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장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고린도전서 11장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고린도는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재건한 로마 식민도시로, 두 바다를 잇는 이스트미아 지협 위에 자리 잡은 국제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이 다원적 도시 안에서 바울이 세운 교회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계층—후원자 위치의 부유한 가정 대표자부터 노예까지—이 한 공동체 안에 섞여 있었습니다. 11장의 두 가지 문제(예배 질서와 주의 만찬 오용)는 모두 이 이질적인 공동체가 하나의 몸으로 모일 때 드러난 균열이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두 문제, 하나의 흐름 — 사도적 전승을 지키는 공동체
11장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안(1-16절의 예배 질서, 17-34절의 주의 만찬 오용)을 다루지만, 두 단락은 모두 2절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들을 너희가 지킨다"는 칭찬에서 출발합니다. 19세기 주석가 파울 크레츠만(Paul E. Kretzmann)은 이 구절이 가리키는 "전한 것들"이 교리와 삶의 규범 모두를 포함하며, 구두로도 서신으로도 전달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데살로니가후서 2:15과 3:6을 나란히 언급합니다.[bg0] 이 관찰은 11장 전체를 읽는 실마리가 됩니다—바울은 예배 질서든 만찬 예법이든,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사도로부터 넘겨받아 교회가 함께 지켜야 할 전승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19세기 주석가 알버트 반즈는 이 장이 앞선 논의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보면서, 바울이 여성의 머리 가림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사안을 먼저 다루고 이어서 훨씬 중대한 사안인 주의 만찬의 올바른 거행 방식으로 넘어간다고 그 구성을 요약합니다.[bg2] 두 사안의 무게는 다르지만, 공동체가 함께 지키기로 받은 것을 각자 편한 대로 흩트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두 단락을 관통합니다.
예배 질서 문제의 배경 — 머리 가림 관습
바울이 1-16절에서 다루는 머리 가림 문제는 헬라어 κατὰ κεφαλῆς ἔχων(11:4)·κατακαλύπτω(11:6)의 정확한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머리에 두르는 천 재질의 덮개는 실제로 존재하던 복식 범주였습니다. 파피루스 문헌 가운데 πιλίον(펠트 재질의 모자·두건을 가리키는 지소형 명사)을 다루는 한 단편은 이런 종류의 머리 덮개가 보호의 함의를 지닌 물품으로 취급되었음을 보여줍니다.[bg1] 로마 식민도시 고린도는 그리스 동방의 관습과 로마 서방의 관습이 뒤섞인 곳이었고, 예배 중 머리를 가리는가 드러내는가는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라 성별과 사회적 위치를 표시하는 기호로 읽혔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고린도 교회 일부 구성원이 기존 관습을 이탈했을 때, 그것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알아볼 수 있는 사회적 신호였습니다.
주의 만찬 오용의 배경 — 관계의 갈등과 공동 식사 관습
17-34절이 다루는 문제의 뿌리는 초대교회가 그리스-로마 사회의 공동 식사 관습을 물려받은 채 모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19세기 주석가 알버트 반즈(Albert Barnes)는 이 단락이 다루는 주의 만찬 오용 문제가 고린도 교인들이 이전부터 익숙했던 공적 연회의 태도와 습관을 그대로 예배 자리로 옮겨 온 데서 비롯되었다고 짚습니다.[bg2] 그레코-로만 세계의 공동 식사는 흔히 먼저 도착한 사람과 나중에 도착한 사람, 집을 제공하는 쪽과 초대받는 쪽 사이에 시차와 몫의 차이가 생기는 구조였고, 고린도 교회도 이 관습의 틀 안에서 모였습니다. 바울이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한다"(11:21)고 지적하는 상황은 개인의 무례함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구조가 예배 공동체 안으로 그대로 들어온 결과에 가깝습니다. 한 연구는 이 본문의 οἰκία/οἶκος(11:22, 34)가 전통적으로 부유한 신자의 개인 저택으로 해석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공동 식사 자리에서 늦게 도착한 이들—흔히 노동이나 노예 신분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없던 이들—이 자원 분배에서 소외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짚습니다.[bg3]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또 다른 연구는 고린도 공동체의 만찬 갈등을 1세기 자발적 결사체(voluntary association)의 식사 관행이라는 틀로 조명하면서, 결사체 식사에서 작동하던 명예 배분의 위계 구조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단순한 빈부 격차를 넘어 사회적 명예를 둘러싼 경쟁의 문제로도 드러낸다고 분석합니다.[bg4]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바울이 뒤이어 요구하는 "서로 기다리라"(11:33)는 권면은 바로 이 관계적 갈등—함께 모이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실제로는 나뉘어 있던 공동체의 현실—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Paul E. Kretzmann, *Popular Commentary of the Bible: New Testament*, vol. 2.
