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17 설교 준비 자료 — 역사적 배경, 절별 주석, 강해설교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1-17

역사적·문화적 배경 · 절별 주석 · 설교사 수용사

고린도전서 1:1-17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고린도의 지리적·정치적 위상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코린토스 지협(isthmus)에 위치한 로마 식민도시(colonia)였습니다. 기원전 146년 루키우스 무미우스(Lucius Mummius)가 구 고린도를 파괴한 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 식민지로 재건하여 아가야 속주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식민 도시라는 특성은 고린도의 사회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정착민, 해방 노예 및 그 후손, 동방 이민자, 유대인 디아스포라, 그리고 원주민 그리스인이 혼재하는 다층적 사회였습니다. 이 다양성은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함께 끊임없는 지위 경쟁을 낳았으며, 이는 고린도전서의 분쟁 문제를 이해하는 사회사적 열쇠가 됩니다.

코린토스 지협이라는 지리적 이점은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서 고린도를 번영하게 만들었습니다. 상인들은 아드리아 해(이오니아 쪽)와 사로니코스 만(에게 해 쪽) 사이에서 화물을 육로로 이송하는 디올코스(diolkos) 경로를 이용했으며, 고린도는 이 통행로를 장악함으로써 막대한 상업 이익을 향유했습니다. 경제적 번영은 다양한 계층의 인구를 끌어들였고, 바울이 만난 고린도 교인들 역시 이 사회적 스펙트럼의 다양한 지점에 분포했습니다.

사회적 계층화와 분파 형성

1세기 로마 도시 사회에서 후원 관계(patronage-client network)는 사회적 결속과 상향 이동의 핵심 기제였습니다. 특정 지도자나 교사에 대한 충성 선언—"나는 바울 편", "나는 아볼로 편"(1:12)—은 이 사회적 역학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철학 학파나 수사학 교사를 중심으로 한 제자 집단의 형성은 당시 지중해 도시 문화의 보편적 현상이었으며, 고린도 신자들이 특정 사도적 인물에 귀속감을 갖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관행의 교회적 재현이었습니다.

게다가 회당을 떠나 가정 교회(house church) 형태로 모인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복수의 후원자 가정에 분산되어 모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각 가정 교회의 후원자가 누구의 세례를 받았느냐에 따라 파벌적 정체성이 형성되었을 것이며, 이는 세례 주관자를 파벌의 상징으로 오용한 현상(1:13-16)의 사회사적 배경을 설명합니다. 신티머스 스탠리 등 사회사 비평가들은 이 관계망이 단순한 신학적 노선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자본과 지위 경쟁의 종교적 표현임을 강조합니다.

그레코-로만 수사학과 지혜의 위상

바울이 1:17에서 "말의 지혜"(σοφία λόγου)를 거부한 것은 1세기 헬레니즘 도시의 수사학 문화에 정면으로 맞선 것입니다. 고린도 같은 로마 식민 도시에서 웅변(ῥητορεία)과 공적 토론은 사회적 명망의 핵심 척도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etorica)이 체계화한 설득의 기술은 법정(사법적), 의회(심의적), 공적 찬사(과시적) 영역 모두에서 교육받은 엘리트의 필수 역량이었습니다. 소피스트들은 수업료를 받고 수사학을 가르쳤으며, 수사학 능력은 도시의 공직, 법적 분쟁, 사업적 관계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울이 "말의 지혜로 세례를 베풀지 말라"(1:17), "나는 십자가를 전파하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않았다"(2:1-4)고 선언한 것은 단순한 방법론적 선택이 아니라, 복음의 내용(십자가)과 전달 방식 간의 신학적 일관성에 관한 진술이었습니다. 수사학적 세련됨으로 포장된 복음은 십자가를 '비워버릴' 위험(κενωθῇ, 1:17)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볼로에 대한 언급(1:12; 행 18:24-28)도 이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언변이 뛰어나고 성경에 능통한" 인물이었으며, 이는 헬레니즘 유대 교육(알렉산드리아적 필로 전통)과 수사학적 탁월함을 겸비한 인물로 고린도 교인들이 그에게 특별한 감탄을 표했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 감탄이 파벌적 충성으로 전화되었을 때, 바울은 그 이면에서 그레코-로만 지혜 전통의 가치 체계가 작동함을 간파했습니다.

