는 선포 행위가 아니라 선포의 내용, 곧 전달된 메시지 자체를 가리킵니다. πίστις는 추상적 신앙이 아니라 구체적 신뢰 관계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선포는 내용 없는 공허한 말이 되고, 믿음은 허공을 향한 공허한 신뢰가 됩니다. 이 둘의 병행("우리의 선포"와 "너희의 믿음")은 설교자와 청중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구조입니다 — 부활의 위기는 공동체 전체의 위기입니다. ἄρα(추론 불변사)는 논리적 귀결임을 표시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해석적 쟁점: - κενόν의 의미: "내용 없음"(빈 껍데기) vs. "효력 없음"(실질 없음) — 맥락상 두 의미가 모두 작동합니다. 선포는 내용이 없고, 믿음은 효력이 없습니다.
설교적 함의: 현대 교회가 부활의 신체적 실재를 상징으로 환원할 때, κήρυγμα와 πίστις가 함께 공동화됩니다. 선포의 내용이 부활 실재에 닻을 내리지 않으면 어떤 신앙 고백도 공허한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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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 — 세 번째 귀류: 하나님에 대한 위증자
본문: εὑρισκόμεθα δὲ καὶ ψευδομάρτυρες τοῦ θεοῦ, ὅτι ἐμαρτυρήσαμεν κατὰ τοῦ θεοῦ ὅτι ἤγειρεν τὸν Χριστόν... 직역: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거짓 증인들임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반하여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원어·문법 핵심: - ψευδόμαρτυς (신약 2회: 고전 15:15·마 26:60): 마태복음에서는 예수 재판의 위증 장면에서만 등장합니다. 바울은 이 법정 용어를 자신과 사도들 모두에게 적용합니다. κατὰ τοῦ θεοῦ(하나님을 반하여/대항하여)의 κατά + 속격은 법적 고발 언어입니다.
주석적 논의: 이 절은 부활 부정의 결과 중 가장 충격적입니다. 신학적 오류가 아니라 법적 위증으로 격상됩니다. εὑρισκόμεθα(현재 수동 직설법 1복: "드러납니다, 발견됩니다")는 바울 자신이 그 상태임이 논리적으로 드러난다는 수동적 인정입니다. ἐμαρτυρήσαμεν(부정과거 능동 직설법 1복: "우리가 증언했습니다")은 이미 행해진 증언 사실을 확정적으로 진술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는 증언은 하나님께서 행하지 않은 일을 행했다고 고발하는 것 — 하나님에 반하는(κατά) 위증이 됩니다. 이 논리는 사도 권위의 근거가 부활 목격 증언임을 전제합니다.
설교적 함의: 부활을 지우면 설교자는 위증자가 됩니다 — 이것이 바울이 안전하게 타협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설교자의 권위는 개인 카리스마나 감동적 전달이 아니라, 살아나신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증언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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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 논증의 재확인: 전제 반복 심화
본문: εἰ γὰρ νεκροὶ οὐκ ἐγείρονται, οὐδὲ Χριστὸς ἐγήγερται· 직역: 왜냐하면 만약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않으셨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γάρ(이유 접속사): v.13의 반복이지만 γάρ(왜냐하면)가 추가되어 논증의 이유를 명시합니다. v.17로 넘어가는 전환 역할을 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고린도전서 15:12-20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 섹션은 교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설교·해석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 본 섹션은 초기 교회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했는지 제시합니다.
클레멘트 1서(1 Clement) / c. 96 AD (사도교부)
클레멘트 1서는 로마 교회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로,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집필한 지 약 40년 뒤에 같은 수신자 공동체를 향해 다시 씁니다. 이 편지는 부활 교리를 고린도 교회가 여전히 씨름하는 주제로 다루며, 특히 자연 현상의 유비(낮과 밤의 교대, 씨앗이 죽어 싹트는 과정)를 통해 죽음 이후 생명의 가능성을 논증합니다. 바울이 1 Cor 15:12에서 제기한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초기 교회에서 얼마나 시급한 과제였는지, 클레멘트 1서가 증언합니다.[pat1] 신약학자 라이트풋(Lightfoot)은 이 편지를 편집하면서 "이 어려움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느껴졌고 바울이 고린도전서 15:12에서 대응한 것이며, 조금 뒤에는 영지주의의 선구적 경향들이 등장했다"고 주석합니다. 부활에 대한 신체적 저항과 영적 재해석의 유혹은 1세기 말에도 지속된 투쟁이었습니다.