- P. Oxy. 74 4979.
- Albert Barnes, *Notes on the New Testament: I Corinthians*.
- Suzanne Watts Henderson, "'If Anyone Hungers …': An Integrated Reading of 1 Cor 11.17–34," *New Testament Studies* 48 (2002). DOI: 10.1017/s0028688502000140.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McRae, "Eating with Honor: The Corinthian Lord's Supper in Light of Voluntary Association Meal Practice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30 (2011). DOI: 10.2307/41304193.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고린도전서 11장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34절의 긴 본문 전체를 동일한 밀도로 다루는 대신, 논증의 전환점이 되는 다섯 단락은 원어·문법·주석적 논의를 깊이 있게 짚고 나머지 단락은 흐름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11:3 — 머리 됨의 연쇄
본문: κεφαλὴ δὲ γυναικὸς ὁ ἀνήρ, κεφαλὴ δὲ τοῦ Χριστοῦ ὁ θεός
직역: "그런데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παντὸς ἀνδρὸς ἡ κεφαλὴ ὁ Χριστός —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까지 포함한 3중 병렬 구문의 일부)
원어·문법 핵심: - κεφαλή: 본래 "머리"(신체)를 뜻하나 관계적 "근원 됨·권위"로 확장된 의미로 쓰입니다. - 세 절이 "κεφαλὴ δὲ..." 구문으로 반복되는 병렬 구조지만, 문법 자체가 세 관계의 동질성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 한 연구는 헬라어 문헌 전반에서 κεφαλή가 "출처·근원"과 "권위·지배" 두 방향 모두로 쓰인 용례를 확인하며 논쟁이 지속됨을 지적합니다.[v1]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주석적 논의: 이 절은 11장 전반부 논증의 신학적 토대입니다. 세 번째 절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머리"는 삼위 사이의 위격적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역하시는 경륜적 순종의 질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널리 읽힙니다. 이 신학적 유비 위에서 바울은 예배 중 머리 가림 문제를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관계적 질서의 표현으로 다룹니다. κεφαλή를 "권위"로 읽든 "근원"으로 읽든, 본문의 핵심은 어떤 존재도 고립된 자기 원인으로 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해석적 쟁점: κεφαλή의 의미를 "권위·지배"(전통적 다수 견해)로 볼지 "근원·기원"(현대 일부 연구)으로 볼지에 따라 이 구절이 함의하는 관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두 해석 모두 세 번째 절의 경륜적 순종 이해와는 배치되지 않습니다.
설교적 함의: 모든 관계는 진공 속에 홀로 서 있지 않고 어떤 "머리 됨"의 질서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 본문의 신학적 요지입니다. 개척·소형 교회의 리더십 관계나 가정 안의 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서열을 먼저 따지지만, 본문은 "내가 누구로부터 왔고 무엇을 향해 서 있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오늘 내 삶의 어느 관계가 그 근원을 잊은 채 독립적으로 서려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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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0 — 창조 질서와 천사들 앞에서
본문: ἀνὴρ μὲν γὰρ οὐκ ὀφείλει κατακαλύπτεσθαι τὴν κεφαλήν, εἰκὼν καὶ δόξα θεοῦ ὑπάρχων·... διὰ τοῦτο ὀφείλει ἡ γυνὴ ἐξουσίαν ἔχειν ἐπὶ τῆς κεφαλῆς διὰ τοὺς ἀγγέλους.
직역: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 머리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머리 위에 권위(의 표)를 가져야 합니다."