고린도의 종교 환경

고린도의 종교 환경은 극도로 다원화되어 있었습니다. 아폴로 신전(기원전 6세기)이 여전히 도시 중심에 있었고, 로마 식민화 이후에는 황제 숭배(imperial cult)와 로마 전통 신들을 위한 신전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치유) 신전, 포세이돈 이스트미아 성소, 아프로디테 신전 등이 고린도 종교 지형을 구성했습니다. 미스테리 종교들—이시스 숭배, 엘레우시스 비의, 오르페우스 전통—도 항구 도시 특성상 이민자들을 통해 유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원적 종교 환경에서 유대인 디아스포라 회당은 하나의 신학적 공동체로 자리했으며, 바울은 18개월간 고린도에 머물며(행 18:11) 회당에서 시작하여 디도 유스도의 가정으로 사역 거점을 이전했습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존재는 성경에 대한 바울의 해석학적 논증—구약 인용을 통한 복음 정당화—이 청중에게 부분적으로 소통 가능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한편 고린도의 다신론적 환경에서 세례는 개종 의식으로서 특별한 상징적 무게를 가졌습니다. 미스테리 종교들도 입문 의식(initiation rite)을 통해 특정 신과의 특별한 관계를 표상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자신에게 세례를 베푼 사도적 인물에 대한 특별한 귀속감을 가지는 것은 종교사적으로 예상 가능한 현상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나뉘었느냐"(μεμέρισται ὁ Χριστός, 1:13)라고 물을 때, 이 질문은 세례를 입문 의식으로 오해하는 고린도적 종교 심성에 대한 신학적 교정이기도 합니다.

고고학적 증거

발굴된 로마 시대 고린도 유적은 본문의 사회사적 독해를 직접 뒷받침하는 물질 증거를 제공합니다. 고린도 아고라(광장)의 베마(βῆμα, 심판석)는 갈리오 총독 앞에서 열린 바울 재판(행 18:12-17)의 공간적 맥락입니다. 아폴로 신전의 잔존 기둥들은 바울 당대에도 고린도의 헬레니즘 종교 전통이 물리적으로 현존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에라스도 명문입니다. 고린도 극장 앞 광장의 석회석 포장 블록에서 발견된 라틴어 명문 "ERASTVS PRO AEDILIT[AT]E S(ua) P(ecunia) STRAVIT"는 "에라스도가 자신의 조영관직(aedilitas)에 대한 보답으로 사비를 들여 이 포장을 깔다"라는 내용입니다(1세기 중반, 로마 시대). 많은 학자들은 이 에라스도를 로마서 16:23("이 성 재무관 에라스도")와 동일 인물로 봅니다. 이 명문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고린도 교회에는 도시 공직을 역임한 상류층 신자가 포함되었다는 증거이며, 이는 고린도 교인들의 계층적 다양성과 지위 의식을 뒷받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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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17 각 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본 섹션은 PD 주석서의 방법론, 학술 논문을 종합하여 > 각 절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밝히는 상세 주해입니다.

1:1 — 신적 의지에서 발원한 사도권

본문: Παῦλος κλητὸς ἀπόστολο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διὰ θελήματος θεοῦ 직역: 바울, 하나님의 뜻에 의해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

원어·문법 핵심: - κλητός (수동 형용사): 소명의 수동성. 롬 1:1과 동일. 1:17의 ἀπέστειλέν과 어근 ἀποστέλλω 공유. - NT 용례: 신약 11회, 롬 1:1·6-7, 유다서 1 등 신적 선행 소명 맥락. - διὰ θελήματος θεοῦ: 고후 1:1, 엡 1:1, 골 1:1 바울 서신 표준어.

주석적 논의: 소피스트들이 명성과 수사학으로 제자를 모집한 고린도 문화에서 바울은 인간적 자격 대신 신적 소명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벵겔은 "자기 의지만으로 바울은 사도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 요약합니다. κλητός—κλητοῖς ἁγίοις(1:2) 평행은 사도와 성도의 소명이 동일 원천에서 발원함을 선언합니다.

설교적 함의: 사역 정체성의 근거는 θέλημα θεοῦ입니다. 개척 교회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자기 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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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교회의 이중 위치: 고린도에, 그리스도 안에

본문: τῇ ἐκκλησίᾳ τοῦ θεοῦ τῇ οὔσῃ ἐν Κορίνθῳ, ἡγιασμένοις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κλητοῖς ἁγίοις 직역: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들이며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자들에게

원어·문법 핵심: - ἡγιασμένοις: 완료 수동 분사 — 이미 완성된 위치적 성화(신분), 진행적 도덕 성화와 구별. - LXX/OT 용례: ἁγιάζω는 출 19:14 시나이 언약 백성의 성화 준비 맥락. ἐν Χριστῷ가 그 언약적 성화의 종말론적 성취를 표명합니다. - ἐπικαλουμένοις τὸ ὄνομα τοῦ κυρίου: 요엘 2:32(LXX) 반향.

