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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31절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설교사 수용사

성경 본문

사도행전 9장 31절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사도행전 9장 31절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역사적 정황 — 헤롯 아그립바 1세 이전의 잠깐의 평화

사도행전 9:31은 바울의 회심(9:1–19)과 다마스쿠스·예루살렘에서의 첫 사역(9:20–30) 이후, 누가가 팔레스타인 전체 교회를 조감하는 편집 요약(summary statement)입니다. 교회가 평안을 누린 이 시기는 대략 기원후 36–4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박해를 주도하던 바울이 회심하여 다마스쿠스를 떠났고(9:25), 예루살렘에서도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갈등으로 바울이 다소로 피신한 뒤(9:30), 유대교 기관의 조직적 핍박이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평안이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37–41년 재위)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상을 세우려는 시도를 두고 유대 지도자들이 외교적 분주함에 집중해야 했던 상황과 관련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경우든, 이 요약 보고는 외적 상황의 변화가 교회의 내적 성장 조건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 성장이 외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 내적 동력(경외와 성령)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지리적 배경 — 유대·갈릴리·사마리아

본절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세 지역, 유대(Ἰουδαία)·갈릴리(Γαλιλαία)·사마리아(Σαμάρεια)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포괄하는 지리적 표현입니다. 이 세 지역의 결합은 사도행전 1:8의 선교 명령("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이 어느 정도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리적 신호이기도 합니다. 유대는 예루살렘과 그 주변을 포함하는 핵심 유대인 지역이었고, 갈릴리는 나사렛 예수의 사역 무대였으며,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통상 기피하던 '혼혈' 민족의 거주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1세기 사회·경제 상황에 관해서는 아르날(William Arnal) 등의 연구가 물적 증거를 검토한 바 있습니다. 이 지역들을 하나의 단수 주어 '교회(ἐκκλησία)'로 묶은 것은, 누가의 신학적 강조점이기도 합니다 — 세 지역에 흩어진 공동체들이 본질에서 하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경우, 사도행전 8:5–25에서 빌립이 이미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와 요한이 방문해 성령을 전해 준 기록이 있어, 9:31은 그 열매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음을 암시합니다. 고대 사마리아 도시(사마리아/세바스테)는 기원전 30년 헤롯 대왕이 점령한 뒤 아우구스투스를 기려 '세바스테'(Σεβαστή — 아우구스투스의 그리스어 번역)로 개칭한 헬레니즘화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다층 문화 지형 위에서 복음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본절은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종교·사회적 배경 — '교회'라는 모임과 1세기 유대 공동체 구조

ἐκκλησία(에크클레시아, 교회)는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두 가지 맥락을 지녔습니다. 첫째, 세속 그리스 도시에서는 공식 시민 집회(the assembled citizens)를 뜻했습니다. 둘째, 70인역(LXX)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모인 회중(히브리어 קָהָל, 카할)을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이 단어를 자기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채택한 것은 양쪽 배경을 모두 흡수한 것입니다 — '주의 이름으로 불러 모인 언약 공동체'라는 신학적 정체성.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는 회당(συναγωγή)이 지역 종교 공동체의 핵심이었는데,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는 회당과의 관계를 유지하다가 점차 별도 모임으로 분리되어 나갔습니다. 엘리엇(John H. Elliott)은 누가-행전에서 성전 중심 제도와 가정 교회 구조가 대비를 이루는 방식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가정(οἶκος — 오이코스)은 초대교회의 기본 모임 단위였으며, 이 가정 공동체들이 유대·갈릴리·사마리아 전역에 퍼져 있는 것이 9:31의 지형입니다.

크롬하우트(Cromhout)와 반 아르더(Van Aarde)는 1세기 유대 정체성의 사회·문화적 구조를 분석하면서, 유대인 공동체의 정체성이 민족·율법·성전 중심으로 짜여 있었음을 논합니다. 예수 운동이 이 구조 안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교회가 단순한 종교 조직이 아니라 정체성과 충성의 전환을 요구하는 새 공동체였음을 시사합니다.