원어·문법 핵심: - εἰκών("형상")·δόξα("영광"): 창 1:27의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로 남자를 가리키며, δόξα는 한 존재의 가치를 밖으로 드러내는 관계적 의미로 쓰입니다. - ἐξουσία("권위"): 통사 구조가 이례적인 현수구문(casus pendens)이어서, 한 연구는 이를 필사 오류가 아니라 바울 특유의 압축 표현으로 논증합니다.[v2]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ἄγγελος("천사"): 예배 질서의 근거로 언급되어 수호천사·타락천사·예배 참관자 등 해석이 갈리는 난해어입니다.
주석적 논의: 창 1:26-27·2:18-23의 창조 서사가 이 단락의 배경이며, 바울은 이를 문자적 재현이 아닌 관계적 유비로 재해석해 예배 질서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천사들 때문에"는 예배 모임에 영적 실재가 함께한다는 제2성전기 유대 사상의 흔적으로 읽는 것이 본문의 낯섦을 성급히 지우지 않는 독법입니다. 10절의 결론이 여성 스스로의 권위인지 외부에서 요구되는 복종의 표인지는 그리스어 구문만으로 완전히 해소되지 않습니다.
해석적 쟁점: ἐξουσία ἐπὶ τῆς κεφαλῆς를 "여성이 스스로 행사하는 권위(자기 결정)"로 읽을지 "머리 위에 두는 복종의 표지"로 읽을지가 10절 전체 해석을 가릅니다.
설교적 함의: 창조 신학은 예배의 형식에까지 적용된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오늘날 이 창조 질서 논증을 문자적 규정(구체적 복장 규칙)으로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나는 지음받은 존재로서 예배한다"는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본문에 충실한 적용입니다. 이번 주 예배에 나아갈 때, 내가 스스로 만든 자리가 아니라 지음받은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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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22 — 분열된 식탁
본문: ἕκαστος γὰρ τὸ ἴδιον δεῖπνον προλαμβάνει ἐν τῷ φαγεῖν, καὶ ὃς μὲν πεινᾷ, ὃς δὲ μεθύει. (11:21)
직역: "각자 자기 만찬을 먼저 먹어 치우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합니다."
원어·문법 핵심: - προλαμβάνω("먼저 취하다·먼저 먹다"): 신약에서 이 본문 외에 막 14:8("향유를 미리 부어")·갈 6:1("범죄한 일이 드러나면")에도 나타나는 단어로, "때를 앞서 행한다"는 뉘앙스가 공통됩니다. - σχίσμα("분열"): 1:10-12에서부터 이어지는 반복 모티프로, 11장에서는 예배 모임 중의 파당으로 나타납니다. - ἥσσων/ἧσσον("더 못하게", 11:17 εἰς τὸ ἧσσον συνέρχεσθε): "모이는 것이 유익이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된다"는 역설적 평가를 담은 비교급 표현입니다.
주석적 논의: 17-22절은 바울이 "칭찬하지 않는다"(17절)는 이례적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한 연구는 고린도 교회의 만찬 갈등을 그레코-로만 사적 결사체(private associations)의 식사 관행과 비교해, 먼저 온 사람과 나중 온 사람의 격차가 결사체 문화의 명예 배분 관행에 뿌리내렸음을 보여줍니다.[v3]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다른 연구는 17-34절 전체를 συνέρχομαι("모이다")가 반복 구조화하는 단락으로 읽으며, "함께 모임" 자체가 정체성 표지라는 문학적 강조로 분석합니다.[v4] 21절의 상황은 개인의 무례함이라기보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식사 관습이 예배 공동체로 그대로 들어온 결과에 가깝습니다.
설교적 함의: 신학적 요지는 예배 모임이 사회의 위계를 반영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위계를 넘어서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척·소형 교회는 인원이 적을수록 서로의 형편—누가 먼저 오고 늦게 오는지, 누가 여유가 있고 없는지—이 훤히 드러나기 쉽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내가 무의식중에 "먼저 온 사람의 몫"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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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26 — 성찬 제정의 말씀
본문: Ἐγὼ γὰρ παρέλαβον ἀπὸ τοῦ κυρίου, ὃ καὶ παρέδωκα ὑμῖν... τοῦτό μού ἐστιν τὸ σῶμα τὸ ὑπὲρ ὑμῶν· 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 τοῦτο τὸ ποτήριον ἡ καινὴ διαθήκη ἐστὶν ἐν τῷ ἐμῷ αἵματι·... ὁσάκις γὰρ ἐὰν ἐσθίητε τὸν ἄρτον τοῦτον καὶ τὸ ποτήριον πίνητε, τὸν θάνατον τοῦ κυρίου καταγγέλλετε.