주석적 논의: 교회의 이중 위치("고린도에" +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후 파당 논쟁에 대한 암묵적 답변입니다. ICC는 χάρις καὶ εἰρήνη가 헬라어 χαίρειν과 히브리어 שָׁלוֹם의 신학적 결합임을 지적합니다(First Corinthians, ICC, p.8).

설교적 함의: 거룩함은 먼저 받은 정체성(완료 수동)입니다. 결핍감에 앞서 위치적 성화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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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 은혜의 선행성과 풍성함의 원천

본문: εὐχαριστῶ... ὅτι ἐν παντὶ ἐπλουτίσθητε ἐν αὐτῷ, ἐν παντὶ λόγῳ καὶ πάσῃ γνώσει 직역: 감사합니다... 모든 말씀과 모든 지식에서 그분 안에서 풍성하게 되었으므로

원어·문법 핵심: - ἐπλουτίσθητε: 부정과거 수동 — 하나님이 풍성함의 원인. - NT 용례: 신약 3회(고전 1:5, 고후 6:10, 9:11), 모두 신적 은혜의 주도성 맥락. - λόγος + γνῶσις: 1:17(σοφία λόγου 비판), 8:1("지식은 교만")에서 교정 대상으로 재등장하는 아이러니.

주석적 논의: 스나이만(Snyman, 2009)은 1:4-9가 captatio benevolentiae 기능을 한다고 분석합니다.[s_snyman] 그러나 λόγος와 γνῶσις의 풍성함이 ἐν αὐτῷ, 즉 χάρις(1:4)에서 기원함이 명시됩니다. 원천 망각이 분열의 씨앗입니다.

설교적 함의: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선물입니다. 결핍 프레임 대신 이미 주어진 풍성함을 감사하는 것이 목회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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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 확증된 복음과 은사의 목적

본문: τὸ μαρτύριον τοῦ Χριστοῦ ἐβεβαιώθη ἐν ὑμῖν, ὥστε ὑμᾶς μὴ ὑστερεῖσθαι ἐν μηδενὶ χαρίσματι 직역: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안에서 확증된 것처럼, 어떤 은사에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ἐβεβαιώθη: 부정과거 수동 — βεβαιόω "법적으로 보증·확정하다". - NT 용례: 신약 8회(롬 15:8, 고전 1:6·8, 고후 1:21, 히 2:3 등), 약속·복음의 법적 확정 맥락.

주석적 논의: 은사(χάρισμα)와 그리스도의 증거(μαρτύριον)의 목적론적 연결이 핵심입니다. 은사는 교인들이 경쟁하는 자원이 아니라 그리스도 증거의 확증입니다. ἀποκαλύψει τοῦ κυρίου(주의 계시, 1:7)는 현재 은사 소유보다 종말론적 기대가 우선임을 시사합니다.

설교적 함의: 은사 비교보다 모든 은사의 공통 목적지—그리스도 증거—를 향해 공동체를 재조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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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 신실한 하나님이 보증하는 소명

본문: πιστὸς ὁ θεός, δι᾿ οὗ ἐκλήθητε εἰς κοινωνίαν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직역: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을 통해 너희는 그의 아들의 κοινωνία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원어·문법 핵심: - πιστὸς ὁ θεός: 술어형용사 전위(fronting) —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논증의 1차 전제. - NT 용례: 신약 4회(고전 1:9, 10:13, 고후 1:18, 살전 5:24), 위기 상황에서 신실하심을 근거로 제시. - κοινωνία: 신약 19회. 1:10 이하 σχίσματα의 신학적 반정립.

주석적 논의: ἐκλήθητε 부정과거 수동은 완결된 소명 사건을 표명하며, 목적지가 아들의 κοινωνία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면 그분이 부른 공동체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삼단논법이 1:10 이하의 전제입니다.