고고학적 증거

사마리아/세바스테 (Samaria/Sebaste): 고대 사마리아 도시는 현재 나블루스(Nablus) 북서쪽 세바스티예(Sebastiyeh) 지역에 해당합니다. 헤롯 대왕이 기원전 30년 이후 이 도시를 대규모로 재건하고 아우구스투스 황제 숭배 신전을 세웠으며, 헬레니즘 도시 양식의 기둥 열주 거리와 극장이 발굴되었습니다. 1세기에 이 도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헬레니즘 문화가 혼재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었으며,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행 8장)와 9:31의 교회 성장이 이러한 다층 문화 지형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고고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제2성전 (Second Temple, Jerusalem): 예루살렘 제2성전은 기원후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 중 파괴되었으며, 현재 바위 돔(Dome of the Rock) 북쪽 가장자리 자리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9:31 시점의 팔레스타인 교회는 아직 성전 예배 전통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행 2:46; 3:1). 성전이 여전히 유대 종교 생활의 구심점으로 기능하던 시기에 교회가 '평안히 세워져 가고' 있었다는 것은, 그 교회가 유대적 기반 위에 서 있으면서도 새로운 공동체로 형성되어 가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교부·개혁파 전통, 학술 논의를 종합하여 사도행전 9:31의 각 의미 단위를 다면적으로 주해합니다. 단 한 절이지만 네 개의 의미 군(群)으로 나누어 상세히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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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a — 교회가 평안을 누렸다: ἡ ἐκκλησία εἶχεν εἰρήνην

본문: Ἡ μὲν οὖν ἐκκλησία καθ᾽ ὅλης τῆς Ἰουδαίας καὶ Γαλιλαίας καὶ Σαμαρείας εἶχεν εἰρήνην 직역: 그러므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걸쳐 교회가 평안을 가지고 있었다

원어·문법 핵심: - ἡ ἐκκλησία(에 에크클레시아): 주격 단수 — 세 지역에 흩어진 공동체들을 '하나의 교회'로 지칭하는 신학적 선언. 단수 사용이 중요합니다. - εἶχεν(에이켄): 미완료 능동 직설법 3인칭 단수 — 지속적 상태. "가졌다(aor.)"가 아니라 "가지고 있었다(impf.)" — 평안이 반복·지속된 조건이었음을 나타냅니다. - εἰρήνην(에이레넨): 대격 단수 — 직접 목적어로서 교회가 능동적으로 '누린' 상태. 히브리어 שָׁלוֹם(샬롬)의 그리스어 등가어로, 단순 갈등 부재 이상의 전인적 번영·온전함을 뜻합니다. - καθ᾽ ὅλης(카트 홀레스): '온 ~에 걸쳐' — 지리적 포괄성을 강조하는 숙어적 표현.

주석적 논의:

이 절의 첫 번째 의미 단위는 전환 접속사 μὲν οὖν(멘 운, '그러므로·그런즉')으로 시작합니다. 이 접속사는 앞 이야기(바울의 갈등들)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도입하는 누가의 전형적 편집 장치입니다. 바울이 다소로 떠난 것(30절)이 어떤 의미에서 교회에 평안의 조건을 만들었는지, 본문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구절의 아이러니 중 하나입니다 — 교회 박해의 주역이었다가 회심한 바울의 퇴장이, 역설적으로 팔레스타인 전체 교회에 숨 고를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 지역의 결합입니다. 유대(Ἰουδαίας)·갈릴리(Γαλιλαίας)·사마리아(Σαμαρείας)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가리키는 지리적 완전수이며, 사도행전 1:8("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의 직접적 반향입니다. 누가가 이 세 지역을 단수 '교회'(ἐκκλησία)의 주어로 묶은 것은, 민족적·지리적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라는 신학적 주장입니다. 사마리아는 정통 유대인들이 기피하던 지역이었는데, 그 사마리아의 교회도 같은 하나의 ἐκκλησία 안에 포함됩니다 — 이는 8장에서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가 단순한 지리적 확장이 아니라 경계 허물기였음을 사후적으로 확인해 줍니다.