직역: "나는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너희에게도 넘겨주었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입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십시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참고 자료
- Joseph A. Fitzmyer, "Another Look at ΚΕΦΑΛΗ in 1 Corinthians 11.3," *New Testament Studies* 35 (1989). DOI: 10.1017/s0028688500015174.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Jean-Pierre Winandy, "Un curieux casus pendens: 1 Corinthiens 11.10 et son interprétation," *New Testament Studies* 38 (1992). DOI: 10.1017/s0028688500022128.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Richard S. Ascough, review of *The Lord's Supper in Corinth in the Context of Greco-Roman Private Associations*, by Jin Hwan Le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82 (2020). DOI: 10.1353/cbq.2020.0098.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JM (Jooman) Na, "Shaped by the Supper: The Eucharist as an Identity Marker and Sustainer—A Literary Analysis of 1 Corinthians 11:17–34," *Religions* 16 (2025). DOI: 10.3390/rel16050599.
- Ferdi P. Kruger, "Rekognisie (herinnering) as meganisme vir die identifisering van betekenis van die liturgiese elemente in die erediens," *Verbum et Ecclesia* 38 (2017). DOI: 10.4102/ve.v38i1.1694.
- Michael K.W. Suh, "Δοκιμάζω in 1 Corinthians 11:28–29 within the Ancient Mediterranean Context," *Novum Testamentum* 62 (2020). DOI: 10.1163/15685365-12341652.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Ramelli, "Spiritual Weakness, Illness, and Death in 1 Corinthians 11:30,"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30 (2011). DOI: 10.2307/41304192.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 Solomon O. Ademiluka, "'For he who eats and drinks in an unworthy manner, eats and drinks judgment to himself': Interpreting 1 Corinthians 11:27–30 in light of the denial and avoidance of the Holy Communion in some churches in Nigeria," *HTS Teologiese Studies* 78 (2022). DOI: 10.4102/hts.v78i4.7271.
- Preston T. Massey, "Veiling among Men in Roman Corinth: 1 Corinthians 11:4 and the Potential Problem of East Meeting West,"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37 (2018). DOI: 10.1353/jbl.2018.0027.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교회 역사에서 고린도전서 11장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5.1 교부 해석 전통 (Patristic Interpretation)
> 본 섹션은 초기 교회(2-4세기)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했는지, ANF·NPNF 문헌을 바탕으로 제시합니다.
초대교회 익명 서신 / 2-3세기 (변증가 시대)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이른 시기부터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표준 어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순결을 다루는 한 초대교회 서신은 "그리스도를 입은" 이들이 생각·삶·행실 전체에서 그분의 형상을 드러낸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와 같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pat1] "본받음"이 단순한 도덕적 모방이 아니라 존재론적 변화로 읽혔음을 보여줍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 3세기 초 (니케아 이전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여성의 복장·몸단장을 다루며 베드로의 가르침(벧전 3:1-6)과 바울의 가르침(고전 11:1-16)이 "같은 영으로" 말미암았다고 전제하고, "옷의 영광과 금의 자랑과 머리를 매만지는 요란한 꾸밈"을 삼가라 촉구합니다.[pat2] 그에게 머리 가림은 예배 형식 규정이 아니라 사도적 가르침을 관통하는 겸손·절제의 윤리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 4세기 (니케아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세족 사건(요 13장)을 설명하며 "나를 본받는 자가 되되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같이 하라"는 바울의 말을 스승을 따르는 자의 마땅한 태도의 근거로 인용합니다.[pat3] 삼위일체 논쟁의 중심에 섰던 신학자조차 11:1을 그리스도를 향한 낮아짐의 본보기로 소환했다는 사실이 이 구절의 폭넓은 통용을 보여줍니다.