설교적 함의: 공동체 분열은 신실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 결여의 표현입니다. 소명의 보증자가 신실한 하나님임을 기억하는 것이 연합의 신학적 동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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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 παρακαλῶ: 이름으로 하는 사도적 호소

본문: παρακαλῶ δὲ ὑμᾶς, ἀδελφοί, διὰ τοῦ ὀνόματος... μὴ ᾖ ἐν ὑμῖν σχίσματα 직역: 형제들이여, 주의 이름을 통해 권고합니다, 분열이 없기를

원어·문법 핵심: - παρακαλῶ: 현재 능동 직설법 수행문 — 이 발화 자체가 사도적 권고를 실행. - NT 용례: 신약 109회. ἐπιτάσσω(명령)보다 부드럽지만 공식적 권위를 담은 호소.

주석적 논의: ICC는 ἐδηλώθη(1:11)가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났다"임을 강조합니다(First Corinthians, ICC, p.86). τὸ αὐτὸ λέγητε(같은 말)는 획일적 사상 통일이 아닌 그리스도 중심 공동 고백으로의 수렴 요청입니다. κατηρτισμένοι의 의료적 용례("탈구된 것을 맞추다")는 연합이 강제가 아닌 회복임을 시사합니다.

설교적 함의: 분열 중재 시 권위 과시가 아닌 그리스도 이름을 통한 호소가 사도적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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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2 — 파당 선언과 사회적 기제

본문: ἔριδες ἐν ὑμῖν εἰσιν... Ἐγὼ Παύλου, Ἐγὼ Ἀπολλῶ, Ἐγὼ Κηφᾶ, Ἐγὼ Χριστοῦ 직역: 다툼들이 있습니다... 나는 바울, 나는 아볼로, 나는 게바, 나는 그리스도에게

원어·문법 핵심: - ἔριδες: "다툼들" — σχίσματα보다 감정적·인격적 충돌을 시사. - 1차 문헌 병행: 고린도 극장 광장의 에라스도 명문("ERASTVS PRO AEDILIT[AT]E S(ua) P(ecunia) STRAVIT", 1세기 중반)은 교회 내 도시 공직자의 존재를 증거합니다. 1세기 로마 patronage-client 관계망에서 지도자 이름을 귀속 정체성으로 선언하는 것은 사회적 자본 거래였습니다.

참고 자료

  1. Andries H. Snyman, "Persuasion in 1 Corinthians 1:1-9," *Verbum et Ecclesia* 30 (2009): 1–9. DOI:10.4102/ve.v30i2.57.
  2. Phillip Vielhauer, "Paulus Und Die Kephaspartei in Korinth," *New Testament Studies* 21 (1975): 341–52. DOI:10.1017/s0028688500009607.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3. Timothy A. Brookins, "Reconsidering the Coherence of 1 Corinthians 1:10–4:21," *Novum Testamentum* 62 (2020): 15–38. DOI:10.1163/15685365-12341656. *(공개 abstract 기반 참조)*
  4. Timothy J. Christian, "Paul and Rhetoric Revisited: Reexamining Litfin's Assumptions on Pauline Preaching in 1 Corinthians," *Religions* 16 (2025): 363. DOI:10.3390/rel16030363.

교회 역사에서 고린도전서 1:1-17은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나요?

이 본문이 교회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석·설교되어 왔는지를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 본문 1:1-17에 대한 교회 역사 속 주요 해석자들의 통찰을 정리합니다. > 모든 출처는 PD(공공 도메인)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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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시대 후속 반향: 클레멘스의 고린도 서신 (c. 96 CE)

고린도 교회의 분열 문제는 바울 사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로마 클레멘스(Clement of Rome)가 작성한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1 Clement, c. 96 CE)는 고린도 교회에 동일한 분파 갈등이 재연되었음을 증거합니다. 클레멘스는 바울의 가르침(고전 1:10-13)을 명시적으로 상기시키면서 공동체의 εὐταξία(질서·조화)를 촉구합니다. 이 문서는 1 Corinthians 1장의 분열 논의가 단순히 당시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반복되는 교회 문제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편지를 받고도 반 세기 후 다시 동일한 갈등으로 외부 중재를 요청했다는 사실은 σχίσματα의 뿌리 깊음을 보여주며, 본문 해석에 목회적 현실주의를 더합니다. J. B. 라이트풋(Lightfoot)의 교주석 판(The Apostolic Fathers, 1890)이 이 서신과 고린도전서의 연결을 체계적으로 주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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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시대: 크리소스톰의 강해 설교 전통 (c. 390 CE)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의 고린도전서 강해(Homilies on 1 Corinthians, NPNF1-12, Schaff 편집)는 본문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교부 주석입니다.