εἶχεν 동사의 미완료 시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설교자에게 중요합니다. '평안을 누렸다'는 단순 과거(아오리스트)가 아니라, '평안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미완료입니다. 이것은 평안이 한 순간의 감정이나 사건이 아니라, 교회가 일정 기간 살아간 분위기·환경이었음을 뜻합니다. 교부 크리소스토모스(Chrysostom)는 사도행전 설교에서, 교회의 이 평안이 하나님의 섭리적 타이밍 — 박해자가 제자로 변화된 뒤에 오는 숨 고를 시간 — 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번영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마련하시되, 그 번영의 내용과 동력은 외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 내적인 것임을 본절이 이어서 보여줍니다.

설교적 함의: 교회의 평안은 외부 상황이 좋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당신의 섭리로 외적 조건을 열어 주십니다. 그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 평안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 εἶχεν의 주어는 교회이고, 평안은 목적어입니다. 받아야 할 선물을 받지 못하는 교회, 주어진 평안을 불안으로 소비하는 공동체를 본문은 조용히 교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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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b — 든든히 서 가다: οἰκοδομουμένη

본문: οἰκοδομουμένη 직역: (교회가) 세워져 가면서

원어·문법 핵심: - οἰκοδομουμένη(오이코도무메네): 현재 수동 분사 주격 단수 여성 — 교회(ἐκκλησία, 여성)와 격·성·수 일치. 세 가지 문법 요소가 신학을 담습니다: ①현재 분사 = 진행 중인 과정, ②수동태 = 외부 주체에 의해 이루어짐, ③주어와 일치 = 교회 자신이 세워지고 있는 대상.

주석적 논의:

οἰκοδομέω(오이코도메오)는 문자 그대로 '집을 짓다'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이 동사는 두 층위로 사용됩니다. 물리적 건축의 이미지(마 7:24)와, 공동체를 덕으로 세우는 영적·사회적 건축의 이미지(고전 14:3-5; 엡 4:12)입니다. 사도행전 9:31에서 이 분사는 후자 의미로 사용됩니다 — 교회가 공동체로서 내적으로 성숙하고 강화되어 가는 과정.

수동태(passive voice)가 이 구절의 해석에서 결정적입니다. 교회가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워짐을 받는 것입니다. '건축의 주체'는 본문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문맥상 성령(26-28절)과 하나님의 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히며, 절 마지막의 '성령의 위로'가 이를 확인해 줍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10에서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비유하면서도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3:9)이라고 하여 교회 건축의 궁극적 주인이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2:22에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함께 세워져 감(οἰκοδομεῖσθε — 수동태)이 교회의 정체성으로 제시됩니다.

현재 분사는 이 과정이 한 번으로 완결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세워진' 완결 상태가 아니라 '세워져 가는' 진행 과정에 있습니다. 이것은 개혁신학이 말하는 성화(sanctification — 하나님이 신자를 점점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시는 지속적 과정)의 공동체적 차원입니다. 교회는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계속 건축 중인 현장입니다.