해석의 흐름 — 초기 교회 전통의 형성
2-4세기 교부들이 11장에서 가장 먼저 붙잡은 것은 머리 가림의 세부 규정이나 성찬 예법이 아니라 1절의 "본받음" 모티프였습니다. 익명의 서신도, 테르툴리아누스도, 아타나시우스도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말을 삶 전체의 방향을 정하는 원리로 확장해 사용했습니다. 초기 교회가 11장을 예배 규정집 이전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신학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며, 이후 종교개혁가들의 정교한 성찬 신학·공동체 윤리 해석은 이 위에 쌓인 발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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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설교사·수용사
> 본 섹션은 종교개혁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본문이 어떻게 주석·설교되어 왔는지 연대순으로 제시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4-5세기 (교부 설교)
크리소스톰은 17-22절을 강해하며,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재산 공유 관행의 여운으로 성찬 후 부자가 음식을 가져와 가난한 이를 초대하는 공동 식사가 이어졌다고 재구성합니다. "성찬의 신비에 참여한 후에는 모두 함께 공동의 잔치 자리로 나아가, 부유한 이들은 자기 몫의 음식을 가져오고 가난한 이들은 그 초대를 받아 함께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 관습마저 부패하고 말았습니다." — "after the communion of the Mysteries, they all went to a common entertainment, the rich bringing their provisions with them, and the poor and destitute being invited by them, and all feasting in common. But afterward this custom also became corrupt."[rh1] 문제의 뿌리가 애초에 선한 관습의 타락이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존 칼빈(John Calvin) / 16세기 (종교개혁)
칼빈은 주석에서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기며 해석 방향을 드러냅니다. 7절 εἰκὼν καὶ δόξα θεοῦ를 "imago et gloria Dei"로, 10절 ἐξουσίαν ἔχειν ἐπὶ τῆς κεφαλῆς를 "potestatem habere super caput suum"(자기 머리 위에 권능을 갖다)로 옮긴 것은, 그가 이 권위를 외부 부과 표지가 아니라 여성 자신이 지니는 것으로 읽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rh2] §4의 ἐξουσία 논쟁이 이미 종교개혁기 번역 선택에서부터 갈라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 18세기
웨슬리는 3절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가 삼위일체 교리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못박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자로서 아버지께 종속적으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머리라 불린다고 그들이 동일한 신적 본성이 아니라고 추론할 수 없는 것은,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 불린다고 동일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고 추론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 "Christ, as he is Mediator, acts in all things subordinately to his Father. But we can no more infer that they are not of the same divine nature... than that man and woman are not of the same human nature."[rh3] "머리 됨"이 본질의 동등함과 기능적 순종을 함께 긍정한다고 정리합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 19세기
스펄전은 30-32절의 "약한 자·병든 자·잠자는 자"를 하나님의 징계로 설교하며, 그 목적이 정죄가 아닌 회복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폈더라면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끊임없는 심판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살피고 합당하게 행한다면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 "For if we would judge ourselves, we would not be judged. There is a constant judgment going on in the Church of God."[rh4] 자기 살핌은 두려움이 아니라 심판을 피하는 은혜의 통로였습니다.
수용사 흐름
네 세기를 가로지르며 강조점이 이동합니다. 크리소스톰은 17-22절의 역사적 배경(공동 식사의 타락)을, 칼빈은 1-16절의 어휘를 정밀 번역해 신학적 함의를 새겼습니다. 웨슬리는 3절의 "머리 됨"이 삼위일체와 충돌하지 않도록 방어했고, 스펄전은 다시 27-32절의 목회적 적용—자기 살핌—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역사·번역·교리·목회라는 서로 다른 관심사를 통과하면서도 모든 시대가 공통으로 붙든 것은 "받은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책임 있는 참여라는 11장의 핵심 정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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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Pseudo-Clement, *Epistles Concerning Virginity*, ANF vol. 8.
- Tertullian, ANF vol. 3(Latin Christianity), 여성의 복장·꾸밈을 다루는 대목(고전 11:1-16·벧전 3:1-6 인용).
- Athanasius, NPNF² vol. 4 (Select Works and Letters).
- Chrysostom, *Homilies on the Epistles to the Corinthians*, Homily XXVII (고전 11:17), NPNF¹ vol. 12.
- Calvin,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Corinthians*, vol. 1 (고전 11:7, 10 라틴어 역주).
-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고전 11:3 주.
- Spurgeon, "The Nature and Design of Divine Chastening" (No. 2746),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vol. 4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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