강해 I (1:1-3): 크리소스톰은 바울이 자신을 κλητός("부르심을 받은")라고 칭하는 것에서 즉각적인 신학적 의미를 읽습니다. "See how immediately, from the very beginning, he casts down their pride, and dashes to the ground all their fond imagination, in that he speaks of himself as 'called.'" —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사도임을 강조함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서두에서부터 해체합니다. 크리소스톰에게 1:1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설교의 첫 문장부터 청중을 재위치 짓는 수사적 전략입니다.

강해 III (1:10): 분열 논의에서 크리소스톰은 바울의 παρακαλῶ 어법이 신중하게 계산된 온유함임을 주목합니다. "Being about to enter upon a subject full of many dangers and enough to tear up the Church from her foundations, he uses very mild language." 사도의 권위가 명령(ἐπιτάσσω)이 아닌 호소(παρακαλῶ)로 발현되는 이유를 크리소스톰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요청하는 것 자체가 가장 강력한 설득임에서 찾습니다. 이 해석은 오늘 목회자의 갈등 중재 방식에 직접적인 모델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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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아리우스 논쟁 문맥: 암브로시우스 (c. 380 CE)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Ambrose, 337-397)는 1:13("나는 게바에게")를 아리우스파의 분파적 논증에 대한 반례로 사용합니다(Select Works and Letters, NPNF2-10). 아리우스파가 특정 지도자의 이름을 앞세워 신학적 정당성을 주장할 때, 암브로시우스는 바울의 수사적 질문—"그리스도가 나뉘었습니까?"—이 그러한 논법 자체의 불가능성을 선언한다고 응용합니다. 이 해석은 1:13이 당시 기독론 논쟁에서도 살아있는 논증 자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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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시대: 칼뱅의 본문 해석 원칙 (1546)

존 칼뱅(John Calvin, 1509-1564)의 고린도전서 주석(Commentary on 1 Corinthians, CCEL)은 개혁주의 전통에서 본문의 표준 해석을 형성했습니다.

1:1-3에 대한 칼뱅: 칼뱅은 διὰ θελήματος θεοῦ("하나님의 뜻에 의해")를 사도적 소명의 객관적 근거로 강조합니다. 개인적 탁월함이 아닌 신적 소명이 권위의 원천임을 바울이 선두에 배치한 것을 칼뱅은 설교 사역 전반의 원리로 확장합니다.

1:10-13에 대한 칼뱅: 칼뱅은 고린도의 분열을 "사람들이 그리스도보다 지도자를 더 크게 여기는 것"(the disease of preferring human leaders to Christ)의 증상으로 진단합니다. τὸ αὐτὸ λέγητε의 해석에서 칼뱅은 "같은 말"이 외적 일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공동의 주로 고백하는 내적 통일임을 강조합니다. 이 해석은 종교개혁 시대의 교파 분열 논쟁에서 에큐메니칼 연합의 신학적 근거로 활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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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설교 전통: 매튜 헨리 (1712)

매튜 헨리(Matthew Henry, 1662-1714)의 성경 전권 주석(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1712)은 본문을 목회적 실천에 직접 연결합니다. 헨리는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로 규정된 것에서 교회 정체성의 핵심을 찾습니다. 그는 "신자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기도 없이 살지 않으며, 유대인들과 달리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별된다"고 요약하여, 공적 예배에서의 그리스도 이름 호칭이 공동체 정체성의 실천적 표현임을 역설합니다. 헨리의 해석은 18-19세기 영미 복음주의 설교에 고린도전서 1장이 교회 연합 호소의 성경적 근거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배경을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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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 요약: 해석의 강조점 이동

| 시대 | 대표 해석자 | 강조점 | |---|---|---| | 사도 후속(96 CE) | 클레멘스 | 분열의 반복성·εὐταξία(질서) 촉구 | | 교부(390 CE) | 크리소스톰 | κλητός의 겸손 신학, παρακαλῶ의 온유한 권위 | | 반아리우스(380 CE) | 암브로시우스 | 1:13을 기독론 논증의 반례로 활용 | | 종교개혁(1546) | 칼뱅 | 신적 소명의 객관성, 그리스도 중심 연합 | | 청교도(1712) | 매튜 헨리 | 이름 호칭을 공동체 정체성의 실천으로 |

1 Corinthians 1:1-17의 수용사는 σχίσματα(분열) 진단과 십자가 중심 연합이라는 핵심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도 일관되게 목회 현장에 적용되어왔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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