설교자는 이 분사에서 교회 사역 철학의 교정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프로그램이 '교회를 세우는' 일을 인간의 기획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교회 스스로가 건축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임을 문법으로 선언합니다. 교회가 할 일은 건축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워지고 있는 건물로서 하나님의 손길을 방해하지 않고 그 작업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설교적 함의: "든든히 서 가다"는 것은 인간의 역동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의 조용한 수동 사역입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는 것은 더 많은 프로그램, 더 훌륭한 인적 자원이 아니라, 세워 주시는 분께 믿음으로 자신을 맡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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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c — 주님 경외와 성령의 위로로: τῷ φόβῳ τοῦ κυρίου καὶ τῇ παρακλήσει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본문: πορευομένη τῷ φόβῳ τοῦ κυρίου καὶ τῇ παρακλήσει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직역: 주님의 경외와 거룩하신 성령의 위로로 행하면서

원어·문법 핵심: - πορευομένη(포류오메네): 현재 중간태/수동 분사 주격 단수 여성 — ἐκκλησία와 일치. '행하다, 삶을 살아가다'는 의미로 삶의 방식과 방향성을 가리킵니다. - τῷ φόβῳ(토 포보): 여격 — 수단격(dative of means): '경외로, 경외를 수단/방법으로'. - τοῦ κυρίου(투 퀴리우): 속격 — 소유격 또는 목적격 속격: '주님의 경외' 혹은 '주님을 향한 경외'. - παρακλήσει(파라클레세이): 여격 — 동일하게 수단격. 위로·권면·격려를 아우르는 복합 개념. -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거룩하신 성령의' — 속격으로 위로의 출처가 성령임을 나타냅니다.

주석적 논의:

이 절에는 교회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두 여격 구가 등장합니다. 주님의 경외(φόβος τοῦ κυρίου, 포보스 투 퀴리우)와 성령의 위로(παράκλησις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파라클레시스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이 두 어구는 각각 수직적·내적 두 동력을 가리킵니다.

교회 역사에서 사도행전 9장 31절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교부 크리소스토모스부터 19세기 MacLaren에 이르기까지, 사도행전 9:31을 각 시대의 교회는 어떻게 읽고 선포했습니까? 이 섹션은 본절의 해석 흐름을 시대순으로 추적하여, 각 시대의 신학적 고민이 이 한 절을 어떻게 조명했는지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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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교부 시대 — 크리소스토모스 (4세기 후반)

크리소스토모스(Chrysostom,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347–407)의 Homilies on Acts(사도행전 강해 설교)는 사도행전 전체를 강해한 44편의 설교를 담은 교부 시대의 대표적 사도행전 주해입니다. 사도행전 9장을 다루는 제21강해에서 크리소스토모스는 바울의 회심과 예루살렘 방문을 중심에 두면서, 9:31은 그 결과로 찾아온 섭리적 전환점으로 읽습니다.

크리소스토모스의 핵심 관점은 하나님의 타이밍이 박해자의 회심을 통해 교회에 평안을 선물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회심이 단순히 한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교회 전체의 상황을 역전시킨 섭리적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박해의 선봉장이 제자가 됨으로써, 박해를 주도하던 세력의 동력이 꺾였고, 교회는 그 틈에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 관찰은 교부의 역사신학적 안목을 잘 보여줍니다 — 교회사의 위기와 전환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다는 것.

크리소스토모스는 또한 9:31이 단순한 역사 요약이 아니라 교회의 건강한 상태를 묘사하는 규범적 텍스트임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강해합니다. '경외'와 '성령의 위로'로 걷는 교회가 평안과 성장을 동시에 누렸다는 것은, 교회가 어떤 상태일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지를 보여주는 패턴입니다. 그의 강해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 이후 교회가 제국의 보호 아래 급성장하던 시기에 기록되었는데, 그 맥락에서 '외적 평안이 내적 성장의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는 본절의 메시지는 당대 청중에게도 살아 있는 경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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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종교개혁 시대 — 칼빈 (16세기)

장 칼빈(Jean Calvin, 1509–1564)의 Commentary on Acts(사도행전 주석)는 그의 강해 방법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칼빈은 본절을 9:26–31의 단락 맥락 안에서 읽으면서, 교회의 평안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바울의 회심을 통해 열어 준 창문으로 봅니다.