설교 적용 면에서, 클레멘트 1서의 자연 유비 변증은 귀류법이 아닌 긍정적 유비 논증입니다 — 바울이 논리로 공격을 방어했다면, 클레멘트는 자연의 섭리로 부활의 신빙성을 제안합니다. 두 방법은 상호 보완적이며, 지적 회의를 가진 새신자에게 논리(바울)와 유비(클레멘트)를 함께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해석의 흐름 — 초기 교회 전통의 형성
초기 교부 전통은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 논쟁이 단순히 바울 시대에 종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2세기 영지주의자들(발렌티누스 계열)은 부활을 영적 깨달음으로 재해석했고,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이에 맞서 De Resurrectione Carnis(육체의 부활에 관하여)에서 신체 부활의 실재성을 변호했습니다. 이 논쟁의 핵심에는 항상 1 Cor 15:12의 물음 — "어떻게 어떤 이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 이 있었습니다. 니케아 신경의 '죽은 자의 부활(ἀνάστασιν νεκρῶν)' 고백과 사도신경의 resurrectio carnis 조항은 이 초기 투쟁의 결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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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설교사·수용사
J. C. 라일(J. C. Ryle) / 19세기 (영국 복음주의)
라일은 고린도전서 15장을 "복음의 기초 진리들"(Foundation Truths)의 장으로 읽습니다.[rh1] 그는 이 장 전체가 그리스도의 죽음·장사·부활이라는 사실적 기초 위에 선다는 점을 강조하며, 당시 영국 교회 안에서 확산되던 자유주의 신학의 부활 상징화 경향에 맞섰습니다. 라일에게 15:12-20의 귀류법은 단순히 신학 논증이 아니라, 복음의 내용이 사실(facts)이냐 의견(opinions)이냐를 가르는 분기점이었습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런던 침례교)
스펄전은 1890년 2월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에서 이 본문(15:12-19)으로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설교를 전했습니다.[rh2] 그의 핵심 테제는 "우리의 종교는 의견이 아니라 사실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종교는 의견에 기반을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때로 '그것은 당신의 견해이고, 이것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듣습니다. 당신의 '견해'가 무엇이든 — 그것은 사소한 문제입니다." — "Our religion is not based upon opinions, but upon facts. We hear persons sometimes saying, 'Those are your views, and these are ours.' Whatever your 'views' may be, is a small matter."[rh2] 스펄전은 바울의 논증 구조(귀류법)를 그대로 설교 형식으로 활용했습니다 — 청중과 함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논리적으로 추적한 뒤, 사실의 선포로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1862년 4월에는 ἀπαρχή(첫 열매) 설교를 전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거룩한 신앙의 근간"(the very basis of our holy faith)이며 "논란의 여지 없이 확증된 사실"(exceedingly well attested)임을 강조했습니다.[rh3]
알렉산더 맥라렌(Alexander MacLaren) / 19세기 (맨체스터 침례교)
맥라렌의 설교 "부활의 확실성과 기쁨"(The Certainty and Joy of the Resurrection)은 v.20의 수사적 반전을 가장 선명하게 포착한 설교 중 하나입니다.[rh4] 그는 vv.12-19의 귀류법 단락을 "죽은 그리스도만을 가졌을 때 생겨나는 암울한 귀결들의 긴 행렬"(the long train of dismal consequences which he sees would arise if we only had a dead Christ)로 묘사하고, νυνὶ δέ의 반전을 "가장 둔한 귀도 알아채는 조성 전환"(a change of key, which the dullest ear can appreciate)으로 표현합니다: "전 절들의 통곡하는 단조에서 이 승리의 폭발로." — "with a change of key, which the dullest ear can appreciate, from the wailing minors of the preceding verses, he breaks into this burst of triumph."[rh4] 이 묘사는 설교의 극적 구조를 위한 탁월한 지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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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흐름
교회사 전체를 볼 때 고린도전서 15:12-20은 세 유형의 위협에 맞서 반복적으로 설교되었습니다 — 1-2세기의 영지주의적 영성화, 계몽주의 이후의 역사적 부정, 19-20세기의 상징적 재해석. 클레멘트 1서(96 AD)가 자연 유비로 대응했고, 테르툴리아누스(2-3세기)가 신체 실재성으로 맞섰으며, 종교개혁자들은 귀류법의 논리 구조를 설교학적으로 재활용했습니다. 19세기 스펄전과 맥라렌은 이 귀류법을 근대 청중을 위한 선포 언어로 재번역했습니다. 각 시대의 해석은 강조점이 다르지만 하나의 주제를 공유합니다 — 부활은 신앙의 부속물이 아니라 복음의 논리적 핵심이며, 이것이 제거되면 다른 모든 것도 함께 무너진다.
참고 자료
- 클레멘트 1서, in J. B. Lightfoot ed., *The Apostolic Fathers, Part I: S. Clement of Rome, Volume 2* (London: Macmillan, 1890), p. 399. PD.
- J. C. Ryle, *The Upper Room* (London: William Hunt, 1888), "Chapter IV: Foundation Truths," on 1 Cor. 15:3-4.
- C. H. Spurgeon, "If There Is No Resurrection" (Sermon No. 2287), delivered February 20, 1890, at the Metropolitan Tabernacle, Newington, in *Spurgeon's Sermons Volume 38: 1892*.
- C. H. Spurgeon, "Resurrection — Christ the First Fruits" (Sermon No. 454), delivered April 20, 1862, at the Metropolitan Tabernacle, Newington.
- Alexander MacLaren, "The Certainty and Joy of the Resurrection," on 1 Cor. 15:20, in *Expositions of Holy Scripture: Romans and Corinthians* (London: Hodder & Stoughton,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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