칼빈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경외'의 의미입니다. 그는 주님의 경외(timor Domini)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경건(pietas)의 출발점임을 강조합니다 —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 앞에 자신의 판단과 욕망을 굴복시키는 것. 칼빈은 이것이 교회의 모든 성장과 번영의 토대라고 주장합니다. 성장은 전략과 방법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공동체의 내적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consolation of the Holy Spirit)에 대해서도 칼빈은 인상적인 신학적 관찰을 합니다. 그는 성령의 위로가 단순한 감정적 격려가 아니라, 교회가 시련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내적 힘임을 강조합니다. 박해와 외적 위기 속에서도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이 능동적인 내적 지지 때문이라는 것이 칼빈의 해석입니다. 이 관점은 칼빈 자신이 제네바 망명과 교회 내 갈등 속에서 경험한 신학적 실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칼빈의 수용사적 공헌은 9:31을 교회 성장의 신학적 공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평안(외적 조건) + 경외(내적 자세) + 성령의 위로(내적 능력) = 더하여짐(하나님이 주시는 열매). 이 구도는 이후 개혁주의 교회론의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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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청교도 시대 — 매튜 헨리 (17–18세기)

매튜 헨리(Matthew Henry, 1662–1714)의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전체 성경 주석)는 청교도 설교 전통의 집약입니다. 헨리는 본절을 교회의 두 가지 상태 — 시련의 때와 평안의 때 — 가 번갈아 찾아오는 패턴 안에서 읽습니다.

헨리의 독특한 기여는 이 평안을 선용(good use)해야 할 기회로 읽는 것입니다. 외적 박해가 그쳤을 때,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휴식이 아니라 내적 성장입니다. 헨리는 "교회는 평안의 때를 두려움 없는 탐욕의 때로 쓰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경건·연합·성장의 때로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οἰκοδομουμένη(든든히 서 가고)의 실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헨리는 또한 '주님의 경외'와 '성령의 위로'를 구별하면서도 연결합니다: 경외는 교회를 훈련하고 형성하는 내적 힘이며, 위로는 그 경외 안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격려입니다. 두 요소가 동시에 작동할 때 교회는 박해가 없어도 스스로 강건해지고, 그 결과 수가 더해집니다. 청교도 실용주의적 안목이 잘 드러나는 읽기입니다 — 신학을 삶의 실제와 연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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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8세기 복음주의 부흥 — 존 웨슬리 (18세기)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신약 설명 주석)는 간결하지만 실천적 통찰로 가득한 주석입니다. 웨슬리는 사도행전 9장 전체를 바울의 회심 서사로 읽으면서, 9:31을 그 전환의 열매로 봅니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성령의 위로'(comfort of the Holy Ghost — 웨슬리는 이 번역어를 선호합니다)입니다. 18세기 감리교 부흥운동의 지도자로서 웨슬리는 성령의 내적 사역 — 확신, 위로, 성화 — 을 신학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9:31을 성령의 이 내적 사역이 공동체적으로 작동한 실례로 읽습니다: 성령이 개인의 회심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로하고 든든히 세우는 방식으로 활동하신다는 것.

웨슬리 수용사에서 9:31은 '성화(sanctification)의 공동체적 증거'라는 위치를 차지합니다. 주님의 경외로 걸어가는 교회가 성령의 위로 안에 있을 때, 그 교회는 내적으로 성화되어 가며 그 결과로 외적으로도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웨슬리의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신학의 공동체적 적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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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19세기 스코틀랜드 강해 전통 — 알렉산더 MacLaren (19세기)

알렉산더 MacLaren(Alexander MacLaren, 1826–1910)의 Expositions of Holy Scripture: The Acts(사도행전 성경 강해)는 19세기 강해 설교의 절정 중 하나입니다. MacLaren은 사도행전 9:31을 "A Bird's-Eye View of the Early Church"(초대교회 조감도)라는 제목의 독립 설교로 다루면서, 본절의 세 요소를 세 개의 동심원적 건강 지표로 분석합니다.

MacLaren이 식별한 세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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